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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i aber Einsam Jun 03. 2020

무료 변호에 대하여 1.

내가 했던 형사국선변호는 국선전담 변호인이 아니어서, 국가에서 "사건당" 정해진 비용을 받고 일을 했다. 피고인으로부터 돈을 받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변호사 시장에서 형성된 금액의 대략 10분의 1 정도의 금액만을 받고 일을 한다.


국선변호 외에, 가까운 지인, 그냥 아는 지인, 친구, 친구의 친구, 친구의 지인의 지인(이쯤되면 사실 남이다), 등등 이것저것 상담을 해오는 사람들이 많고 대체로는 무료로 진행된다.


이번주 월요일의 일이다.

작년 몇 달 다녔던 요가학원이었는데 그 선생님이 너무 좋아서, 그만둔다고 해서 무척 서운해서 명함을 드린적이 있었다. 필요할 때 연락하시라고. 저 나쁜 사람 아니라고. 그 분이 근 1년여 만에 연락이 왔는데 한마디로 부당해고 당한 사건이었다. 노동청에 신고를 하기 위해 증거를 수집하고 녹취록을 만들어서 중요부분 형광펜 칠을 하고, 내가 잘 모르는 것은 찾고 물어 진정이유서를 열심히 써주었다. 우여곡절 끝에 사무실에 오시게 한후 몇가지 확인을 하고 서면을 수정하여 파일을 드렸다.


그녀는 "다음에 꼭 밥한 번 같이 해요."라고 하고 떠났다.

그 말이 진심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껏 "다음에~~~"라고 하고 진짜 나에게 다시 연락을 한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다.


같은 날 오후에는 내 가족의 회사동료를 위해 고소장을 작성해서 접수했다. 그분은 의료인이어서 바쁜 듯하여 내가 직접 찾아가서 상담을 해드렸다(이런 경우는 아~주 드물다. 보통은 직접 오신다). 그리고 필요한 서류를 다 받아서 고소장을 쓰고, 변협에서 무료경유증을 발급받아 위임계를 내고 고소장을 접수한 후, 그 분께 전화를 드렸으나 받지 않아 문자를 드렸다. "고소장 내용을 보시면 마음이 힘드실 것 같아 제가 알아서 제출하겠습니다. OOO 변호사 드림"


한참 후 전화가 왔다.

부재중 전화가 와있던데,  "누구시냐" 는 것이다.

머릿속에서 아주 큰 종이 딩~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똥멍청아, 너 또 그짓을 햇니."


전화를 끊고 자책을 했다.

왜, 나는, 이런 짓을 자꾸 하는가.

그리고 그 사람들은 왜 그토록 매너가 없는가.


나를 위해 고소장을 무료로 써주면서 조사받을때 경찰서 같이 가드리겠다며 상담까지 직접 오는 변호사의 명함을 받았으면, 전화번호 저장정도는 하는 것이 나의 상식이다(요즘 생각한다. 나의 상식수준이 지나치게 높은 것인지도 모른다고).

무료로 노동청에 제출할 진정이유서를 써주고, 그 사이 주말에도 전화, 카톡을 주고받았고 20분 짜리 녹취를 들어주고 직접 얼굴을 보고 몇 가지 확인할 정도였다면, 나라면 서초동 곳곳이 카페인데 커피 두잔 정도는 사가지고 갈 것 같다(그래. 내가 너무 예의범절이 바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디스크 병중에(갑자기 중증환자), 난 이 일들을 하였다.

하루사이 이 일을 두 번 당하고 나니, 아무생각없이 해주었던 일들에 이렇게 생색을 내게 되었다.


처음 변호사를 시작할때, 연배 높으신 변호사님이 말씀하셨다.

"공짜로 뭐 해주면 안되. 정당한 비용을 받고 일을 해줘야지. 그래야 나중에 해 준 사람도 서운한 마음안들고, 상대방도 공짜라서 대충해서 이렇다는 얘기 안해. 꼭 돈을 받아야되."

아, 그말이 갈수록 와닿는다. 그분들도 다 겪어 보셨던 것이다.


이런 사람도 있었다.

그녀는 눈썹 문신을 하는 동포인데, 법적인 문제를 몇 가지 자문하려고 왔다. 친구의 지인이었다. 상담비용이 원래는 1시간에 22만원인데(대한변협이 제시하는 표준 금액이다), 친구의 지인이니 받지 않겠다고 했더니,

"변호사가 짱이네요." 라는 말을 하였다. 내 귀를 의심하였다. 그런 말을 하다니.

그럼 우리는 1시간이나 지식을 팔고도 아무것도 못받아야 하는가? 아님 얼마가 적정하다고 생각한 걸까? 본인은 눈썹 문신을 해주고 1시간에 20-30을 받을 것이다. 내가 그 정도 돈을 지불하고 문신을 해왔으니 말이다. 아니 그럼,  "제가 상담을 무료로 받았으니 눈썹을 무료로 문신해드리죠."도 아니지 않은가.

눈썹 문신을 친구의 지인에게 소개했다고 무료로 해준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왜 변호사 상담은 소개하면 무료인게 당연한가? 우리는 그럼 어떻게 임대료도 내고 직원비용도 내고 수익을 창출하는가? 그 한마디 상담을 해주기 위해 우리도 잠못자고 공부해서 머릿속에 넣은 기술이지 않은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셈법이다.


아주 할 말이 많은 부분이라 흥분했다.

사람들은 남의 물건을 살때는 쉽게 당연하다는 듯이 돈을 지불한다.

그러나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할때, 사건을 할때, 공짜로 하는 것을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경찰은 아니지 않은가,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기라도 하지

변호사가 "민중의 펜 내지는 민중의 입"은 아니지 않은가.

아 그와중에 고맙다고 이런 더운 날씨에 아아라도 한잔 사오면 그냥 스르륵 눈녹듯 녹을 마음인데, 나는 사람들이 "무료 변호사"를 대할때, 부디 기본 매너와 예의 정도는 갖추어줬으면~~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오늘도 해본다.


무료변호에 대해 일필휘지로 써지는 것을 보니, 시리즈 물이 되야할 것 같아서 1.을 달아보았다. 물론 속편이 더 나아지는게 쉽지는 않지만 난 지금 흥행을 염두에 두는 것이 아니니 슬슬 생각나는 것을 써볼까한다.


다음편에서는 연예인 얘기를 써보련다(흥행을 염두에 두는 것이 아니라더니 느닷없는 속편 홍보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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