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틈없는 상상력의 서술,
다양한 인물들의 개성,
다채롭고 풍부한 이야기,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
『마담 보바리』는 세계 문학의 유명한 고전이다. 이 책을 읽고자 한 이유에는, 나에게 있어 이 책이 예부터 전하여 내려오는 가치 있고 훌륭한 문학이라는 의미의 '고전 문학'이라는 것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랑받아온 데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이유도 있고, 좀 더 솔직한 이유에는, 중학교 시절부터 몇 번이나 고전 문학을 읽으려 도전했지만, 제대로 읽은 고전은 『호밀 밭의 파수꾼』, 『구운몽』 등으로, 『데미안』, 『폭풍의 언덕』, 『노인과 바다』, 『파우스트』 등 읽다 중간에 포기하거나 지루함을 느껴 반납하기 일쑤인 책들이 많았다. 이 과정에서 왠지 모를 오기가 생겼달까. 하지만, 오기로 무장해 다시 책을 꺼내 들어도 '읽다 말고 반납, 다시 빌리고 읽다 말고 반납'의 루트는 변함이 없었다. 이유는 지루함을 느끼게 되는 원인인 '어려움'이 항상 내 안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전에 대한 어려움이 나중에는 거부감으로까지 이어지기는 싫었는데, 왜냐하면 『강신주의 감정 수업』이라는 책을 읽고, 욕망, 기쁨, 자긍심 등 인간 본연의 감정을 인문학에서 많이 다루고 있고, 이러한 감정들은 내가, 더 나아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감정을 죽이는 것, 혹은 감정을 누르는 것은 불행일 수밖에 없다. 살아 있으면서 죽은 척하는 것이 어떻게 행복이겠는가. 그러니 다시 감정을 살려내야만 한다. 이것은 삶의 본능이자 삶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관에 들른다. 아니면 홍대나 신사동 가로수길 근처의 탱고바에 갈 수도 있다. (…) 아니면 소설이나 시집을 사려고 서점을 방문할 수도 있다. (…) 더불어 각각의 감정들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굴곡지게 하는지 걸작으로 보여준 수많은 문학가들도 있다.존 파울즈, 톨스토이, 조지 오웰 (…) 이렇게 이야기해도 되겠다. 거장들의 작품들은 각각 하나의 감정을 다채롭게 분석하는데 할애되어 있다고 말이다.
- 강신주의 감정 수업_17p, 25p 부분.
하지만 나는 인간 본연의 감정 중에서도 어두운 느낌의, 욕망, 야심, 경멸 등을 주로 다룬 작품은 읽고 나면 지금 현실을 부정적으로 느끼게 될 것 같아 많이 꺼려 왔었다. 그래서 이러한 주제를 주로 다루지 않거나, 다뤘어도 해피엔딩으로만 끝나는 작품을 읽고 싶어 했었다. 그런데 『강신주의 감정 수업』이라는 책을 읽고, 또 나이가 점점 들어가며 느끼는 것은 모든 감정은 다 저마다의 이유가 있고, 어떤 감정이든 삶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해피엔딩으로만 끝나는 다소 이상적인 작품뿐만 아니라 현실적이고 내 안의 어두운 감정을 반영한 듯이 적나라하게 글로써 나타내는 작품을 읽고 싶었다. 그리고 또 고전은 결국 지루하다는 내 편견을 깨고 싶기도 했다. 책 한 권을 읽는 데에 갖가지 이유들과 다소 당찬 포부를 안고 읽기 시작한 작품이지만, 역시나 고전 문학 작품은, 지루하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루함 속에서 내가 찾아낸 이 소설의 묘미, 그리고 매력은 분명히 있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 같다.『마담 보바리』는 과연 읽을 만한 소설인지, 이 책이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 그 매력 속으로 빠져보는 감상을 시작한다.
나는 로망이 있다. 로망의 뜻에 기대어 내 로망을 이야기해보자면, 로망이란, 첫 번째로는 중세 유럽에서 발생한 통속 소설이라는 뜻도 있지만 두 번째로는 실현하고 싶은 소망이나 이상, 또는 꿈, 낭만이라는 뜻으로도 넓게 사용되고 있다. 두 번째 뜻과 닿아 있는 내 로망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카페에서 공부하는 것이나, 또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책을 읽고 그 책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 또 한 주제에 관해서 많은 사람들과 서로의 의견을 존중해가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 등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생각하는 어떠한 장면이나, 어떠한 단어에 대한 막연한 로망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랑’이라는 단어에 대해 어떠한 로망이나 이상향을 가진 사람은, ‘서로 아껴주고 서로를 존중하는 사랑’이라든지, 책에서나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백마 탄 왕자나 공주 같은 사람과 서로 마음을 맺는 사랑‘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사랑에 대한 로망이, 너무나 크게, 마치 환상처럼 자신의 마음속에 품고 사는 사람이라면 어떠할까. 이 로망에 대한 환상이 무너져 버려, 그 욕망을 채울 수 없음에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버리게 된다면 어떠할까. 여기에 이 소설의 주인공, 엠마가 있다. 바로 이 소설의 제목인, 마담 보바리이다.
엠마는 베르토라는 시골에 살며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은 여인이다. 엠마는 샤를르라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는데, 샤를르와 결혼한 직후에는 결혼에 대한 이상으로 인해 들뜨고 행복한 듯하지만, 그녀가 생각하는 사랑의 이상에 맞지 않자 그때부터 이 둘의 관계는 삐걱대기 시작한다.
결혼하기 전까지 그녀는 사랑을 느낀다고 여겼었다. 그러나 그 사랑에서 응당 생겨나야 할 행복이 찾아오지 않는 것을 보면 자신이 잘못 생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 55p.
<맙소사, 내가 어쩌자고 결혼을 했던가?> 그녀는 우연의 다른 짝 맞춤으로 누군가 딴 남자를 만날 도리는 없었을까를 자문했다. 그리고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그 사건들, 달라졌을 그 생활, 알지 못하는 그 남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를 상상해보려고 애썼다. (…) 그런데 그녀는, 그녀의 삶은 마치 햇빛 받이 창이 북쪽으로 나 있는 지붕 밑 골방처럼 냉랭했고 소리 없는 거미와도 같은 권태가 그녀의 마음 구석구석의 그늘 속에 거미줄을 치고 있었다.
- 70p.
엠마는 정말 아름다운 여인으로 묘사되지만, 그녀가 가진 욕망은 그다지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다. 심지어 욕망을 분출하지 못한 것에 대한 탓을 샤를르에게로 돌리는 모습은, 절대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다. 급기야 그녀는 새롭게 이사 간 용빌 라베이라는 마을에서 만난 레옹이라는 남자와 점점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레옹을 사랑한다는 감정을 철저히 억누르려 한다. 감정을 억누르려는 과정에서 엠마는 점점 더 탐욕과 분노와 증오의 감정을 키우게 된다. 이와 같은 잘못된 방향은 레옹이라는 남자가 마을을 떠나면서 신경성 발작이 심해지게 되고, 급기야 나중에는 로돌프라는 새로운 남자와 불륜 관계에 빠지게 된다. 로돌프와 헤어진 후에는 우연히 다시 재회한 레옹과 불륜 관계에 빠지게 된다. 엠마의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부와 허영에 대한 집착, 사랑과 결혼에 대한 이상, 그녀가 보아온 책 속에서의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싶은 환상을 품은 욕망은 샤를르가 아닌 로돌프, 레옹과도 이루어질 수 없었다. 결국 그녀의 마지막은 음독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 소설은 주로 1부는 샤를르의 이야기로, 2부는 엠마의 이야기로, 3부는 레옹의 이야기로 서술되지만, 이러한 이야기를 바라보는 시점은 바로 작가다. 그래서 샤를르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는 듯하다가도 다시 엠마의 시점으로, 다시 레옹의 시점으로, 또 다른 인물은 박학다식한 체하기 좋아하는 약제사 오메의 시점으로 이어진다. 결국은 작가가 이 다채로운 인물들의 심리를 서술하는 것이다. 만약, 이 소설이 1인칭 시점의 소설이었다면, 주인공의 심리만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다양한 인물들의 심리를 작가가 다 알고 있고, 상황이 바뀌어 감에 따라 심리를 서술해주기 때문에 다채로운 인물들을 상상할 수 있는 감상의 풍부함이 더 커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면으로 볼 때 이 소설의 묘미는 심리 서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빈틈없는 생각의 서술로 말미암아 내 상상력이 표현들에 따라갈 수 없는 느낌조차 받을 정도로 모든 장면, 장면마다의 서술은 가히 압도적이다.
잎이 진 재스민의 가지 사이로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들의 등 뒤에서 냇물이 흐르는 소리, 그리고 가끔 강둑에서 마른 갈대가 서걱이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저기에서 시커먼 덩치의 그림자들이 어둠 속에서 부풀어 올랐고 그것들은 때때로 일제히 떨리면서 일어났다가 두 사람을 삼켜버리려는 거대한 검은 물결처럼 한쪽으로 쓰러지곤 했다. 밤의 추위 때문에 두 사람은 더욱더 바짝 껴안았다. 그들의 입술에서 새어 나오는 한숨은 더욱 거세게 느껴졌고 희미하게 보이는 서로의 두 눈이 더 커 보였다. 침묵 속에서 그들이 나직하게 주고받는 말들만이 수정같이 낭랑한 소리를 내며 영혼 위로 떨어지면서 몇 겹의 진동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 245p.(엠마와 로돌프가 안고 있는 장면)
이 책은 제목에 나와있다시피 보바리 부인의 이야기이며, 그녀의 전기 정도로 보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심리 서술이 거의 주를 이룬다. 그녀의 심리를 읽으며 느낀 바로는, 사랑에 대한 이상이 사람을 파국으로 몰아갈 수 있구나였다.
그녀의 돈에 대한 집착, 허영심, 욕망이 무조건 나쁘다고 말할 수 없지만, 그녀의 이로 인한 인생의 행로는 공허함 그 자체였다. 행복을 찾기 위해 불륜을 저질렀지만, 그 속에서 채워지지 않은 욕망에 공허함을 느끼고, 그로 인한 기대, 우울, 권태 등이 그녀를 또 다른 불륜으로 내몰았으며, 자신을 생각해주는 샤를르에게는 결혼이라는 틀에 박혀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는 사실에 대한 탓을 돌리고, 극도의 혐오감을 느끼게 되었다. 도대체 그녀는 왜 불행했을까. 왜 그토록 행복을 찾고 싶어 했으면서 행복하지 못했을까. 그녀의 부의 화려함을 좇는 것과 허영심은 본능이었겠지만, 그녀는 샤를르와 결혼 생활 속에서 자신의 사랑에 대한 로망을 수정하거나, 현재의 소중함을 받아들이는 선택지도 있을 수 있었고, 자신의 감정이 옳다고 믿는다면, 지금의 결혼 생활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멀리 떠나버리는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상황이 따라주지 않아서, 또 지금의 안정 또한 버릴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잠재우지 못한 채 점차 신경질적이게 되어갔다. 그리고 결국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나는 결국 ‘사랑에 대한 이상’이 그녀를 나락의 길로 빠뜨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가진 감정을 우리가 온전히 알고 그 감정을 어떻게든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간다면, 우리는 주위 사람들에게 폐는 끼칠 수 있을지언정, 나 자신은 행복할 수 있다. 또 설사 자신의 감정이 향하는 방향으로 행동하였는데, 결과가 나빴다면, 적어도 나중에 행동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는 막을 수 있다.
엠마에게는, 욕망이 너무 강렬했던 것일까, 감정을 인정하지 않은 것일까, 또는 너무나 인정해버린 것인가. 이와 같은 엠마의 이야기를 담은 마담 보바리는 우리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로망의, 이상향의, 고약한 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 로망의 욕망을 추구하는 데에 있어 어떤 위험한 측면을 경고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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