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이라는 종교가 낳은 기괴한 불침번
현대의 사무실은 거대한 연극 무대다.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수많은 배우가 책상이라는 무대 장치 앞에 앉아 '바쁨'이라는 배역을 수행한다. 분명히 손가락은 키보드 위를 분주하게 오가고 눈동자는 쉴 새 없이 모니터를 훑지만, 그 움직임의 실체는 공허하다. 본질적인 가치를 생산하기보다, 내가 지금 얼마나 열심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를 증명하기 위한 퍼포먼스. 이것이 바로 시간과 영혼을 헐값에 태워 올리는 현대판 제의, '가짜 노동'의 실체다.
이 가짜 노동의 중심에는 생산성이라는 이름의 가혹한 종교가 자리한다. 결과물보다 과정을, 성과보다 태도를 중시하는 기이한 문화 속에서 노동자는 스스로를 좀비로 만든다. 할 일이 없어도 창을 여러 개 띄워놓고 마우스 휠을 굴리는 행위는, 조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 기제다. 모니터의 푸른 불빛 아래서 영혼은 서서히 메말라가고, 사람의 고유한 창의성은 '일하는 척하는 기술'로 치환된다. 우리는 가치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자리를 채우는 부품으로서 자신의 실존을 겨우 유지한다.
사무실 좀비들이 내뱉는 한숨은 노동의 고단함이 아니라, 의미 없는 시간의 무게에서 기인한다. 아무런 진전 없는 회의를 무한히 반복하고, 출력되지도 않을 보고서를 위해 서식을 다듬는 행위 속에서 사람은 자신의 생명력이 낭비되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직감한다. 하지만 이 연극을 멈출 용기는 없다. 텅 빈 시간의 공포를 마주하기보다, 차라리 바쁜 척하며 스스로를 속이는 편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가짜 노동의 굴레 속에서 자신의 시간을 저당 잡힌 채, 서서히 자아를 잃어가는 현대판 노예와 다름없다.
이 기괴한 불침번을 끝내기 위해서는 '노동'의 정의를 다시 써야 한다. 자리에 앉아 있는 시간이 곧 성실함이라는 낡은 믿음을 부수고, 사람의 영혼이 깃들지 않은 모든 행위를 노동의 목록에서 삭제해야 한다. 가짜 노동은 조직을 좀먹을 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을 회생 불가능한 상태로 파괴한다. 일하는 척하며 태워버린 그 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우리의 생명이다. 우리는 이제 모니터 뒤에 숨어 눈치 보는 좀비의 삶을 거부하고, 짧더라도 밀도 있게 존재하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진짜 노동의 현장으로 회귀해야 한다.
결국 가짜 노동의 종말은 자기 기만을 멈추는 것에서 시작된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세상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 아니면 그저 퇴근 시간을 기다리는 알리바이에 불과한지 정직하게 물어야 한다. 사무실의 불빛이 꺼지지 않는 이유가 열정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라면, 그곳은 일터가 아니라 영혼의 공동묘지다. 우리는 이제 텅 빈 바쁨의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가짜 노동으로 점철된 삶의 끝에 남는 것은 부서진 자아와 낭비된 세월뿐임을 기억할 때, 마침내 우리는 좀비의 가면을 벗고 사람다운 삶의 보폭을 회복할 수 있다.
시간의 껍데기만 태우는 기만을 멈추고 무의미한 관성을 끊어낼 때, 우리 공동체는 맹목적인 속도전을 넘어 깊이 있는 성찰로 나아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