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하늘에서 내리는 하얀 축복인가 잔인한 재난인가

하늘이 내린 축복과 땅이 감당할 재난 사이

by 풍운

창밖으로 비산하는 하얀 가루를 보며 사랑하는 연인들은 '낭만'을 속삭인다. 맞잡은 두 손 위로 떨어지는 눈송이는 고백의 배경이 되고, 온 세상을 화이트 스크린으로 만드는 정적은 둘만의 공간을 더욱 아늑하게 만든다. 그들에게 눈은 하늘이 내린 가장 아름다운 축복이며, 사랑의 온도를 확인하게 하는 차가운 매개체다.

하지만 그 축복이 지상에 닿는 순간, 성질은 돌변한다. 낮은 곳으로 임하는 것은 비단 은총만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눈은 하늘에서 내려온 선물이 아니라, 중력의 법칙에 따라 어깨 위로 쏟아지는 잔인한 노동이자 생존을 위협하는 물리적인 무게일 뿐이다.

오죽하면 혈기 왕성한 청년들이 모인 군대에서조차 눈을 '악마의 똥'이라 부르겠는가. 끝도 없이 쏟아지는 하얀 가루를 쓸고 닦아내며, 그들은 낭만 대신 뼈를 깎는 피로와 통제할 수 없는 자연에 대한 경멸을 배운다. 누군가에게는 감수성을 자극하는 풍경화일지 모르나, 누군가에게는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는 형벌과도 같은 재앙이다.

눈은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게 내리는 것 같지만, 그것이 쌓이는 모양새는 지독하게 불평등하다. 따뜻한 카페 안에서 눈을 감상하는 이들에게는 시적 영감의 원천이 되지만, 차가운 골목길에서 폐지를 줍는 노인의 손수레 위로 쌓이는 눈은 당장 내일의 끼니를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이 된다.

축복과 재난의 경계는 하늘에 있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딛고 선 땅의 높낮이, 그리고 우리가 가진 온기의 온도 차이에 의해 결정된다. 생존의 현장에서 눈은 철저히 '물리'의 영역이다. 얼어붙은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기 위해 낡은 타이어에 체인을 감는 가장의 손마디는 하얗게 질려간다.

배달 오토바이가 빙판길에 미끄러질 때, 그 궤적은 결코 아름다운 곡선이 아니다. 그것은 생계를 위해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는 이들의 비명에 가깝다. 하늘이 내린 하얀 축복은 이렇듯 땅 위에서 누군가의 땀과 눈물로 치워져야만 비로소 도시의 일상으로 정화된다.

눈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도구일까, 아니면 세상의 민낯을 가려버리는 기만일까. 눈이 덮인 세상은 평온해 보이지만, 그 두꺼운 얼음 층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는 사투가 벌어지고 있다. 재난은 때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찾아와 우리를 방심하게 만들고, 준비되지 못한 이들의 존엄을 가장 먼저 앗아간다.

결국 눈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사회의 온도를 측정하는 척도가 된다. 축복을 누릴 권리가 있는 만큼, 그 축복이 타인에게 재난이 되지 않도록 살피는 책임 또한 우리에게 있다. 눈이 녹아 사라진 뒤에도 우리가 지켜내야 할 것은 하얀 풍경이 아니라, 그 차가운 계절을 함께 건너온 사람들의 시리지 않은 마음이다.

하늘은 그저 내릴 뿐이다. 그것을 축복으로 완성할지, 혹은 재난으로 방치할지는 전적으로 땅 위에 서 있는 우리들의 몫이다.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린 오늘, 우리는 풍경 너머의 사람을 보아야 한다.


우리가 하얀 풍경에 취해 계절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동안, 누군가는 젖은 양말과 시린 손가락을 움켜쥐고 이 하얀 장벽이 녹아 없어지기만을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