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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May 18. 2024

열세 번의 스승의 날

이번 해에는 쉬는 날이어서 무척 좋았다.



보통의 스승의 날 아침은

반 아이들의 특성에 따라

선생님을 챙겨주거나,

혹은 무심하게 지나가거나 하기에

아무리 요새는 그런 거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어쩐지 다른 반과 우리 반이 비교되고

옆 자리 선생님과 내가 비교되기 때문이다.

선물을 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두어 달 정도 아이들과 보낸 결과물이

드러난다는 느낌이 들어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조금 더 그런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선생님들 대부분은

스승의 날을 무척 싫어하며

혹여나 있더라도 12월 정도에 있으면 좋겠다고,

하기도 한다. 

5월. 이제 겨우 아이들 파악이 끝난 때에

서로 민망스러운 상황이 종종 연출되기 때문이겠지.



고맙게도

난 열세 번의 스승의 날을 행복하게 보낸 편이다.

첫 제자부터 지금의 아이들까지

스승의 날에 꼭 한 번은 나를 챙겨주었던 것 같다.

아직 스스로 스승이라 칭하기엔 부끄럽지만,

그날, 외롭지 않았던 것을 보면

열세 번의 스승의 날을 

분명 의미 있게 보낸 것이 맞겠지.


할 줄 아는 게 글 쓰고 편지 쓰는 것뿐인 내가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던 아이들에게 솔직한 마음을

담아 고마움을 표현해 본다.

13년 동안, 나를 선생으로 존재하게끔 해준

녀석들에게 부치는, 하지만 닿지 않을 편지다.






#. 첫 제자는 못 잃지!

2012년, 첫 발령받은 나를 챙겨준 반장과 부반장, 그리고 33명 우리 반 

아이들 고맙다. 그때 나는 너희들이 나를 위해 준비해 준 풍선과 케이크와

그리고 편지를 잊지 못한다. 덕분에 함께 발령받은 다른 동기 샘들

앞에서 으쓱, 할 수 있었어. (유치하지만^^) 고마워.


#. 말썽꾸러기들! 영상에서 소리가 안 나오면 어떡해?

2013년. 3학년 1반 녀석들, 너희들이 찍어준 스승의 날 영상

아직도 외장하드에 있는데 소리가 안 나와. 아직도.... 도대체 어떻게 만든 거야! ㅎㅎ

그래도 고마웠어. 운동장, 체육시간, 급식시간 구분 안 짓고 나 몰래

열심히 영상 만들어서 "선생님! 고맙습니다!"를 외치던 너희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입모양으로 잘 추측해서 내용 이해했다는 건 안 비밀.


#. 정말 힘들고, 아팠던 그 해 만난 너희들. 잘 살고 있니?

2014년. 개인적으로 선생님이 너무 힘들었던 시기야.

아팠고 우울했고 슬펐어. 그때 너희들이 날 챙겨준 것 고마웠지만

그 당시엔 왜 그렇게 마음이 힘들었는지 몰라.

직접 그려준 그림으로 만든 텀블러, 손 편지는 아직도 친정에 그대로 있어.

고맙고, 미안하고, 그래.


#. 선생님 결혼 언제 해요? 우리가 축가 해드릴게요!

2015년. 말썽꾸러기가 셋은 기본으로 있고 어쩐지 내가 느끼기에

모래알처럼 뭉쳐지지 않던 너희들. 지금 돌이켜보면 더 살뜰히

챙겨주지 못한 게 미안해. 다들 잘 살고 있기를.


#. 처음 만난 중1. 2003년 생들. 

반장이 카리스마가 넘친 녀석이라 처음 받아본 '방탈출 스승의 날'!

교실 이곳저곳에 쪽지를 넣어 놓고 문제를 풀어야만 너희들을 

만날 수 있는 그 게 참 재밌었어. 선생님이 추리 좋아하는 거 어찌 알고?

알잘딱깔센! ㅎㅎ 잘 지내고 있냐? 궁금하다. 


#. 학교를 옮기고 처음, 2-8반 

환경이 달라지니 아이들도 달라지더라.

새침하면서도 다가가기 어려운 너희들이었는데, 너희들과의 추억은 2018년이 찐이지?

바로 2018년으로 고고!


#. 2년 연속 만난 우리들

17년에 만나 18년까지 중2와 중3을 함께 보낸 녀석들.

심지어 18년엔 임신도 하고 휴직도 하면서

더욱 애틋하게 헤어진 것 같아. 

내가 휴직 들어갈 때 써준 편지, 그리고 앨범

아직도 잘 간직하고

가끔 보고 있어. 힘든 순간들도 많았는데 

너희들에게 기억에 남은 선생님이 되었다니 기쁘다.


#. 2020, 2021. 육아하느라 바빴던.

코로나였고, 육아하느라 바빠 담임도 아니었기에

제자들과의 교류는 많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국어선생님이 좋다고 말해주는 

녀석들이 있었던. 개인적으로 너무 아프고 바쁘고 힘들었던.


#. 2022, 2023, 그리고 2024

새 학교에서 새롭게 만난 아이들과 현재진행형.

2022년엔 '왕이 될 상', 2023년엔 '세종대왕상', 2024년엔 '웃상'을 준 

너희들을 기억하겠다! ㅎㅎ 


힘들고 거칠고 일 많고

바쁘고 너무 지치는 (우리 학교 선생님들 다 공감하실 듯!)

이 학교에 적응하며 지낼 수 있었던 것은

8할이 2009년생 (지금 중3), 그리고 2010년생(지금 중2), 마지막으로

내가 학년부장을 맡고 있는 2011년생(지금 중1) 덕분!

나를 힘들게 하는 녀석들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들 덕분에 내가 있을 수 있는 듯.

우리 남은 2024년 잘 보내자.


2009년생들 졸업하면 좀 울 것 같기는 한데

울어도 놀리지 말고. 


2010년생들, 내가 너네 너무 사랑해서 중3 때 만나고 싶은데

그게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고. (근데 너희들 몇 달 안 가르쳤다고

또 낯가리더라? 놀릴 거야! 괴롭힐 거야! 장난칠 거야!ㅎㅎ)


2011년생들, 너희들은 내가 첫 부장을 맡고 가르치는 아이들이라

아마 첫 제자만큼 기억날 것 같은데 

나는 이미 너희들이 너무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그래. 


바보같이 사랑을 잘 나눠주는 국어선생님, 그리고 국어 수업을

좋아해 줘서 고맙다.

근데 제발 말 좀 듣고, 급식 줄도 좀 잘 서고,

순간 기분 나쁘다고 소리 좀 지르지 말고,

수업 시간에 차분히 정돈해서 집중하려고 노력 좀 해보고,

체육대회 경기 졌다고 싸우지 좀 말고. 엉? 

제발 좀! 엉?


좋아하는 거 맞냐고?

맞아. 원래 잔소리는 애정에 비례해. 큼큼.






글 쓰다 보니 문득 느끼는 게


나 되게 행복한 사람이구나, 싶다.




마지막으로

재밌던 숏박스 유튜브 영상 하나 공개하고 글 마무리! 





https://www.youtube.com/watch?v=6KKrb2PmkRs&t=114s




* 영상 링크 문제 시 삭제 할게요! 

지금은 저얼대 애들한테 선물 안 받습니다. (걱정(?)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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