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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이 Feb 25. 2020

우리 납작이들의 기분에 관하여, 『책갈피의 기분』

김먼지 작가의 소소하지만 은밀한 즐거움.





책갈피의 기분_김먼지






01. 어떤 책인가?


   

   이 책은 정말 웃기다. 읽다가 나도 모르게 피식하게 되는 부분들이 많다. 출판 편집자답게 글을 잇는 게 자연스럽고 또 자연스럽게 부담 없이 재밌게 읽힌다. 하지만 마냥 재밌기만 하냐. 그건 또 아니다. 이 책은 웃기면서도 슬프다. 출판 편집자로서 8년. 긴 시간 동안 책 사이에 끼어 책갈피로 지낸 그녀의 출판 편집 일상은 슬프다. 그래서 웃프다.



이 책은 김먼지 작가가 월급도 제대로 챙겨주지 않는 조그마한 출판사에서 일한 것을 시작으로 하여 여러 출판사를 다니며 편집장까지 지낸 그녀의 출판 편집 일상을 담았다. 당연히 책과 글과 관련한 다양한 일상 이야기를 한다. 어찌 보면 그녀의 직업이 주는 느낌 때문에 '편집자'라는 주제가 좀 더 강조되는 듯하지만, 전체적인 주제는 '그녀의 기분'이다. 그리고 그녀의 책, 『책갈피의 기분』이 나오기까지의 그녀의 마음을 그린다.



사실 나는 출판 편집 관련 블로그에서 이 책이 추천 목록에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 빌려다 읽기 시작하였는데, 출판 편집과 관련한 여러 에피소드와 출판 편집자가 되기 위한 여러 팁, 작가가 되기 위한 팁 등을 알려주어 나처럼 편집자를 꿈꾸는 사람이나 작가를 꿈꾸는데 어떻게 투고를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책, 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 재밌게 읽을 수는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도 앞서 말했듯이 김먼지 작가의 화법이 재미있고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방식이 흡입력이 있어서 흥미롭고 가벼운 에세이를 찾는다면 추천하고 싶다. (작가의 책을 만드는 일의 피 땀 눈물이 서린 이야기들은 결코 가볍다고 할 수는 없지만..)






차례와 '편집자의 메일"






02. 어떤 매력이 있는가?



   이 책의 특이한 점은, 차례의 제목들이 굉장히 재밌어서 흥미를 유발한다는 점과, 내용 중간중간에 나오는 '편집자의 메일'이라는 부분이다. 특히 '편집자의 메일' 부분은 나중에 내가 출판 편집자가 되었을 때 꼭 참고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던 부분으로 실제 편집자는 어떤 식으로 메일을 보내는지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또 사진으로는 담지 않았지만, 뒤에 '편집자의 폴더' 부분도 굉장히 자세해서 나중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03. 개인적인 감상



책이 상품인 까닭이다. 잘 팔려야 하기 때문이다. 팔리지 않으면 출판사는 손해를 본다.

- 42p.



   이 책을 읽으며 '책이 상품'이라는 말이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사실 출판 편집자의 일을 차차 알아가면서  '책은 상품'이라는 것을 점점 더 깨닫고 있지만, 깨달아갈수록 두려움은 더 커지고 있다.



왜냐하면, 내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좋아하는 게 책을 읽고, 책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인데 책을 존재 자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물질적인 것으로만 느끼게 될 것 같아서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책이 나에게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어떤 것이 아닌, 오로지 '상품'으로만 느끼게 될까 봐 무서운 것이다. 책을 상품으로만 느끼게 된다면,  김먼지 작가처럼 '책이 싫어증'에 걸려도, '책태기'에 걸려도 책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지 않는 한 이 질병들을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더 무서웠다. 다 나는 행복하게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은데, 행복하기 위해 선택한 일이 오히려 불행을 초래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을 기반으로 한 두려움이다.



김먼지 작가도 '책이 싫어증'과 '책태기'에 걸릴 만큼(실제로 있는 병은 아니다. 이 질병의 의미들은 92페이지를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내가 지금 걱정하는 이 두려움에 파묻혀 있는 듯해서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안 좋았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편집자에게 있어서 엄청난 독이 되는  '책이 싫어증'과 '책태기'를 앓던 김먼지 작가가 '독립 서적'을 접하고 이 병들을 극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날 처음 만난 독립출판물들은 내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하나가 대박이 나면 그대로 주르륵 따라 찍어내는 천편일률적인 대형서점 책만 보다가, 소재도 모양도 제각각인 독립 서적을 보니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 98p.




이 구절을 읽고 작가가 독립 서적을 만나고 오직 글을 읽는 재미에 빠져서 질병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마치 내 일인 것처럼 즐거웠었다. 이 책에서 김먼지 작가는 편집 일이 99%가 힘들고 1%가 좋다고 말하는 느낌인데도, 8년 동안이나 편집 일을 해왔다는 걸 알기 때문인지 글에서 느껴지는 힘듦 속에 애정이 깃들어 있는 것 같이 느껴졌었는데, 그런데도 현실에 치여 그 애정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듯했었다. 그런데 김먼지 작가 말마따나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니. 뭔가 너무 힘들어서 좋아하던 일에 열정을 잃어버린 친구가 다시 열정 어린 눈빛을 되찾는 모습을 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달까.



김먼지 작가는 독립 서점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후에 4부에 다다라서야 독립출판물로 자신의 글을 준비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그리하여 이 책,『책갈피의 기분 』이 나온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 이르러, 김먼지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더 많은 글을 쓰고 싶고, 가능하면 책으로도 만들고 싶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이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냥 좋아서다. 재미있어서다. 사랑하는 내 고양이를 궁디 팡팡 할 때의 감촉도 쓰고 싶고, 사라진 단골 카페의 라테를 그리워하는 마음도 쓰고 싶다. 그리고 나서는 또 뭘 써볼까, 어떻게 만들어볼까, 순간순간이 즐겁다. 그래, 아무래도 책을 쓰기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246p.




나에게도 김먼지 작가처럼 책이 싫어지게 되는 순간에도, 책이 질리는 순간에도 다시 책의 매력에 빠지는 날이 올까. 또 책을 상품으로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어떤 것으로 느낄 수 있을까. 어떤 상황이든 그때가 되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기에, 책과 관련된 일을 업으로 삼기로 결정한 지금에서는, 이 문제는 그저 앞으로 나아가 내 꿈을 이루고 나서 고민하기로 한다.



어쨌든, 이 책을 읽고 나니  많은 고민이 생성되기도 했지만, 왠지 모르게 서로 얼굴도 모르고 대화도 안 나누어 본,  친구 한 명이 생긴 듯한 기분이다. 이 책은, 또 이 작가는 왠지 모르게 응원해주고 싶고, 앞으로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해주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책을 읽고 나서 나와 비슷한 마음이 드는 사람이라면, 우리의 마음을 아주 잘 표현한 책의 뒤표지를 보고 고개를 끄덕끄덕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납작이들 모두 파이팅!




인상적인 책 소개 글. 원래 읽으려 한 책이지만, 이 소개 글이 너무 웃기면서 공감 가고 인상적이라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한 번 더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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