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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구 May 13. 2023

우리는 타이베이로 간다

(나는 의류업을 합니다)

1.

 딸이 호주에서 왔다. 벚꽃이 바람에 날리던 날이었다. 가로수에 남아있는 하얀 벚꽃이 이쁘다고 저녁을 함께 먹은 언니와 사진을 찍어 보내왔다. 그리고 한 달을 우리와 함께 보낸 딸은 여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는 날 호주로 돌아갔다.

 딸이 오자 우리는 미리 계획해 둔 일들을 하나씩 실행에 옮겼다. 그중에는 가족 여행도 있었다. 우리는 밤 비행기를 타고 타이베이로 갔다. 다음날 미슐렝 쓰리스타 식당으로 갔고 그곳에서 맛있는 요리와 차를 마셨다. 요리는 흥미롭고 풍미로워서 우리의 미각을 만족시켰다. 요리를 주문하기 전에 차를 주문했는데 차는 각자 다르게 주문해서 세 주전자가 나왔다. 각기 다른 향이 나는 차를 음미하면서 많은 대화이어갔다. 요리가 나올 때마다 감탄했고 차를 마시면서 마음을 다스렸다. 떨어져 있던 시간은 우린 차처럼 번졌고 나누어 마시면서 우리는 한 팀이 되어갔다. 깊고 진했고 가볍게 알싸하기도 한 얘기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누었다. 가족끼리도 이리 길게 이야기할 수 있다니 놀랍기도 했는데 그건 아마 융숭하게 대접해 준 식당의 분위기도 한 몫했으리라. 우리는 아무 걱정 없는 여행자처럼 편하고 여유로웠으며 부족함 없는 이방인으로 자유로웠으니까.

 딸이 예약한 숙소는 타이베이 구도심권에 위치했는데 주변에 오래된 시장이 있는지 허름하고 어수선했다. 물론 깔끔하게 개조된 원룸형태의 숙소 내부는 모던한 인테리어 감각으로 전혀 불편함을 느낄 수 없었다. 단지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구조라 가파른 계단으로 캐리어를 들어 올리느라 애를 먹긴 했지만.


2.

 가파른 계단을 내려와 밖으로 나오면 한국산 양말을 팔던 양말 가게와 장신구가게, 고양이가 그려진 가방을 싸게 팔던 가방 가게와 네일아트와 공방처럼 생긴 작고 허름해 보이던 골목길이 있었다. 골목마다 놓인 오토바이와  좁고 오래된 골목길을 나가면 긴 회랑으로 이어진 상점가와 도로가 나왔다. 맨 처음 나는 물을 사기 위해 편의점을 찾았다. 도로변 모퉁이에 현대식 간판으로 `7 eleven `이 보였다. 입구 창에 커피 전단지가 보여서  이곳에서 커피도 사면 되겠구나 생각하고 들어갔다. 의외로 넓고 진열된 상품도 많았다. 공산품뿐만 아니라 꼬치나 어묵도 한편에 자리하고 있어 사람들로 붐볐다. 한국 상표의 물을 두 병사고 커피를 주문했다. "아메리카노" 

상대는 나를 한국 사람으로 알아보는지

" 핫?"

하고 물었다.  

 물과 커피를 들고 거리로 나서자 어디서 나는지 모를 기계음 소리와 도로를 달리는 오토바이 소리가 시끄럽게 들렸다. 길가에서 파는 음식냄새가 그득하게 자리 잡고 있는 회랑을 지나 좁은 골목길로 찾아들었다. 색이 바래고 페인트가 벗겨진 벽이 보이는 좀 전에 지나온 골목길이었다. 이 거리에서 며칠을 보냈다.


3.

 이 틀만에 나는 집안 대대로 살아온 사람처럼 생활했다. 아침이면 홀로 밖으로 나가 커피를 사고 길가에서 파는 음식을 사 왔다. 작고 허름한 가게들은 주로 부부나 가족위주로 운영하는 곳이 많은 것 같았다. 위생 상태가 좋아 보이진 않아도 음식 맛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딸이 인터넷으로 검색한 다음 각자의 메뉴를 결정하면 나는 가게의 위치를 파악하고 `배달의 기수`처럼 사다 날랐다. 현지인이나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배달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는 곳에서 기다린 적도 있었고 식당의 간판을 잘못 찾아 골목을 몇 차례 왔다 갔다 하기도 했다.

 하루는 중정 기념관으로 가서 산책을 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키가 큰 나무가 하늘을 찌르듯 줄지어 서있었고 종류가 다양한 새소리가 가는 곳마다 들렸다. 잔디가 깔린 정원에는 갈색빛깔의 푸른눈테 해오라기가 느린 걸음으로 걸어 다니고 있었다. 기념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걷다가 벌떼처럼 날아오르는 참새에 놀라기도 했고 참새떼가 내려앉아 조잘거리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여행지에서 만난 새의 소리는 유달리 흥겹고 아름답게 들린다. 한국 사람들의 말소리도 들렸고 그들은 주로 일렬로 선채 동시에 뛰면서 사진을 찍었다.


4.

오늘 저녁식사는 도시의 중심부에 있는 식당으로 정했다. 중심부에는 101 타워가 있다. 101 타워와 마주한 곳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마치 산을 오르는 등산객이 정상을 바라보고 다가서듯 택시는 빌딩을 목표로 달려갔다. 어두워지면 건물 내부의 전등불이 빛을 낼 것이다. 아직 남아 있는 햇빛에 건물의 외관이 광물처럼 빛났다.

 저녁을 먹고 계산을 하려는데 현금을 주면 할인해준다고 한다. 딸은 인근의 환전소를 다녀오더니 환전소에 돈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고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미리 환전하지 않아서 손해 본 느낌이지만 가진 현금을  다 털어서 할인을 받고 나머지는 카드로 계산했다. 밖은 어두워졌고 101층 빌딩은 보석처럼 빛났다. 그곳에 있는 쇼핑센터를 구경하는 것이 나로선 즐거운 일이다.

 쇼핑센터는 무척 크고 넓었다. 명품 브랜드로 꽉 차있고 이제껏 보지 못한 브랜드도 많았다. 어떤 작가는 `현대인은 명품을 부적처럼 지니고 다닌다`라고 했다. 명품을 소유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두 개쯤은 가지고 다닌다. 남과 다른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과시하고 뽐내고 싶어서, 치장하는 즐거움을 위해서 명품을 소유하고 싶어 한다. 나에겐 명품을 살만한 돈은 없지만 그걸 보고 즐길만한 여유는 있다. 나는 브랜드가 지닌 정체성을 확인하고 디자인 감각에 매료되기도 한다. 그래서 매장에 들어가 곳곳에 비치된 상품을 꼼꼼히 둘러본다. 그리고 신상의 색상이나 트렌드의 변화를 살펴본다. 물론 오리지널 제품을 찾아보는 것도 좋아한다. 백화점의 명품관을 구경하는 것은 미술관을 둘러보듯 내겐 즐거운 일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가 현대에 태어났더라면 명품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됐을 거란 상상을 해본 적도 있다. 

 우버에서 호출한 택시는 아직 오지 않았나 보다. 딸은 휴대폰을 계속 보고 있다. 아내와 나는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무성하게 자란 가로수가 대견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쇼핑센터 문 닫는 시간에 맞춰 호출한 택시는 우리가 기다리는 승강장으로 오지 않았는지 GPS로 택시의 위치를 확인하던 딸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 왜 꼼짝도 안 하지? 저 위쪽으로 가보자 " 

아내가 내 팔을 잡아당긴다. 딸은 벌써 앞장서서 몇 발짝 앞서 가고 있다.

" 저 하얀색 택신가 봐 "

먼저 차에 도착한 딸은 운전자와 대화를 나누더니 우리를 부른다.

" 니 하우마 "

하고 아내와 나는 뒷좌석으로 타고 딸은 앞자리에 타기 위해 문을 열고 자리에 앉는다. 순간 문 긁히는 소리가 난다. 이 소리는 차문을 열 때 차도와 인도의 높이 차이로 인해 문의 모서리나 밑면이 인도의 지면에 닿을 때 나는 소리다. 문을 닫으면서 딸은 운전자를 보고 

" 쏘리 "

하고 말한다.

어쩔 수 없는 찜찜한 상황이지만 이런 경우는 그냥 넘어가길 바랄 뿐이다. 잠시 멈칫하는가 싶더니 운전자가 중얼거리며 밖으로 나온다. 앞문을 열고 쪼그려 앉아 문의 밑부분을 손바닥으로 쓸어본다. 그리고는 딸에게 영어로 묻는다. 딸도 무어라 대답을 하는데 둘이 나누는 대화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나와 아내는 차에서 내리고 두 사람의 대화가 다툼으로 번져가고 있음을 직감한다. 나도 뭔가 역할을 해야겠는데 도무지 말을 할 수없으니 답답할 뿐이다. 일단 두 사람의 말을 끊고 딸에게 물어본다.

" 뭐라고 하는데? "

" 아까 내가 긁힌 데가 칠이 벗겨져서 녹이 난데. 그리고 이 상황은 아주 엄중한 사고라 그냥 갈 수가 없데." 

" 뭐???  저 바닥 긁힌 것이. "

" 아빠, 저 차 문짝 좀 봐. 아래쪽이 찌그러졌잖아. 우리가 모서리 밑바닥 긁힌 것으로 지차 수리하려고 그러나 봐. "

일단 상황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운전자에게 다가가서 최대한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말한다.

" 아임 소 쏘리, 쏘리, 쏘리 "

연거푸 미안하다고 말을 하자 운전자도 내게 하소연하듯 말을 한다. 하지만 내가 말을 못 알아듣는걸 눈치채고 휴대폰 번역기를 돌려 보여 준다

( 당신의 딸은 처음에는 미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어 지금은 아니다.)

" 그래, 맞는 말이야. 근데 지금 미안하다고 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거야. 뭘 어쩌자는 건데. "하고 속으로 생각만 할 뿐이었다. 

뭔가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 운전자는 돈을 요구하고 있는 걸까?. 하지만 우리는 현금이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그렇다 보험처리를 하면 어떨까? 한국에서 올 때 만약의 상황을 고려해 여행자 보험을 들지 않았던가. 나는 딸을 불러 보험처리를 하자고 말했다. 딸은 알았다고 대답을 하고 운전자와 따지듯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둘이서 얘기를 한다. 하지만 거의 반복적인 얘기인 것 같다. 딸은 무슨 결론에 도달했는지 이제 가자고 했다. 현금을 가지고 있더라면 아빠로서 해결사처럼 마무리 지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말도 통하지 않았고 주머니에는 편의점에서 사용하던 동전 몇 개가 있을 뿐이었다. 딸이 가자고 해서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더니 

" 우버를 통해 정식으로 사고 접수하면 처리해 주겠다고 했더니, 우버는 고객과의 사소한 문제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하는 거야. 아빠 그냥 가자, 더 이상 얘기해 봐야 소용없고 말도 안 통해. "

그리고는 앞쪽에 서있는 택시를 보고 손짓을 했다. 그 순간 우리와 싸우던 운전자는 택시 운전자에게 달려가더니 우리를 태우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타려고 하자 택시 운전자는 손을 저으면서 태울 수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국어로 말한다.

우리는 돌아서서 아래쪽으로 걸어갔다. 운전자는 우리를 쫓아오면서 뭐라고 소리를 지르더니 동영상을 촬영하는지 휴대폰을 얼굴에 들이민다. 나는 손바닥으로 휴대폰의 렌즈를 막았다. 여의치 않았던지 운전자는 내 백팩을 잡아당기며 못 가게 한다. 나는 순간 소리를 버럭 질렀다. 내 몸에 손대는 것을 몹시 싫어해서 본능에 가깝게 소리를 질렀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싸우는 상황에 놀랐는지 우리를 바라본다. 뒤돌아 걷는 우리 뒤로 운전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5.

 숙소로 가는 택시 안에서 우리는 황당한 상황과 사건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나는 현금이 없어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고 자책하듯이 말했고 딸은 운전자의 의도가 불순해서 현금이 있어도 주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아내는 우리 딸이 우리 가족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하는 모습이 장하다며

" 싸울 때 전혀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말하는 울 딸이 너무 대견하더라. 저렇게 야무지니 홀로 호주에서 살아남았구나 싶기도 하고,,,"

 숙소에 들어와서 우리는 하나의 침대에 함께 누워서 얘기를 나누었다. 오늘이 이곳에서 보낸 마지막 날이었다고 그리고 우리는 한 팀으로 싸웠다고 그래서 서로에게 고맙다고 말했던 것 같다.


6.

 다음 날 우리는 기차가 들어오는 철길에서 천등을 날렸다. 커다란 천등의 사면에 붓글씨로 써 내려간 사랑하는 마음을 하늘높이 날렸다. 그리고 구름이 앞마당까지 다가오고 구름이 걷히면 바다가 보이는 지우펀으로 갔다. 비 오는 밤이어서 더 운치가 있었고 빗물이 계단을 타고 끝없이 흘러내리던 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7.

 딸이 호주로 떠나자 아내는 몸살감기를 앓았다. 기침을 계속하면서도 약을 먹지 않았다. 며칠간 그렇게 보내자 병원을 가자고 했지만 말없이 돌아 누울 뿐이었다. 간질거리는 목과 호흡 때마다 당해야 하는 고통과 불편함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사람 같았다. 보는 나는 무척 불편했지만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마치 고통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육체적 고통을 통해서 정신적 허전함을 잊고 싶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상쇄로 결여의 시간을 이겨내고 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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