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 시인의 삶과 좋은 언어를 찾아서.
좋은 언어- 신동엽
외치지 마세요
바람만 재티처럼 날려가 버려요.
조용히
될수록 당신의 자리를
아래로 낮추세요.
그리구 기다려 보세요.
모여들 와도
하거든 바닥에서부터
가슴으로 머리로
속속들이 구비돌아 적셔 보세요.
허잘 것 없는 일로 지난 날
언어들을 고되게
부려만 먹었군요.
때는 와요.
우리들이 조용히 눈으로만
이야기할 때
허지만
그때까진
좋은 언어로 이 세상을
채워야 해요.
당신의 좋은 언어란 무엇인가? 누군가는 품위가 있고 아름다운 언어라 말할 수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누구나 알아듣기 쉬운 언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좋은 언어’의 의미를 규정하는 것은 어쩌면 한 사람의 가치관과도 맞닿아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처한 환경과 상황에 따라 당연하게도 생각이 달라지고, 가치가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언어’라는 것은 나에게는 어떤 의미였던가? 내가 생각하는 좋은 언어는 ‘따뜻한 느낌을 주는 언어’라고 막연하게 생각해왔었다. 어떠한 역사적 의식 없이 일상 속 지친 사람들에게 따뜻함이란 위로를 선물해주는 언어가 좋은 언어가 아닐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시대는 촛불 집회를 비롯한 여러 시위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국가의 압박과 강요에 어쩔 수 없이 응해야 하는 시대도 아니고 더 더군다나 일제강점기 시대도 아니다. 이런 평탄하다고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좋은 언어’의 의미는 다소 부드럽고 유순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1930년대부터 1960년대의 휘몰아치는 소용돌이의 역사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한 사람은 어떠했을까? 이 역사의 중심에 신동엽 시인이 있다. 우리들이 너무나 익히 들어 익숙해져 있는 그의 삶 속에서 ‘좋은 언어’란 무엇이었을까?
신동엽 시인의 삶 속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보았다. 첫 번째는 신동엽 시인의 현실 참여적인 의식의 구체화 과정과 두 번째는 그가 우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다. 신동엽 시인은 1930년대에 태어남과 동시에 일제 강점기의 현실에 놓였다. 이 시기는 민족의 상처가 극심했던 시기로, 어린 신동엽 시인에게는 적지 않은 정체성의 혼란과 복잡한 현실에 대한 실의와 슬픔이 극심했던 시기일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이런 피폐한 상황 속에서도 어린 시절을 바라보는 시인의 작품 속에는 절망적인 현실을 외면하려 하지 않고 극복하려 하는 의지가 나타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러한 의지는, 1950년대에 와서 당시 유행하던 서구의 실존주의나 모더니즘 사조의 문학을 극도로 비판하는 데에서도 드러난다. 현실을 외면하려 하지 않고 몸속 깊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고자 했던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1960년대에 와서도 그의 현실 참여 의식은, 그의 가장 유명한 시라고도 할 수 있는,「껍데기는 가라」라는 시와 동학농민운동의 역사와 아픔을 담은「금강」이라는 시에서 드러난다. 즉, 그의 시 세계는 시대적 상황과 관련한 어린 시절부터의 현실 극복 의지가 점점 그 모습이 구체화되어 시의 형식으로 드러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그의 강한 현실 극복 의지로 점철된 삶은 나에게, 더 나아가 지금 이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많은 메시지와 울림을 준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왜 시인들의 평전을 읽어야 하는지 잘 몰랐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사람들의 진실한 삶 속을 파헤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깨달았다. 한 시인의 시 세계와 더 나아가 온전히 그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삶 속에 뛰어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한 시인의 그 시를 쓸 수밖에 없었던 삶 속에의 상처, 흔적, 사람들, 충격, 기쁨 등이 응집되고 보다 큰 가치로 발돋움한 것을 이해할 수 있을 때만이 온전히 시를 읽었다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우리들에게 준 울림은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그 시대를 외면하려 하지 않고 저항하려 하였다는 데에 있다. 당시 그가 처했던 현실은 지금보다 훨씬 강압적이고 암울한 현실이었는데도, 그는 우리들에게 이러한 울림을 그의 삶 전체에서 느끼게 한다. 그의 삶은 우리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 것일까? 난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다. 우리들이 처한 현실은 암울하지만 평화의 길이 있음을 알아야 하고, 우리는 그 속을 뚫고 나갈 목소리와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그래서 포기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이다. 그 시대뿐만 아니라 작금의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메시지는 큰 의미를 가진다. 물론 나 자신 또한 현실뿐만 아니라 지나온 과거조차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한다. 슬픈 현실에 나마저도 잠식되어버릴 것 같아서다. 하지만 신동엽 시인을 마주하고 나서는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난 내 발을 앞으로, 또다시 앞으로, 조금씩 내디뎌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언어를 넘어서 그가 전하고자 하는 삶의 가치는 외면하는 것이 아닌,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자신이 먼저 앞으로 발을 내디디고, 손을 내밀고 소리를 외치는, 그 용기가 아닐까.
이 책은 신동엽 시인의 삶과 시 세계와 그와 관련된 사람들 이외에는 어떠한 자기 계발적인 메시지를 던지지는 않지만, 한 사람을 통해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추구해야 할 신념은 무엇인지, 어떠한 것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그동안 너무 나 자신만을 생각해왔던 건 아니었을까. 같은 시대임에도 절망적인 현실에 처한 사람들의 면면을 그저 지나쳐 버렸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러한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과도 함께, 다시, 좋은 언어란 무엇인가? 좋은 언어에는 앞서 말했듯이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일생이 피의 역사로 얼룩진 삶 속에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그 속에 뛰어들고 절망적인 현실에 처한 사람들을 지나치지 않은, 그의 시가 좋은 언어라 하지 않고서는 무엇이 좋은 언어란 말인가.
# 네이버 블로그도 운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