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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지 Nov 12. 2023

끌림의 시간

스님과의 인연


결혼을 하고 보니 시부모님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은 불교신자였다. 아버님은 은퇴 후 불교대학에서 공부 중이었고 어머니는 새벽에 목욕재계 후 반야심경을 읊으며 기도와 108배를 하는 모습을 보곤 했다. 자주 절에 방문했고 부처님 오신 날은 우리를 대동하고 새벽부터 분주히 움직이고 싶어 했다.

어릴적 어떤 것이든 확실한 집안의 교가 있는 것을 부럽게 생각했기에 흔쾌히 함께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15년 전쯤 아버님과 불교대학에서 인연이 된 스님이 일산 작은 절로 독립을 했고 그곳에 가끔 다니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 부모를 삼아줬다고 표현했고 무슨 말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잘 돌주길 바라는 조부모님의 바람쯤으로 받아들였다.

우리 집은 용인이어서 일산까지 다니기에는 가깝지 않은 거리였다.

무엇보다 아직 종교가 없었기에 필요시에 부모님과 함께하는 자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특히나 부처님 오신 날 새벽부터 아기까지 챙겨서 오길 강요하는 어머니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도 있다.

어머니의 다리골절사고와 코로나 여파로 5년쯤 절 방문을 못 했고 내 기억에서 그 곳은 잊혀졌었다.  

   

작년부터 남편은 인문학 공부와 함께 불교공부에 심취해 있었고 신도증을 받고 싶어 했다. 그러다가 잊혔던 일산의 금어사가 다시 생각났고 스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부모님과 형식적으로 다녔던 이후로 남편과 스스로 스님을 만나로 간 건 처음이었다.

변함없이 깔끔한 내부와 아기자기한 소품들, 조용한 성품, 얼굴이 전보다 더 좋아 보였던 비구니 진락스님.

앉은 자리에서 2시간이 지나간 줄도 모르게 즐거운 담소를 나누게 되다니 놀라웠다.

스님이 내려주는 차맛도 일품이었고 오랜 인연처럼 따뜻하게 맞아주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순간 보니 스님은 마치 나를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엄마에게도 못하는 말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왜냐면 시부모님부터 남편까지 오랜 시간 봐오신 분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아버님이 15년 전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지금은 어렵더래도 네가 나중에 편하게 다닐 수 있는 절이고 청렴한 분이니 너와도 잘 맞을 것이라고 했다. 그때는 이런 날이 올 줄 몰랐기에 크게 생각하지 않고 넘겼는데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었다.

'언젠가는 나 혼자서 올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멘토가 필요할 때, 정신적인 쉼이 필요할 때, 따뜻한 차와 맘을 나누고 싶을 때 생각나는 분이 한 분 늘어난 것 같아 기뻤다.     


오늘 시부모님을 모시고 일산으로 갔다. 절에서 15주년 행사가 있어서였다.

어머니도 회복된 이후로 처음 가는 길이었고 큰 스님 법문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던 시간이었다. 스님 두 분과 식사를 함께하면서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깨달음과 대답을 들을 수 있어서 뜻깊은 자리였다.

내가 스님과 이렇게 편하게 대화를 하고 가깝게 느껴지다니 놀라웠다.     

돌아오는 길에 부모님께 신혼 때의 불교에 대한 내 마음과 지금의 내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부모님의 큰 뜻을 알게 되었고 감사하다고도 했다. 부모님도 오늘 함께 다녀온 것을 잘한 것  같다며 그렇게 받아들여줘서 고맙다고 했다. 시부모님과 왕복 3시간 동안 이렇게 진솔하게 내 맘을 얘기하고 부모님 말을 듣는 시간이 감사하다.     


불교에선 시절인연이 있다고 표현한다. 아직은 종교를 생각하지 않기에 좋은 감정을 가지는 단계이지만 스님과는 아이들과 부모님 인연으로 계속 볼 수 있기에 언젠가 내게도 인연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이곳에 맘을 두게 될 것 같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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