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고통에서 해방의 순간

노동의 고통이 끝나는 지점이 올까?

by puree

표현의 자유가 있는 이 대한민국에 태어난 게 참 고맙습니다.

살아가면서 궁금했던 것들이나, 때론 좀 엉뚱할지 몰라도 한번쯤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들을

이렇게 글로 남깁니다. 이 글이 많이 주관적일 수도 있고,

어떤 분에겐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부디 가볍게 상상하는 즐거움으로 받아들여주셨으면 합니다.


인류가 지금껏 수천 년을 살아오면서 삶을 지배해 온 가장 무거운 한 문장이 있습니다.

바로 “땀 흘려 일해야 먹고살 수 있다”라는 노동의 명제입니다.


성경 속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뒤 마주했던 생존의 굴레,

그것은 인류에게 피해갈 수 없는 무거운 저주처럼 느껴졌죠.


우리는 삶을 이어가기 위해 일해야 했고,

너무 바쁜 나머지 누군가를 챙길 여유는 늘 뒷전이었습니다.


“바빠서요.” “먹고살기 힘들어서요.”

이렇게 우리가 양심의 소리를 외면할 때마다 습관처럼 내뱉던 말들은,

사실 우리 자신을 죄책감에서 지켜주던 안전장치가 아니었을까요.


절박한 생존의 과제를 앞에 두고,

자신과 타인을 위한 ‘마음’이나 ‘사랑’은 어느 순간부터 사치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이 사회의 기득권은 불안과 공포,

감정의 결핍을 교묘하게 이용해 우리를 일터의 작은 부품으로 묶어두었습니다.

서로를 동료가 아니라 경쟁자로 바라보게 만들고,

나도 모르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그것이 당연한 일,

본능이라고 믿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인류 역사상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시대의 문턱 앞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인공지능이라는 커다란 파도가, 오랫동안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노동’의 개념을 뿌리째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죠.


예전엔 기계가 인간의 근육을 대신했다면,

이제는 AI가 인간의 생각과 판단까지 따라잡으려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가 사라질까 두려움에 빠져 있고,

그게 당연한 반응일지 몰라도, 한편으론

“이 변화에 담긴 진짜 의도는 뭘까?

그 거대한 흐름에는 어떤 계획이 숨어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


일이 힘들어서 투덜거리다가, 문득 이런 물음이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겪어 온 노동의 고통은 단순한 형벌이 아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남과 부딪히고,

함께 힘을 모으면서 내 이기심을 조금 내려놓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혹독한 훈련을 받아온 게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노동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이제 AI가 인간 대신 무거운 노동을 맡게 되는 것은,

마치 인류가 힘든 ‘생존 훈련’을 드디어 수료할 때가 왔음을 알리는 신호 같기도 합니다.


노동이 끝나는 순간,

어쩌면 진짜 ‘인간의 시간’이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이제 더 이상 “먹고살기 바빠서 양심을 지킬 수 없었다”,

“너무 힘들어서 주변을 챙기지 못했다”고

변명할 수 없는 시대가 올지도 몰라요.


생존의 저주에서 해방된 우리의 몫은 무엇일까요?

어쩌면 단 한 가지에 답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 시간의 핑계 없이, 당신은 사랑할 수 있습니까?’

‘노동의 핑계 없이도, 당신은 사랑할 수 있습니까?’


기계가 모든 답을 내놓고,

모든 일을 대신 해주는 그 시대가 바로 코앞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증명해야 할 것은

‘얼마나 많은 일을 해냈나’가 아니라,

‘얼마나 순수하게 마음을 내고 상대를 바라볼 수 있나’가 될 것입니다.


이제 곧 새로운 ‘훈련소’의 문이 열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억지로 일해야만 했던 일의 노예가 아니라,

스스로 사랑을 선택하는 삶의 주인으로 나아가야 할 거예요.


시간의 부족이 아니라,

이제는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자유’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셈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당신이라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이전 01화훈련이 끝나면 이제,책임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