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에 갇힌 가상의 낙원, 그리고 외상값
액정 화면 속 세상은 오염되지 않은 무균실 같다. 어느 인플루언서가 올린 휴양지의 풍경은 비현실적인 에메랄드빛 바다와 최고급 호텔의 대리석으로 가득 차 있다. 정갈하게 차려진 조식 서비스와 그 옆에 무심히 놓인 명품 가방, 그리고 티끌 하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진 한 장. 우리는 그 찰나의 전시를 '선망'이라 부르며 찬사를 보내지만, 그 사각의 프레임이 잘라낸 외곽에는 카메라 렌즈가 결코 포착할 수 없는 비루하고 절박한 현실의 악취가 진동한다.
화면 속의 여유는 사실 고금리의 이자와 카드 할부라는 위태로운 밧줄 위에 서 있다. 사진 속의 우아한 옷차림은 반납해야 할 협찬품이거나 다음 달 결제일을 걱정하며 긁은 외상값의 결과물이다. 럭셔리한 호텔 방 안에서 최고의 각도를 찾기 위해 수백 번 셔터를 누르는 동안, 그녀의 스마트폰 상단 바에는 카드사의 연체 독촉 문자와 통장 잔고의 바닥을 알리는 경고음이 쉼 없이 떠오른다. 타인의 부러움을 사기 위해 구축한 가상의 성곽은 실상은 타인의 돈을 빌려 쌓아 올린 모래성이다. '좋아요' 숫자가 늘어날수록 현실 속 빚의 무게도 정비례하며 자아를 짓누른다.
우리는 이 기괴한 연극을 '영향력'이라는 이름으로 소비한다. 인플루언서는 타인의 결핍을 자극해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하고, 대중은 그 조작된 화려함을 보며 자신의 초라한 일상을 자책한다. 하지만 전시되는 삶이 완벽해질수록 그 이면의 허기진 구멍은 깊어진다. 화려한 조명이 꺼지고 필터가 제거된 민낯의 현실에서 그녀를 맞이하는 것은, 럭셔리한 소품들이 남긴 카드 명세서와 텅 빈 인간관계의 공허함뿐이다.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사느라 정작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시간과 자본을 모두 탕진해버린 셈이다.
자본주의가 낳은 이 화려한 괴물은 이제 우리 모두의 일상을 잠식한다. 누군가의 '전시된 행복'이 나의 '실질적 불행'이 되는 악순환 속에서, 우리는 실체 없는 빛을 쫓느라 발밑의 진흙탕을 보지 못한다. 화면 속 휴양지의 파도 소리는 사실 누군가의 절박한 한숨 소리를 덮기 위한 소음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열광하는 저 눈부신 일상은 사실 가장 비싼 이자를 치르고 빌려온 찰나의 환상에 불과하다.
인생은 프레임 안에 갇힌 스틸 컷이 아니라 프레임 밖에서 이어지는 지루하고도 무거운 연속체다. 빌려온 옷과 장소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 인생의 전부가 될 수 없음에도, 우리는 왜 자꾸만 그 허구의 빛에 눈이 멀어가는 것일까. 화려한 도금이 벗겨진 뒤 드러날 녹슨 현실을 감당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인플루언서가 찍은 우리가 선망하는 그 찬란한 풍경은, 사실 파산 직전의 영혼이 쏘아 올린 마지막 조명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