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고단함을 수용하는 낮은 침묵의 환대
비어 있음으로 비로소 자신의 존재 이유를 완성하는 사물이 있다.
도심의 소음이 잦아들고 가로등이 창백한 불빛을 수직으로 쏟아낼 때,
그 서늘한 조명 한복판에서 누군가의 부재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덩그러니 놓여 있는 낡은 나무 벤치가 그러하다.
이 사물의 소명은 세상의 속도를 견디지 못하고 길가로 튕겨 나온 고단한 익명들의 허리를
아무런 조건 없이 말없이 받쳐주는 일에 있다.
벤치는 단 한 번도 자신에게 내려앉는 타인의 하중을 거절하거나 귀찮아한 적이 없다.
차가운 밤이 내려앉을 때, 가장 낮은 곳에서 누군가의 피로를 수용하는 이 무명의 가구는
우리 사회가 끝내 유기하지 못한 마지막 배려의 형상이다.
한낮의 열기를 머금은 채 어둠 속에서 서서히 식어가는 나무판의 온도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어깨를 늘어뜨린 이가 잠시 기댈 수 있는 유일하고 정직한 지지대가 된다.
우리는 누구나 길을 걷다 자신의 다리가 생의 무게를 더 이상 지탱하기 벅차다고 느끼는 순간을 마주한다.
그때 가로등 아래 말없이 놓인 벤치는, 그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묻지 않은 채 자신의 등을 기꺼이 내어준다.
비바람에 살이 트고 칠이 벗겨진 벤치의 표면은 그가 감당해온 수많은 고독의 흔적이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이별의 쓴맛을 삼켰을 것이고, 누군가는 돌아갈 곳을 잃어 마지막 자존심처럼 몸을 웅크렸을 것이다.
그 모든 비루하고도 적나라한 삶의 고통을 벤치는 섬유질 사이사이로 묵묵히 빨아들인다.
타인의 슬픔을 받아낸 대가로 자신의 몸체가 뒤틀리고 나무결이 깊게 갈라질지라도, 그는 결코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진정한 배려란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잠시 멈춰 섰을 때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있어 주는 '머무름의 의지'에 있다.
사람들은 기운을 차리면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벤치는 다시 차가운 가로등 불빛 아래 혼자 남겨지는 법을 배운다.
자신이 철저히 비워져야만 또 다른 누군가의 고단함을 채울 수 있음을 그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버려지지 않는 기다림이야말로 우리가 서로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는 가장 낮은 목소리의 증거다.
세상은 점점 더 빠르고 안락한 의자를 생산해내지만, 길 위의 벤치만큼 인간의 본질적인 외로움을 다정하게 껴안는 도구는 없다.
지나가는 이의 땀과 머물다 간 이의 한숨이 켜켜이 쌓인 그 낡은 나무판은,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는 순수한 투신의 기록이다.
깊은 밤, 텅 빈 벤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무도 앉아 있지 않지만, 그곳엔 여전히 누군가가 머물다 간 미세한 잔열이 남아 있다.
나 역시 누군가의 고단한 생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단단한 등받이 하나가 되어본 적이 있는지 생각한다.
나의 피부가 조금 해지더라도 타인의 무거운 짐을 함께 나누어질 수 있다면,
그 고독한 기다림은 결코 헛된 소멸이 아닐 것이다.
길가에 버려진 듯 놓여 있으나 결코 타인을 저버리지 않는 저 묵묵한 등받이는,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고독한 연대의 이정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