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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사람들,
그들의 이름은 작가입니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 바로 당신의 이야기 입니다.

삶을 사랑하고, 이 세상 어떤 사람이든 속상한 마음을 다 알아주겠노라고 외치는 사람이 소설가가 아닐까 생각했다.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는 사람이 작가가 아니라, 어두운 마음도 보듬어 줄 수 있는 마음과 그 마음을 잡아 줄 수 있는 손을 가진 사람이 작가이고 소설가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을 어루만진다는 것은 이 세상의 어떤 일들 보다도 어려운 법이다. 세상에서 자기 자신이 가장 불쌍하고 못난 존재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줄 수 있는 여유가 없다.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이 가장 못생겼고 제일 언변이 부족하며 공부도 제일 못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다.


자신감이 넘치고 또 넘치는 사람이라면 말 한마디에도 부끄러워하고 수줍어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사람은 상대적이어서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 뒤에 못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공부를 잘하거나 외모가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사람 뒤에 공부도 못하고 외모도 뛰어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게 바로 나였다.



사람의 가장 어두운 면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소설가가 아닐까 생각했다. 모든 행동이 다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과 이유가 있었다. 관계에서 가장 상처받는 이유는 네가 나가 될 수 없고 나가 네가 될 수 없기 때문인데, 소설은 가장 가까운 사람마저도 알아주지 못하는 마음을 다독여 준다.


많은 작가들의 글에서도 보았듯이 작가라는 직업은 늘 경제적인 고민을 안고 있다. 소위 잘 나가는, 누구나의 입에서 거론되는 작가들이 아니고서는 아무리 글을 잘 쓰는 작가라 해도, '작가'라는 이름만 놓고 살아갈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작가라는 이름을 놓지 못하는 것은, 마음을 어루만져 주어야 할 사람들이 이 세상에 너무나 많기 때문이리라. 제 힘으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글로 그들의 현실과 마음을 소리 내어 대신 전해주기 위함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무심코, 귀찮다는 듯이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아도 늘 제자리에서 어려운 이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달라고 외치는 구호단체의 직원들처럼, 소설가도 그런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여기 당신보다 힘들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직도 불 꺼진 방 안에서 숨죽여 울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그를 당신의 손길로 꺼내주세요.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소설가이자 작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소명 아닌 소명이 있다. 굳이 글을 쓰지 않아도 삶을 살아갈 수 있는데 돈도 되지 않는 글을 왜 쓰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글은 외유내강의 특성이 있어 어딘가에서 힘을 발휘한다. 때론 침묵이 강한 힘을 발휘하듯, 소리는 나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속사정을 대신 전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작가라면, 나는 왜 글을 쓰고, 무엇을 위해 쓰고 있는지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글은 때론 따뜻하고 때론 냉철하다. 작가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글을 써 내려간다. 너무 잔인하다 느껴질 정도로 적나라하기도 하고 이렇게 마음이 따뜻할 수 있나 할 정도로 극과 극을 달리기도 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 성격의 글에서도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공감'이다.


무작정 자기 마음을 써 내려가는 일기는 시간이 지나 다시 읽어보면 이렇게 이기적일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 반면에, 오래도록 사랑받는 책들을 보면 오래도록 곱씹을 수 있는 메시지와 느낌이 있다. 길게 여운이 남는다. 가끔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을 보면 그 책을 읽었을 당시의 느낌들이 다시금 떠오르곤 한다.


그래서 글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면서도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열듯이 책을 열지 않았으면 몰라도 됐을, 사실들과 감정들을 만나게 된다. 알게 된 이상 글을 글자로만 놔둘 수 없게 된다. 책 속의 메시지들은 오래도록 내 머릿속에 남아 맴돈다. 문젯거리 혹은 고민거리라 생각지 않았던 현실의 상황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목소리를 내고 싶은 마음이 꿈틀댄다.


글은 그렇게 누군가에게 마음에 자극을 주기도 하고 좋은 영향을 주어 삶의 태도와 생각들을 변화하게 한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오로지 자신의 생각에만 의지해 판단하는 삶의 태도를 보인다. 분명 삶을 변화시키는 좋은 자극제가 이렇게나 많은데도,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여기는 우를 범하곤 한다.


공감이란 곧, 삶에 꼭 필요한 능력이고 태도이다. 자신을 외롭지 않게 만드는 마법이 공감 속에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는 세상에 어떤 목소리를 내고 싶은 것인지 어떤 이야기를 대신 전하고 싶은 것인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읽어 주는 누군가가 있고, 그들을 위해 글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나의 감정에 복받쳐 쓸 수만은 없다. 담담하지만 대담하고 강하게 누군가의 이야기를 자신의 방식대로 써 내려갈 수 있어야 한다.


책과 글은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지만 뭉근하게 자신의 소신을 밝힌다. 때론 유머 있게 때론 슬프고도 기쁘게 전한다. 나는 슬프고 절망스럽다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감정을 독자가 느낄 수 있게 써내려 갈 수 있어야 한다. 담백하게 써 내려간 문장과 대사만으로도 소설 속 인물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이성과 감성을 오가며, 슬프고 좌절스럽지만 그럼에도 현실을 직시하게 해 주는 것이 글의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로지 자신에게만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막 슬퍼하고 울고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나는 어떻게 할 거라는 다짐과 결심들이 글 속에서 은은히 묻어 나옴을 느낄 수 있다. 힘들고 어려운 현실이지만 툭툭 털고 일어나야 할 때가 있는 것처럼 많은 글이 그렇게 일어나야 한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직접적이진 않지만 앞으로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일어날 힘을 주는 것이 글의 역할이라고 본다. 많은 글이 지금 너의 마음도 이해하지만 지금의 현실을 제대로 알고 네가 해야 할 일들을 해야 한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대신 보이지 않은 곳에서 외롭게 자신의 삶을 견뎌내는 사람들의 마음을 잊지 말아 달라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그러므로, 나란 한 사람이 지금 어디에 있고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자세히 들여다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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