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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경퀸 Aug 08. 2023

목적지를 모르고 납치당한다는 것은

하루에 두 번이나 목적지를 모른 채 조수석에 타고 전국을 돌았다

미안해. 나 오늘 야근이야. 

워낙에 유동적인 스케쥴, 나도 내 스케쥴을 모른다. 하며 살아가는 친구가 있다. 대체 왜 네 스케쥴을 모르는거니 라고 물어봐도 그녀는 그저 '8ㅅ8 저도 알고 싶어요 여러분'이라고 보낼 뿐이었다. 그 공장은 재료가 아니라 사람을 갈아 넣어서 물건을 만드는 게 틀림 없다고 생각했다. 일정파괴범인 이 친구로 인해 나를 포함해 세 명의 일과가 텅 비어버리게 되는데. 


나 이번에 여자친구 생기면 같이 가려고 했던 카페가 있는데 말이지

거기나 가보면 어떨까 말이지


그거 참 좋단 말이지. 근데 어딘데? 친구는 사진 몇 장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운전대를 잡았다. 저 친구의 솔로 생활은 어언 8개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공백 속에 그에게 접근하는 여인이 단 한명도 없었다는게 우리를 슬프게 했다. 철수야 네 여자친구분 생기면 우리가 정말 잘해드릴게. 때되면 꽃도 보내고. 케이크도 보내고. 그리고 또. 동정하지 말아줘. 응 알겠어. 


하필이면 또 해가 화가 났는지 박터지게 더운 때였다. 한 10분정도만 걸어도 겨터파크 개장, 화장을 했는지 안 했는지 헷갈릴 정도로 흰 국물이 줄줄 흘렀다. 이럴 바에는 화장 하지 말고 선스틱이나 바르고 오는건데. 같이 걷던 친구도 말했다. 야, 이정도면 그냥 집에만 있는게 낫겠다. 


한시간이 조금 안되는 예상 도착시간이 네비에 떴다. 그런데 이게 웬걸. 원래라면 주말에도 차가 그렇게 막히지 않는 곳인데 전국에 있는 자차는 다 나와 있는것처럼 도로가 꽉꽉 미어터졌다. 우-와- 다들 어딜 저렇게 가는거야? 아 그거 때문에 그런거 아니야? 칼부림 챌린지. 미쳤나봐 챌린지래. 철수는 운전대를 가볍게 잡은 채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래서 나 모조총이라도 사서 트렁크에 넣고 다니게. 미친놈 만나면 러시아말 쓰면서 들이밀어야지. 못된 새끼들이 너무 많아. 


철수야 너 진짜 그렇게 할 것 같아서 내가 웃지를 못하겠어. 


근데 지금 우리 어디로 가는건데?


출발도 했고 기분도 좋다. 얼마만에 먼지 없는, 구름도 없는 말간 하늘인가. 조수석에서 보는 하늘은 무척이나 아름다웠고 그간 일주일동안 나빴던 기분을 환기시키기에 충분했다. 에어컨을 아무리 틀어도 수직으로 낙하하는 햇빛 때문에 차안 온도가 지글지글하긴 했지만. 야 이거 새차 맞긴 하니. 라고 물어도 철수는 허허. 하고 웃을 뿐. 


그때 뒷좌석에 있던 양희가 말을 꺼냈다. 근데 지금 우리 어디로 가는건데? 우리는 의정부에서 출발했는데. 그래서 위쪽 양주 언저리에 있는 값싸고 넓은 땅덩어리에 지어진 크나큰 카페를 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눈앞에 보이는건 이케아. 이케아? 네가 왜 여기있니?


글쎄. 고양시인가? 고양 이케아였다. 광명까지는 못 갔을거라고 당연히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실로 고양시까지 왔을거라고도 생각 못했다. 아니 인석아 이렇게 멀리 올거면 얘기라도 해주던가! 고양시가 위치가 어디더라 김포 근처던가. 머릿속을 굴리기는 해도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야 철수야 이건 납치야. 어디 간다고 얘기를 안하면 어떻게 하냐. 카페간다고 했잖아. 그래 카페지. 카페는 맞는데. 아니다. 얼마나 남았다고?


고양시에 도착하고 한 10분 정도가 흐르고 나는 내 카카오맵을 켜서 위치를 찾기 시작했다. 요상한 산 근처로 들어가다보면 관광지 밥집들이 즐비한 곳 중앙에 위치한 크고 높은 카페. 우리(는 모르고 운전자)의 목적지인 곳이었다. 디오름. 네이버나 다른 검색창에 검색하면 금방 나오는 핫한 이색카페였다. 놀라운 것은 주차도 예약을 해야만 할 수 있는데. 주차장이 비어 있어도 예약한 차량이 아니면 들어갈 수가 없었다. 우리는 15시가 조금 넘어서 도착을 했는데 예약을 못해서 한바퀴를 삥 돌았지만, 혹시나 예약이 가능한가 봤더니 예약 가능해서 15시부터 예약했다고 주차요원에게 말을 했더니 핸드폰 확인도 하지 않고 그냥 들여보내주더라. 

카페에 납치됐다가 또 납치되어서 간 바다. 가깝다고 했지만 영종도일줄이야

영문도 모른채 납치를 당한것 치고 만족스러운 카페였다. 부지가 넓고 가격이 싼 곳에 있을법한 테마카페였는데. 요즘 MZ세대가 선호할만한 공간들로 꾸며져 있었다. 인스타에 올리기 좋은 포토존들이 각 층마다 즐비하게 이어져있었고. 카페 규모 자체도 일반적인 넓은 카페보다 더 넓었다. 층고가 높고 채광이 좋아 정말 갤러리 같은 느낌이 주는 인테리어였다. 여름이 지날 무렵 쯤 다시 방문하면 더 좋지 않을까 싶었다. 

해를 등지고 보는 바다와, 해를 바라보며 보는 바다의 느낌은 심히 달랐다/ 왕산해수욕장


운전을 한건 철수인데 양희랑 내가 지쳐버린 이유에 대해서 서술해보자. 생각보다 앉아만 있는 것은 엉덩이가 배기는 일이다. 운전자가 졸지 않도록 수다도 떨어줘야 하고. 


으음.

끝이다. 


양희는 왕복 6시간이라는 거리를 뚫고 편도로 오늘 의정부로 왔으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나는 근처에 사는 사람이라 그렇게 피곤한 것도 없잖아. 라고 말하는 순간 떠올랐다. 아 나 오늘 새벽 두 시까지 술마셨구나. 어쩐지 위가 아야하더라. 피곤의 원천은 간의 손상 때문이지 않을까 싶었다. 카페 투어를 끝내주게 마치고 집에 가려는데 우리의 미스터리 운전자가 또다시 말을 꺼냈다. 바다갈래. 


뭐요?


바다갈래. 물음표는 없었다.
물어보려고 한 말이 아니라 다짐을 위한 말이었던가.
 
버려진 옷과 가방. 등을 햇빛이 잔뜩 핥았는데 집에 와보니 조금 빨개진 것 같기도 했다. 여름 햇빛은 화학무기와 다르지 않다.

바다라니. 고양시에서 바다라고? 그러면 우리는 집에 언제 가는데! 운전자는 나중에서야 슬그머니 '바다갈래?'라고 물음표를 붙여 주었다. 어디바다? 인천! 인천 앞바다를 언제 보고 안 봤더라. 운전자인 철수는 또 혼자서 네비를 찍었다. 아차. 어디를 찍는지 본다는게 못 보고 말았다. 내가 아는 것은 여기서 차로 40분. 40분내로 이 허허벌판과 산이 있는 곳에서 바다로 순간이동한다고? 철수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자신만 믿으라며 엑셀을 부드럽게 밟았다. 그렇게 우리는 또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상황에 그의 차에 몸을 실을 뿐이었다.


뒷자리에 앉은 양희는 중간쯤부터는 입을 벌린 채로 단잠에 빠져든게 보였다. 하지만 조수석은 쉽게 잘 수 없는 위치이기에 핸드폰보다가 밖도 보다가 하면서 털래털래 있었다. 그때 단잠을 깨내듯 동공이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우측 창문을 통해 햇빛이 화살처럼 쏟아진 것이었다. 한참을 그냥 앉아 있었는데 언제부터 옆에 있었는지 모를 바다가 파란 혀를 낼름거리며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푸른 바다는 햇빛을 받아 번쩍번쩍 큐빅을 잔뜩 끼고 있었다. 그 사이가 약간 누렇게 보이기도, 시퍼래서 까맣게 보이기도 했다. 바다의 색은 항상 바뀌기에 그저 바깥만 바라볼 뿐이었다.


바다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파란 하늘이었다. 드라이브 출발을 했을 때부터 하늘이 말도 안되게 파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늘이 바다색에 가깝다면, 바다는 우주색에 가까웠다. 어딘가 까만 것이 그렇다고 검은색은 아니고. 파란것이 때때로 누렇기도 하고, 별가루 같은 빛이 파도마다 부서지고. 정처없이 바닷길을 걷다 보니 해수욕장도 나오고. 내 길은 어디인가 한번쯤 생각도 해보고. 잠겨도 보고. 아무도 없는 방파제 위에 누워도 보고. 

고양시에 위치했던 디오름, 미리보는 가을 날씨는 좋았다

목적지를 모른 채 누군가의 차에 탄다는 것은 상황과 상대에 따라서 공포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만약 나도 애매하게 아는 관계의 사람이었다면 목적지를 알기 전까지는 차에 탑승하지도 않았겠지. 어딜 가는지도 모른 채로 올라탄 철수의 차는 내게 즐거운 여름휴가의 시작을 열어 줬다. 아마 이날 바다를 방문하지 않았다면 나의 여름휴가에 바다라는 단어가 물들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지. 마치 작년에 겨울에만 바다를 보고, 여름 휴가는 아무곳도 가지 않았던것처럼. 목적지 모른 채 납치당하는 경험. 꽤 괜찮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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