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세탁소, 과거를 미화하여 현재를 견디는 기만

미화된 잔해들로 쌓아 올린 가짜 실존의 성전

by 풍운

인간의 기억은 때로 정직한 기록보다는 따뜻한 위로를 선택하곤 한다. 우리는 지나온 시간 속에 남겨진 서툰 모습이나 작고 부끄러운 기억들을 마음속 깊은 곳 세탁기에 조용히 집어넣는다. 그리고 그 자리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는 보드라운 섬유유연제를 듬뿍 붓는다. 시간이 흐른 뒤 꺼내 본 기억은 어느새 빳빳하게 다려진 새 옷처럼 매끄럽고 향긋하다. 우리가 습관처럼 내뱉는 "그때가 참 좋았지"라는 말은, 사실 고단한 오늘을 버텨내기 위해 과거의 조각들을 예쁜 색깔로 물들인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이 포근한 세탁 과정을 거치고 나면, 흙탕물이 튀었던 어제의 코트는 어느덧 고결한 희생의 상징으로 탈바꿈한다.

이러한 기억의 보정은 우리 영혼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부리는 선한 기만이다. 지금 당장 마주한 현실이 너무나 차갑고 남루할 때, 우리는 과거의 나라도 조금 더 빛나고 괜찮은 사람이었기를 간절히 바란다. 서툴러서 놓쳤던 인연은 '아련한 첫사랑'으로 기억되고, 게으름 때문에 포기했던 꿈은 '어쩔 수 없었던 환경의 제약'으로 갈무리된다. 이 편집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잠시나마 고단한 현실에서 벗어나 안식처를 얻는다. 하지만 기억이 너무 화려하게만 보정될수록, 우리는 지금 내 곁에 있는 투박한 진실의 가치를 잊게 될 때가 많다. 보정된 과거는 달콤한 휴식을 주지만, 동시에 우리가 지금 딛고 서 있는 현실의 대지를 조금씩 흐릿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환상이라는 링거를 맞으며 현재의 갈증을 잊으려 할수록, 정작 우리가 돌봐야 할 오늘은 힘없이 말라가고 만다.

진정한 성찰은 이 따스한 세탁소의 조명을 잠시 끄고, 세탁되지 않은 기억의 원본을 가만히 응시하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조금은 구질구질하고 못났던 예전의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마주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지금의 내가 얼마나 치열하게 걸어왔는지를 깨닫게 된다. 기억을 너무 예쁘게만 꾸미려 애쓰는 마음은 어쩌면 지금의 나를 충분히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예쁘게 포장된 과거의 환상과 잠시 거리를 두고, 서툴렀던 어제의 나를 정면으로 안아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짜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삶의 투박함을 가리기 위해 동원했던 수많은 필터를 내려놓는 순간, 비로소 가려져 있던 우리 삶의 진짜 무늬가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낡고 해진 기억의 소매 끝동에서 우리는 도리어 가장 인간적인 온기를 발견하게 되는 법이다.

우리는 이제 스스로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내가 소중히 간직한 그 '아름다운 기억' 속에, 숨기고 싶어 외면했던 나의 진심은 어디에 있는지 말이다. 삶의 평범함을 견디기 위해 우리가 선택한 그 수많은 미화는 결국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스스로 만든 근사한 추억의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대본 없는 현실의 주인공으로 서는 것이 더 값진 법이다. 추억 세탁소의 문을 잠시 닫고 조금은 서늘한 진실의 거리를 걷다 보면, 우리는 화장기 없는 자신의 진짜 얼굴을 발견하게 된다. 못나고 부족했던 과거까지도 내 소중한 삶의 한 페이지로 인정하는 순간, 마음속의 허상은 사라지고 단단한 실존의 기쁨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그저 좋았던 기억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아프고 쓰렸던 기억까지 온전히 내 것으로 껴안을 때 우리의 영혼은 비로소 성숙이라는 열매를 맺는다.

삶이라는 긴 여정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챙겨야 할 것은 보정된 사진 한 장이 아니라, 그 길을 걸어오며 발바닥에 박힌 굳은살과 땀방울이다. 기억의 세탁소가 주는 안락함에 영원히 머물 수는 없다. 깨끗하게 세탁된 옷을 입고 다시금 삶의 먼지 속으로 뛰어들 준비를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다시 옷이 더러워지고 얼룩이 지더라도,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고유한 서사가 된다. 이제 가짜 위로의 사육장을 벗어나, 조금은 거칠고 투박하더라도 진실이 숨 쉬는 광장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나를 감싸줬던 보정된 과거라는 안락한 감옥에서 걸어 나올 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남루함조차 사랑할 수 있는 품격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