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규격화, 알고리즘에 길들여진 기계적 영혼

데이터의 통계학 속에 저당 잡힌 고유한 색채

by 풍운

현대인의 취향은 더 이상 내밀한 탐색의 결과물이 아니다.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열광하며, 어떤 것에 기꺼이 지갑을 여는지는 이미 거대한 데이터의 그물망 안에서 정교하게 예측되고 설계된다. 손가락 끝으로 화면을 넘길 때마다 나타나는 '당신을 위한 추천'은 친절한 가이드의 탈을 쓴 채 우리의 안목을 특정한 방향으로 길들인다. 우리는 자신이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선택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알고리즘이 쳐놓은 가두리 양식장 안에서 권유된 기쁨을 수동적으로 소비하고 있을 뿐이다. 음악도, 영화도, 심지어 매일 먹는 음식과 머무는 공간조차 데이터의 통계학이 정해준 효율적인 규격 안으로 매끄럽게 수렴해간다.

이러한 취향의 규격화가 무서운 이유는 우리 삶에서 '우연이 주는 경이로움'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본래 취향이란 낯선 것과 부딪히며 겪는 시행착오 속에서 비로소 단단해지는 법이다. 때로는 형편없는 영화에 실망하여 시간을 버리기도 하고, 우연히 길을 잃고 들어선 골목길에서 인생의 음악을 만나는 그 투박하고 비효율적인 여정이 나만의 고유한 안목을 만든다. 그러나 알고리즘은 실패할 확률을 제로로 수렴시키며 우리를 안락한 '취향의 감옥'에 가두고 자유를 속박한다. 내가 좋아할 법한 것들만 무한히 복제되어 배달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자신과 전혀 다른 타자의 세계를 마주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가로막힌다. 취향이 매끄러워질수록 인간의 개성은 메마르고, 우리는 각자의 색깔을 잃어버린 채 비슷한 데이터 값으로 치환되는 무채색의 기계적 존재로 전락한다.

알고리즘이 권하는 안락함에 길들여진 영혼은 점차 스스로 사유하고 느끼는 법을 잊게 된다. 내가 왜 이 곡을 좋아하는지, 이 옷이 왜 나라는 사람의 본질을 대변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그저 '좋아요'의 파도에 몸을 실을 뿐이다. 유행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해일은 알고리즘의 바람을 타고 우리를 획일화된 욕망의 항구로 사정없이 몰고 간다. 남들이 선망하는 공간에 가서 인증 사진을 남기고, 알고리즘이 검증한 음식을 먹으며 느끼는 만족감은 나의 진심이라기보다 집단적 최면에 가깝다. 데이터가 복제해낸 인공적인 취향들 사이에서 정작 '나'라는 주체는 소리 없이 증발해가고 있다. 취향의 풍요 속에서 겪는 이 기묘한 정신적 빈곤이야말로 우리 시대가 직면한 가장 서글픈 풍경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이러한 규격화는 우리의 고유한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실패가 없는 선택은 반대로 말하면 감동도 없다는 뜻이다. 내가 직접 발품을 팔아 찾아낸 작은 카페에서의 차 한 잔과, 지도 앱의 별점에 이끌려 찾아간 유명 맛집에서의 식사는 그 정서적 무게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효율성이라는 미명 하에 자신의 감각을 기계에 의탁한다. 스스로 느끼기 전에 이미 별점이 내 감각을 규정하고, 추천사가 내 감동의 크기를 제한하며 우리의 본능적인 안목을 약화시킨다. 이렇게 타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타인의 혀로 맛을 느끼는 삶이 반복될수록, 우리의 영혼은 자기만의 고유한 서사를 잃어버리고 거대한 빅데이터의 소모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우리가 진정으로 갈구해야 할 것은 최적화된 추천이 아니라, 나를 전율케 할 단 한 번의 낯선 마주침이다.

우리는 이제 알고리즘의 친절한 제안을 단호히 거절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정해진 궤도를 의도적으로 이탈하여 스스로 길을 잃어보는 방황이야말로 규격화된 영혼을 깨우는 유일한 충격 요법이다. 데이터가 결코 예측하지 못한 낯선 선율에 귀를 기울이고, 자본과 효율성이라는 잣대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용(無用)한 것들에 마음을 내어주어야 한다. 취향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세련된 전시물이 아니라, 내면의 깊은 심연과 맞닿아 있는 가장 정직하고 고독한 거울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남들의 데이터 속에 존재하지 않는 나만의 거칠고 투박한 기호를 발견할 때, 비로소 우리는 기계적인 삶의 관성에서 벗어나 생동하는 실존을 회복할 수 있다.

결국 취향이란 내가 누구인지를 증명하는 가장 치열한 생존의 방식이다. 알고리즘이라는 안락한 보조바퀴를 과감히 떼어내고, 자신의 감각이라는 위태로운 두 발로 거친 대지를 딛고 서야 한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묻고 고통스럽게 대답하는 그 고단한 과정을 거칠 때, 비로소 취향은 단순한 소비를 넘어 하나의 위대한 철학이 된다. 우리가 마주해야 할 것은 매끄럽게 보정된 타인의 피드가 아니라, 어딘가 비뚤어지고 서툴러도 나만이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나 자신의 진심이다. 규격화된 세상이 던져주는 공짜 선물을 거부하고 나만의 보물을 찾아 떠나는 이 외로운 모험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실존적 몸부림이다.


알고리즘이 안내하는 지도를 거부하고 실패할 권리와 헤매일 자유를 되찾는 그 지점에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우리만의 고유한 서사가 시작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