서로에게, 자신에게 친절하시길.
매일 점심 산책을 다니는 공원에 엄청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무리로 들어가 보니 털이 보송보송한 아기고양이들이 올망졸망 있었다. 솜방망이 같은 하얀 양발을 휘적이는 모습이나 크기로 보아 아직 아기들인데 어미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에도 또 그다음 날에도 공원 한편엔 솜뭉치 같은 생명들이 있었다. 어미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혹여나 굶을까 봐 츄르를 챙겨가기 시작했다. 해코지를 당할까 봐 사람 손 타지 말라고 멀찍이 떨어져 간식을 줬지만 시간이 흐르니 서로의 경계심은 옅어져 갔다. 냥이들은 인기척이 느껴지면 어디선가 나와 반갑다는 듯이 냐옹 냐옹 인사를 했고 우리가 준비해 간 간식을 찹찹 거리며 먹었다.
비슷해 보이던 고양이들이었는데 자주 보니 구분이 되기 시작했다. 이름을 붙여줬다. 입에 카레가 묻은 아이는 털이 꼬질해서 꼬질이, 꼬질이랑 닮았지만 묘하게 예쁘니 미묘, 털이 까맣고 노란 아이는 까망이와 치즈라고 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고양이들을 보러 오는 사람들끼리도 점점 얼굴이 익기 시작했다. 바스락 거리는 낙엽 위에서 뒹구는 애들을 바라보며 서로가 모르던 고양이들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다가올 겨울을 어떻게 보낼지 걱정을 했다. 그동안 몰랐던 사이지만 냥이들을 아끼는 마음은 같았다.
겨울이 되었다. 차가운 장대비가 내리꽂듯이 내려도 눈이 많이 내리는 날에도 냥이들은 여전히 공원에 있었다. 추위에 걱정이 된 사람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냥이들을 돌봤다.
누군가 차가운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고양이 집을 가져다 놨다. 다음날 그 집 위엔 방한 비닐이 씌워져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엔 핫팩으로 꽉 채워진 종이백이 놓여있었다. “중간에 하나씩 교체해 주세요!”라는 메모와 함께. 고양이들이 자주 앉아있는 미끄럼틀 위에 이불이 깔려있는 날도 있었다.
메모를 본 우리는 핫팩의 온도를 체크했고 아기들이 잘 덮을 수 있도록 담요를 정리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날엔 고양이들의 그릇에 담긴 물이 얼어있을까 봐 걱정이 되어 밥그릇을 살폈다. 우리보다 먼저 온 누군가가 늘 이미 얼음을 깼고 새로운 물로 바꿔줬다. 덕분에 한 번도 직접 고양이 밥그릇을 깨지 않아도 됐다.
서로 얼굴조차 모르는 사이지만 이들을 직접 보살필 수 없는 띄엄띄엄한 시간을 우리들은 각자 저마다의 친절과 애정으로 채워갔다. 상냥한 마음을 확인할 때마다 날씨는 몹시 추웠지만 내 속은 온기로 훈훈해졌다. 그리고 고양이들은 사람들이 준비해 준 것들을 잘 누려줬다. 잘 먹고 담요에서 뒹굴거리다 노곤한 표정으로 낮잠을 자곤 했다.
평온하게 있는 고양이들을 바라보며 문득 나의 시간도 누군가의 친절로 채워져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명절에는 시댁에서 곶감을 주셨다. 달콤한 겨울 냄새가 솔솔 나는 데다 쫄깃쫄깃하니 아주 맛있었다. 정신없이 먹는 내 모습에 아버님은 웃으시며 먹고 싶은 만큼 실컷 먹으라고 하셨다. 하지만 다른 맛있는 음식들로 배가 꺼지지 않아 더 이상 먹지 못했다. 배가 불러 더는 못 먹겠다며 인사를 드리고 나오려는데 아버님이 다급하게 부르셨다.
“작은애야! “
집에 가면서 먹으라며 주머니에 슬쩍 뭔갈 넣어주셨다. 곶감이었다. 비닐에 담긴 마음이 너무나 다정해서 곶감만큼이나 마음이 말랑말랑 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자꾸 해실해실 웃음이 나온다. 알게 모르게 내 시간에도 나를 아껴주는 이들의 친절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생각이 자꾸 들어서다. 그리고 그 다정함은 서늘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는 삶을 따뜻하게 지펴줬으리라.
나도 좀 더 친절한 사람이 된다면
하루의 온도가 더 오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