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기가 자그마한 탬버린은 만들기 쉽고 다루기도 편하다는 장점 덕분에 친근한 악기로 꼽힌다고 한다. 탬버린은 그저 손으로 리듬에 맞춰 치기만 하면 되는, 별도의 사용법을 알아야 할 필요가 없는, 강력한 장점덕분에 우리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악기 중에서 가장 부담 없이 대할 수 있는 악기이지 않을까. 모든 탬버린의 종류와 크기, 재질은 각각 다르지만 야트막한 원형이나 반원, 또는 다각형 테에 파여진 홈에 금속으로 만들어진, 흔들면 찰찰 소리가 나는, 징글(jingle)이 달려있다는 사실만큼은 동일할 것이다. 우리들이 자주 찾는 노래방에서 아주 쉽게 볼 수 있는 탬버린은, 손으로 잡고 살살 흔들기만 해도 자신의 존재감을 소리로서 뽐낸다.
탬버린의 친근함과 편안함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닮았다. 애석하게도, 삶은 그리 친근하지도 편안하지도 않지만,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다는 특징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닮았다. 이러한 탬버린에 달린 작은 금속인 징글(jingle)은, 우리의 삶을 소리로써 보여주는 듯하다. 송의 말처럼, 삶은 징글징글, 정말 징글징글징글하다고.
『탬버린』의 첫인상은, 제목만 들었을 때는 통통 튀는 경쾌한 느낌이 들었고, 샛노란 표지까지 더해 아주 밝은 소리를 내는 글이 담겨있을 것이라 짐작했다. 「핀 캐리(pin carry)」라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책은, 탬버린이라는 악기가 주는 발랄하고 신나는 느낌보다는, 꽤나 침울하고 어두운 현실의 소리를 닮은 여덟 개의 단편 소설 모음이었다.
첫 번째 이야기인 「핀 캐리」에서는, 믿고 의지했던 오빠가 세상을 갑작스레 떠나, 인숙이라는 화자가 '볼링'을 통해 그의 삶을 다시 되짚어보는 이야기를 그린다. 「공설 운동장」에서는 화자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새로운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 고향을 떠났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이뤄지는 사랑과 이별 이야기를, 「우리가 이웃하던 시간이 지나고」에서는, 어린 시절에 받은 가정 환경으로 인한 차별의 아픔을 간직한 화자가 떠났던 고향의 친구를 치과에서 다시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이자 네 번째 이야기인 「탬버린」에서는, 은수라는 주인공이 다니는 회사 내에서 벌어지는 현재의 이야기와 절친한 사이였던 '송'이라 불리는 친구와의 '탬버린'과 얽힌 과거 이야기를 교차 전개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멀고도 가벼운」에서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사이인 보배 이모와 취준생인 화자의 이야기를, 「가져도 되는」에서는 남성 화자의 시점에서 아내와 함께 다녔던 대학에서 있었던 이야기와 현재 펼쳐지는 대학 동기의 결혼식 이야기를 다룬다. 「두고두고 후회」에서는 각자의 삶을 살기에도 벅찬 와중에 암에 걸린 아버지의 소식을 접하고 함께 멀리 있는 엄마를 찾아가는 가족의 이야기를, 「영국산 찻잔이 있는 집」에서는 남성 화자의 시점으로 마음에 깊은 상처가 있는 언니를 돌보는 헤어진 여자친구의 실종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각각 다른 여덟 개의 단편 소설이지만, 이 이야기들을 통찰하는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면, 단연 「탬버린」이다. 「탬버린」을 읽기 전까지는 각각의 이야기들을 어떻게 '탬버린'이라는 제목으로 다 집약할 수 있을지 궁금했고 가능할까 싶었다. 이 단편 소설들은 비슷한 점들도 존재하지만, 분명하고 확실한 차이점들도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그 첫 번째가 화자의 성별 설정이다. 첫 번째부터 다섯 번째 이야기, 그리고 「두고두고 후회」는 여성 화자가 이야기를 1인칭 서술 시점으로 이끌어 나간다. 「가져도 되는」 과 마지막 이야기는 남성 화자의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가 서술된다. 두 번째는, 소설의 내용이다. 다른 제목, 다른 화자, 다른 상황들로 인해 당연히 다른 내용이지만, 전반적인 이야기의 설정뿐만 아니라 대화의 서술 방식 또한 달랐다.
다르면서도 비슷한 점들은, 첫 번째가 소설 속 대부분의 화자가 처한 상황이다. 가난하고, 고향을 떠나고 싶어 하고,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변화를 원해서 서울행을 선택하고, 또 가족에 대한 상처를 가지고 있다. 여덟 편의 이야기 속에서 그들은 짧은 단편 소설의 호흡 속에서도 자신이 처한 현실과 그 고단함과 고민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고, 울분과 격정을 털어놓는다. 독자 입장에서는 그 소리침들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너무나 우리의 현실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주인공들의 처지를 읽으며 상황을 알게 될 때마다 입을 꾹 다무는 일이 많았고, 이러한 현실이 소설 속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쉽게 침울해졌다. 공감했기 때문이다. 공감하면서도 정말 그럴까, 내가 사는 현실이 정말 이럴까. 싶은 부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이 깊은 나락 속으로 떨어뜨리는 책이라는 것은 아니다. 차가운 현실을 각각의 이야기를 통해 짧고 굵게 담으며 문장 곳곳에 배치한 재밌는 표현들이 있어 마냥 어둡지만은 않다. 그래서 탬버린처럼, 너무나 쉽게 우리 곁에 있어 삶의 징글맞음을 느끼게 하는 일일지라도, 손으로 마구마구 탬버린을 치면, 잠시나마 고단함이 날아갈 것 같은 희망 또한 존재한다. 이 책은 이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김유담 작가는 한 신문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족은 저에게도 절박한 이야기라서 소설로 쓸 수밖에 없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보면 뻔하고 진부한 얘기로 비칠 수 있겠지만, 보편적이라고 해서 덜 아픈 게 아니잖아요. 그 상처들을 들여다보는 심정으로 소설을 쓰게 됐습니다.”라고 말이다. 가족부터 시작해 대학, 취업, 회사, 인간관계 등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보편적인 상처의 소재들. 특히 가족과 관련한 이 소설들의 이야기 곳곳에 작가의 경험 또한 묻어 나왔기에 그렇게 마음속 구석구석을 후벼파는 듯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던 것일까.
또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을 ‘청춘 짠내 서사’라고 하더라고요. 아니면 구질구질한 ‘집구석 서사’랄까요. 제가 썼지만, 제가 다시 봐도 그런 느낌이었어요.” '청춘 짠내 서사', '집구석 서사'라는 말이 이 책을 설명하는 짧고 명쾌한 설명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청춘들의 눈물과 땀이 밴 생활기와 소설 속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들의 이야기를 이 책은 자주 들려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 말만으로는 이 책을 다 설명하기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무조건 해피엔딩을 선호한다. 사람과의 관계도 이왕이면 잘 끝내길 원하고, 영화도 해피엔딩이 아니면 잘 보지 않는다. 당연히, 소설 또한 새드엔딩이라는 말을 들으면 솔직히 고민한다. 이 소설집의 결말이 해피다, 새드다, 판단할 수는 없지만, 앞서 계속 말했듯이 '해피' 쪽은 영 아닌 듯하다.그럼에도 난 이 책이 좋았다. 읽으면, 웃으며 읽을 수만은 없는 차가운 현실에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파이는데도, 이 책이 좋았다. 그 이유는, 『탬버린』의 뒤표지에 적힌 글처럼, "삶의 징글맞음이 경쾌하게 울리는 소설"이었기 때문이었다.
삶의 징글맞음이 경쾌하게 울릴 수 있는 이유는, 작가의 담담하면서도 간간이 웃음을 띠게 하는 필력덕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반복되는 출신의 한계, 노력해도 이뤄지지 않는 벽을 깊이 절감하는 소설 속 대부분의 '나'와 '나'를 둘러싼 인물들을 담담한 어조로 그리고, 그 인물들은 현실을 직시하거나, 도전하거나, 탬버린을 치거나, 그저 견디거나, 후회하지 않기 위해 행동하는 등 자신만의 방식으로 꿋꿋이 삶을 이어나간다. 그 과정은 아프지만, 미소 짓게 만드는 순간들 또한 존재한다. 그 점이 해피엔딩 선호자인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중간에 덮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한 것 같다.
단편 소설이어서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들 만큼 김유담 작가의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방식은 흡입력이 있었고 짜임이 독특했고 무엇보다 재밌었다. 「핀 캐리」라는 이야기에서는 ‘볼링’이라는 소재를 이야기 초반에 등장시켜 이야기의 모든 부분에 닿았다가, 끝자락까지 이어나가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볼링이라는 소재가 현실과 그리 맞닿아있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여겼는데, 자연스럽게 이어나가는 능력이 빛을 발하는 듯했었다.
또한 소재를 이용한 비유 표현들이 무릎을 탁 치게 할 만큼 적절하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꽤 많았다. 예를 들면, '포도'와 관련된 이야기가 등장하면, 그 뒤에 '썩은 포도알처럼 문드러진 가슴속 응어리'라거나, 볼링의 스페어(spare) 처리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하면, 스페어 처리가 힘들기 때문에 '식구끼리 서로 붙어살아야 처리가 쉽다'거나하는 식이다. 앞서 말했듯 곳곳에 배치한 이러한 재밌는 표현들이 있기에 여덟 편의 징글들이 그저 징글징글징글하게만 느껴지지 않는 것이 아닐까?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가 있다. 그저 '힘든' 시기라고 뭉뚱그리기에는 그 안에 담긴 가시와 상처들이 꽤나 아리지만, 나에게도 우리 가족에게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 그 시기가 지금이 완전히 아니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삶이 징글맞다, 삶이 버겁다, 삶이 지친다,라는 말에 단 한 번이라도 공감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나는 삶의 징글맞음을 버텨 얻은 지금의 여유와 나름의 만족을 깊이 감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때 그 시절도 돌아가, 다시 똑같은 시기를 견뎌내라고 한다면, 그러고 싶지도 않고 더 잘 버텨낼 자신이 거의 없다. 이 소설은 그런 시기에 봉착한, 또 봉착했었던 우리의 고민과 아픔과 상처를 담았다. 그래서 가볍게 읽을 수만도 없고 읽는 내내 즐겁게 읽을 수만도 없다. 작가는 글을 통해 상처를 극복하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작가가 전해주는 여덟 편의 징글들을 통한 그 진심이 우리의 징글도, 충분히 경쾌하고 가볍게 흔들어줄 것이라 소망한다.
책 표지가 '탬버린'이라는 단어에 걸맞게 잘 디자인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책 표지의 '탬버린'이라는 단어 위에 표시도 잘 어울린다. 이렇게 디자인하는 건 처음 봤는데,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글씨체도 가로가 더 길면서 뚱뚱한 느낌인데, 얄팍한 느낌이었으면 지금 글씨체의 묵직한 느낌은 들기 어려웠을 것 같다. 또한 작가 소개란에서 김유담 작가가 보라색 셔츠를 입고 계신데, 속지도 보라색으로 하고, 글씨 색도 보라색으로 한 것에서 디자인하신 분의 센스가 돋보였다! 단순한 우연일 수도 있지만.. ㅎㅎ
또한 책 뒤표지에 '삶의 징글맞음이 경쾌하게 울린다!- 지친 감각을 일깨우는 단단하고 탄탄한 서사의 등장'이라는 문구가 이 책의 설명에 딱 부합한다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깔끔하고 세련되게 표현하기는 힘들 것 같다. 양장본으로 디자인하지 않아서 가볍고 전체적으로 밝은 느낌의 표지라 들고 다니며 읽기에도 좋을 것 같다! 가장 놀랐던 건, 차례를 둥그스름하게 나열한 것이었는데, 탬버린의 둥그스름한 느낌과 닮아있어서 편집자분의 센스에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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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블로그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책 정보
* 본 글의 도서는 창비 출판사의 서평단 이벤트에서 제공받은 것입니다. 책을 읽고 난 후 감상은 오로지 저의 생각입니다. 서평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신 창비 출판사에 감사드립니다.
* 중간에 인용한 기사 링크입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4082117015&code=96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