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회귀

다시 무화씨 | 소녀

by 무화


열여섯 번째 여름이 와주었다.


22개월의 아기는 아기 같은 열여덟 살이 되어 쿵쾅거리며 걷는다. 무화씨보다 더 길어진 발은 여전히 분홍색 여린 살갗과 보라색 핏줄이 비치는데.

언제 이렇게 컸을까. 씻기고 먹이고 눕혀 살랑거리는 바람에 재우는 게 좋았다. 비릿하게 달큰한 숨이 무화씨 볼에 닿아 뜨거워지며 시간 위를 살포시 걷는 시간이 좋았다. 안아안아 하며 쭉 뻗는 작은 집게손가락이, 콧등에, 입술 위 솜털에 조그맣게 매달린 땀방울이 좋았다. 그리고 슬펐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책을 함께 읽었고

아이스크림을 핥아 먹었으며

수박씨를 퉤퉤 뱉어냈다.

짱구를 보며 깔깔댔다. 괴담 레스토랑을 보며 떨었다. 포뇨를 보며 환호했고, 늑대 아이를 보며 뜨거워진 눈을 힐끔거렸지.

개미를 관찰하고

민들레 꽃씨를 불고

길고양이들 곁에 살며시 앉아 손을 내밀었던 무화씨와 소녀는, 쉬이 행복해했다.

추억할 수 있을 만큼의 금붕어를 돌보았고.

위대한 금붕어 자몽이를 끝으로, 이젠 달팽이 핑돌삼씨와, 도마뱀 토마스 리자드씨와 만나곤 한다. 엄마 나 고 2되면 고양이 키운다며? 아직은 널 기르고 싶어.


열기가 피어오르던 어느 날 성마른 무화씨가 했던 여러 과오 중 가장 잔인하고도 우스꽝스러운 일은 어린 소녀를 내쫓는 척했던 일이었는데 꽤 오래 문어체로 발화하던 대여섯 살 소녀가 외쳤던 대사는 참을 수 없는 사랑스러움이다.


"이 따뜻하고 좋은 집에서 나갈 수 없어요!"


빨간 머리 앤처럼 희극적이었던 어깨의 들썩임과 꽉 쥐었던 주먹. 하얗게 파랗게 붉어졌던 손. 무화씨가 뒤돌아서 쿡쿡 웃었다는 건 몰랐을 테지.

지금도 이따금 소녀의 조롱거리인 것처럼 시작되다 무화씨의 질타 거리가 되곤 한다. 이제 흐릿하다. 언제까지나 윤색되려나


주민등록증을 발급하라는 통지서를 받았다.

소녀와 무화씨는 멋쩍게 웃었다.

무화씨의 언어가 소녀의 언어였고.

소녀가 보는 것이 무화씨의 세상이었다.

무화씨의 부분으로 존재했던 소녀는 이제 불완전하고도 완전한, 무구하고도 오염된 존재가 되었다.


노란 장화를 신은 발로 흙탕물을 튀기며 고개를 젖혀 웃던 소녀를 기억한다.

이곳에 온 첫 계절의 끝자락, 숨바꼭질하며 무화씨 심장을 태울 것 같았던 소녀의 요망함을.

소녀를 잃으면 살아갈 수 없을 거라는 감각의 첫 요동을.



여름이었다.




니체의 영원회귀는 이론적 개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