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참 닮아있는 우리의 삶.
한 사람에게 있어, 여행은 당연하게도 큰 의미를 가진다. 수많은 여행 책들이 매년 쏟아지고, ‘여행 = 새로운 발견,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는 공식에 입각한 여행 추천서는 너무나 많다. 물론 그 반대로 ‘여행 = 지옥, 다시는 시도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약간은 극단적인 경우도 있다. 여행이라는 것은 이 단어의 의미 자체를 차치하고서라도 우리들에게 큰 의미를 가진다. 여행을 통해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풍경과 사람들을 접하고, 그 속에서 설렘을 느끼고 새로운 것이 주는 짜릿함에 행복을 느낀다. 또는 기대와 다르거나 소매치기를 당한다거나 할 때는 충격에 휩싸이고 슬픔을 느끼기도 한다. 즉, 여행에는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그래서 여행은 인생과 닮아 있다. 또 여행은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도 할 수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기’를 가능하게 한다. 나는 이 책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기’를 가능하게 하는 부분을 ‘추구의 플롯’이라는 개념과 ‘프로그램’이라는 개념, 이 두 개념을 내 경험과 관련지어 이야기하려고 한다.
인생과 여행은 그래서 신비롭다. 설령 우리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24p.)
위의 문장에서 나는 이 책의 모든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보았다. 이 책은 이 부분뿐만 아니라 책 전체에서 인생과 여행을 연관 짓게 하는 마법이 있다. 여행은 인생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인가. 이 책에서 저자는 본래 소설가이기 때문에 소설가로서의 경험인, 소설 집필과 관련된 경험 위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소설 쓰기뿐만 아니라 세상의 일 대부분이 그러하다. 자신이 진짜 원하는 일이 있다면 어디에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온전히 그것에 집중하느냐가 중요하다.
로널드 B. 토비아스는 ‘추구의 플롯’을 주인공이 뭔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들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여행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무언가를 간절히 바란다. 자신이 바라는 목표 이루기, 대학에 입학하기, 좋은 친구들 사귀기, 좋은 직업 가지기 등등 이런 일 사이에 뜻밖의 일을 통해 무언가를 깨닫길 바라고 특별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가? 여기에 맹점이 있다. 여행이라는 것은 생각 외로 간단한 일이 아니다. 여행이라는 생물이 있다면, 여행은 끊임없이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만들고 기대를 꺾고 괴롭힐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어떠한가? 인생 또한 녹록지 않다. 하지만 여행과 인생에서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예상치 못하게 일이 흘러가도, 그 순간순간에 자신과의 대면을 멈추지 않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난 이런 사람들이 ‘진짜 여행’을 한다고 생각한다.
내 여행에 관한 굵직굵직한 기억들은, 전주, 인천, 제주도, 일본으로 정리되는데, 각 여행의 모든 순간이 다 즐겁지는 않았다. 제주도 여행을 예로 들자면, 남자 친구와의 제주도 여행에서 우리는 렌터카를 빌려 골목을 돌아다니다가 다른 차가 우리 차를 긁고 가는 상황을 맞이했고, 그 이후로는, 당황스러움, 분노, 전화, 경찰서의 순서로 이어졌다. 솔직히 나는 여행이란, 현실에서 한 발자국 벗어나 세상의 모든 행복을 느끼고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고 어찌할 바를 몰랐었다. 하지만 우리들이 결론적으로 취한 행동은, 상황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의논하고 그래서 남은 여행을 즐겁게 보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2박 3일의 여행에서 분노로 점철된 여행이 아닌, 제주도의 풍경과 정취를 마음껏 느끼고 오는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럼 이 여행에서 나는 ‘진짜 여행을 했는가?’라고 자신에게 묻는다면, 나는 선뜻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우리는 렌터카 회사를 속이지 않고, 사실을 그대로 말하고 (결국 긁은 것이 아니라 칠이 벗겨진 경우여서 잘 넘어갔다)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면에서, 우리들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현실에 집중했다는 점에서는 ‘진짜 여행’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영화 대본을 쓴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프로그램’을 설명한다. 노아 루크먼이라는 사람은 ‘가지고 있는지조차 모르지만, 인물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일종의 신념’을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한다. 즉 프로그램이란 인물, 더 나아가 우리들 각각에게 잠재되어 있는 내면의 신념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 내 내면의 프로그램은 무엇일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내면에 깊이 박혀버린 생각 또는 고정관념이나 편견은 무엇일까? 현재에 상황에 빗대어 보자면, 나는 ‘조별과제는 항상 괴로운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최근에 발견했다. 분명 중학교 때부터 이어진 조별로 의견을 교환하고 자료를 정리하고, 프레젠테이션으로 발표하기와 같은 일련의 과정들 각각을 따져보면 항상 괴로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대학 시절부터 이상하게 이 생각은 내 내면의 프로그램에 철저히 기록되어 조별과제가 있는 강의마다 미리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그래서 안 좋은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 생각의 원인을 따져보니 ‘대학에 가면, 조별과제는 지옥이다’와 같은 조별과제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들과 경험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미디어에 의해 주입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는 ‘대학에 가면 진짜 친구(평생친구)는 못 사귄다’라고 하는 말도 안 되는 말과도 맥락이 같다. 이러한 한 경험만 보더라도 나의 프로그램은 분명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작가의 산문임과 동시에 나 자신을 돌아보게 보는 책이기도 하다.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자신과 대화할 수 있게 만드는 책이다. 또 이 책은, 인생을 여행에 비유해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우리들 각각의 여행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좀 더 가치 있는 방향으로 이끌어주고자 하는, 이정표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글의 결론에 다다라서 어쩌면 가장 처음부터 질문을 던졌어야 할, ‘나에게 있어 여행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나에게 있어 여행은, 내 삶과의 대화인 동시에 내 삶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찾아보게 하는, 삶의 여행기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삶이라는 여행을 일상의 곳곳에서 온전히 마주하고 나 자신을 온전히 바라보고 싶다. 이러한 내 삶의 여행이 저자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이정표와도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면, 나아가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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