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그 마지막 순간의 철학
카슨 매컬러스(Carson McCullers)는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The Heart is a Lonely Hunter)을 1940년 23세의 나이에 출판했다. 그녀의 첫 소설이다. 23살은 젊은 나이라고 표현하는 것보다 어리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나이 아닌가. 그런데도 이 소설은 미국 문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작가로서의 명성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생각해 보면 나는 그 나이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교정 어딘가에 주저 않아 요플레를 까먹고 앉았을 때였다.
이 책은 언젠가 블로그에 언급한 적이 있는 책이다. 그때는 블로그가 지금처럼 많은 분들을 이웃으로 하지 못하던 때라 그저 의식의 흐름대로 짧게 감상문 형식으로 썼었다. 내용을 찾아보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데 찾아보지 않고 이 글을 쓴다. 요즘은 지난 글을 읽는 일이 괴로울 때가 많다. 심하게 말하면 내가 아무 데나 싸 놓은 똥 같다. 아무튼 그때도 어린 나이에 인간의 고독과 소외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담은 작품을 창작했다는 점은 매커러스의 놀라운 문학적 재능과 성숙함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취지로 썼던 것 같다. 이틀 작가님과 최근에 유튜브에서 매커러스의 작품 <슬픈 카페의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했기에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을 다시 훑어보고 싶어졌고 이번 읽기를 마지막으로 책을 책장에서 완전히 빼고 싶었다. 소설은 역시 지금 읽어도 좋았다. 나이에 비해 작품에 담긴 인간 심리와 실존적 문제에 대한 이해의 깊이는 정말 놀랍다.
존 싱어의 자살은 단순한 비극이 아니다.
그것은 고독의 가장 깊은 심연에 던진 물음표다.
왜 죽어야만 했을까.
고독은 인간의 원초적 풍경이다. 카슨 매컬러스의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은 그 풍경 위에 홀로 서있는 인간의 얼굴을 그린다. 세상은 귀머거리 존 싱어의 침묵 속에서만 선명하게 말한다. 그의 귀는 듣지 못하지만, 그의 영혼은 타인의 외로움을 완벽히 찾아낸다. 말할 수 없는 자가 가장 깊이 듣는다. 슬픈 소통이다. 싱어의 주변에 있은 모든 영혼들은 싱어라는 거울에 자신의 고독을 비춘다. 그들은 싱어에게서 이해받는다는 환상을 품고, 그 환상을 통해 잠시나마 존재의 무게를 내려놓는다. 하지만 싱어 역시 외롭다. 그의 내면에는 친구 안 토나 풀로스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이 있다. 그는 타인의 고독을 듣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고독을 들어줄 단 한 사람을 갈망하는 존재다. 작가는 우리는 모두가 다른 이의 구원자이면서 동시에 구원을 갈망하는 자들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소설의 마지막, 싱어의 자살은 완전한 침묵의 선택이다. 더 이상 들을 수 없을 때, 인간은 영원한 침묵을 선택한다. 당연한 이야기로 싱어의 부재는 그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말해준다. 그의 죽음이 나에게 묻는다. 진정한 소통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정말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가?
제목이 왜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인지 의아한 적이 있었다. 그 이유를 짐작은 했지만 확신이 없었는데 이번에 읽고서야 조금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됐다.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연결을 사냥하지만, 그 사냥은 늘 완전한 성공에 이르지 못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사냥한다. 고독의 바다에서 타인의 영혼이라는 섬을 찾아 헤매는 것, 그것이 인간의 숙명이다. 23세의 나이에 인간 존재의 근원적 비극을 통찰했다니. 이 작품은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인간의존재를 표현한 한 장의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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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싱어의 최후의 선택은 패배가 아니다.
역설적으로, 그것은 가장 강렬한 자유의 순간, 자살의 형이상학이다.
그의 자살은 누군가를 향한 최후의 대화이자, 고독에 대한 궁극적인 선언이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절대적 고립을 마침내 완성한 것이다. 인간은 때로 가장 나쁜 선택을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그는 죽음을 통해 살아있음의 의미를 말했다.
스크린에서 걸어 나온 싱어는 완전히 입을 다물었다. 그는 이제 수화도 하지 않는다. 엔딩 크레디트가 나오는 순간 나는 공허해 미칠 것만 같다. 마지막 장면은 가슴에 작은 구멍을 만들었다. 그 구멍으로 차가운 바람이 스며든다. 이 슬픔은 단순한 감정의 파도가 아니라 인간 고립을 목격한 뒤에 찾아오는 깊은 울림이다. 싱어가 죽으면서 나에게 거울 하나를 선물했다. 그 거울 안에 고독한 내가 있었다. 그러니까 그의 고독은 이제 나의 고독이다.
오래전부터 책과 그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병행하는 습관이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오래된 영화를 찾아보는 게 쉽지 않아서 거의 포기하고 있다가 최근에 고전 영화를 업로드해 주는 곳을 발견하고 다시 하나씩 찾아보고 있다. 보는 내내 생각난 영화는 파리 텍사스다. 이 영화 역시 명작 중 명작이다.
『파리, 텍사스』 (1984) - 빔 벤더스
언어를 거부한 채 사막을 떠도는 트래비스의 여정은 존 싱어의 침묵과 고독을 떠올리게 한다. 상실과 단절, 그리고 불가능한 화해에 대한 서사는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의 정서적 풍경과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