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하 Oct 09. 2023

재하 창업기 7. 손실되는 연결의 밀도를 높이자

재하 창업기

안녕하세요,

계약의 전주기를 관리하는 국내 유일 CLM(계약 관리) 스타트업 '프릭스'를 운영하는 래티스 주식회사의 공동창업자/CPO이자, 호박너구리 레터를 운영하는 이재하입니다!

오늘도 지난 글에 이어 제가 어떤 과정을 거쳐 창업을 하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새로운 하이드 팀의 비전: 손실되는 연결의 밀도를 높이자.

사무실도 없던 저희 팀의 첫 회의 장소는 안암역 근처의 카페였습니다. 저희는 그곳에서 아이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제가 만든 SNS 앱 하이드를 그대로 운영하는 선택지도 있었습니다. 사이드 프로젝트로 시작된 하이드는 8,000명 이상의 유저와 높은 리텐션을 기록하던 상태였고, 이대로 중단하기에는 아깝다는 말도 많이 들었습니다. 물론 하이드도 충분히 매력적이고 잠재력이 있는 서비스였지만, 저는 창업자들이 아이템을 온전히 자신의 서비스로 느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이드가 추구하던 ‘건강한 연결’이라는 가치만 유지된다면 함께 새로운 서비스를 시작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렇게 저희는 "건강한 연결"이라는 비전에서 출발하여 아이디에이션을 진행하였습니다. 여러 아이디어가 나왔고, 긴 회의 끝에 K군이 제안한 '온∙오프라인 명함 기반 폐쇄형 SNS'를 시도해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회사∙직함이 적혀있는 명함이 아니라, 자신의 취미나 관심사가 기록된 나만의 명함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마침 SNS에서는 다양한 MBTI 관련 테스트가 유행하고 있었고, Z세대와 알파 세대를 중심으로 폰꾸(휴대폰 꾸미기), 다꾸(다이어리 꾸미기)와 같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문화도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또한 오프라인 굿즈 시장은 디지털 시대임에도 성장하고 있으며, 명함이라는 실물의 존재는 포켓몬 스티커와 같이 바이럴이 될 확률이 높다는 근거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저희는 해당 서비스를 통해 손실되는 연결의 밀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보통 처음 대화를 하는 경우에는 간단하게 형식적인 이야기만 나누게 됩니다. 우연히 공통의 취미를 발견하지 않는 이상, 대부분은 이름과 직업 정도만 묻다가 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학교나 직장과 같이 누군가를 계속해서 만날 수 있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우리는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과 그저 스쳐 지나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놓친 사람들 중에는 둘도 없는 친구, 소중한 연인, 혹은 큰 변화를 만들 공동창업자가 존재했을 수도 있습니다. 


당시 노션에 정리한 서비스 개요


저희는 이렇게 손실되는 연결을 줄이고 그 밀도를 높이고 싶었습니다. 만약 누군가를 만날 때 서로의 취미와 관심사가 적힌 명함을 교환하게 된다면, 공통된 취미나 재미있는 대화 주제를 빠르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더 빨리 관심사를 찾고 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면 자신과 잘 맞는 사람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조금이나마 늘릴 수 있는 것입니다. 저희는 명함을 통해 자신에 대한 힌트를 준다는 의미에서 서비스 이름을 '힌트(hint)'라고 정했습니다.



가설 검증과 실행의 반복

아이템을 결정한 이후부터는 가설 검증과 실행의 연속이었습니다. 우선 저희는 실제로 사람들이 자신만의 명함을 제작하고 싶어 하는지 먼저 확인해 보았습니다. 검증을 위해서 저희는 하루 만에 랜딩페이지를 개발하고, 온라인 광고를 돌렸습니다. 명함에 담고 싶은 내용과 희망 색상 등을 사이트에 입력하면 저희가 3~5가지 디자인을 만들고, 그중에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있는 경우 명함을 구입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조악한 사이트에 디자이너도 없었지만 유저들은 명함 디자인에 꽤 만족했고, 실제로 오프라인 명함을 구매하는 유저도 있었습니다. 소수를 대상으로 진행했기에 검증 여부를 판단하는 데 충분한 데이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첫 시도를 통해 저희는 자신만의 명함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hint가 실제로 사람 간의 관계에 도움이 되는지 확인하기 위한 검증을 시작했습니다. 이를 위해 저희는 각자의 지인 1명에게 hint 명함을 만들어주고, 2주 동안 다른 사람을 만날 때 사용해 보도록 했습니다. 실제 경험을 확인할 수 있도록 (특별한 플레이북이나 친구가 창업했다는 구구절절한 이야기 없이) 친구에게 선물 받은 것이라 하며 자연스럽게 사용하도록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반응은 예상보다 더 좋았습니다. 소개팅에서 사용해 보았는데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이미 알고 지낸 회사 동료와 등산이라는 공통 취미를 발견하여 같이 등산을 가게 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당시 노션에 정리한 비전과 가설


이외에도 저희 팀은 여러 번의 가설 검증 과정을 거쳤습니다. 실제로 사람들이 타인과 관계를 형성하고 싶어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연령/성별/MBTI 등으로 타깃을 구분하여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어떤 가치에 사람들이 가장 크게 반응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마케팅 소재를 구분하여 광고를 집행하기도 했습니다.



창업에 대한 기대와 걱정, 그리고 현실

저는 평소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았으며, 서비스를 처음부터 만들고 운영한 경험도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실제로 창업을 하더라도 겪는 과정이 크게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업은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생각대로 진행된 일마저도 느껴지는 감정은 생각과 달랐습니다.


물론 기대보다 좋았던 것도 있었습니다. 아이디에이션부터 가설 설정 및 검증까지 모두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하나씩 빠르게 진행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더 치열했고, 더 짜릿했습니다. 짜릿하다는 말로는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이전에 여우더 서비스를 운영하거나 창업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느꼈던 가슴속의 불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함께하며 가까워지고 단단해지는 팀을 보는 것 또한 기대보다 더 든든했으며, 첫 매출은 (비록 소액이고 적자였지만) 예상보다 더 뿌듯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서로의 취미를 공유하는 날(지킬데이)을 만들었는데, 하루는 C양의 그림 그리기 취미를 함께하기 위해 서울숲에 놀러 갔습니다.


반대로 걱정했던 것보다 어려웠던 점도 많았습니다. 가설에 대해 검증할 때마다 그 결과가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괜찮은 수치인지 스스로 확신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방향성 설정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오프라인 hint 명함이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이후의 방향성이 없다면 수많은 MBTI 테스트와 같이 단순한 유행에 그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hint 명함을 교환한 사람들끼리 소통할 수 있는 온라인 앱을 만드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오프라인 명함과 온라인 앱에 대한 연결성을 구체화하다 보니 둘은 수요가 매우 다른 서비스였습니다. 오프라인 명함은 보통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많이 사용하고, 온라인 앱은 기존에 알던 사람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목적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누군가와 친해지는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 모르는 사람에서 지인이 되고, 지인에서 친한 사람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그러나 아직 저희는 어떠한 결과물도 없는 상태였고,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팀원들과  동고동락한 성수동 공유 오피스 사무실


이처럼 저희는 계속 방향성을 바꾸어 나갔고, 그 과정은 생각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사비로 팀원에게 생활비를 주고, 사무실 임대료 및 식비를 지출하고 있던 상황이라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은 더욱 조급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창업은 당연히 힘든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꿋꿋이 진행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To be continued

매거진의 이전글 재하 창업기 6. 꿈꾸던 창업을 위한 퇴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