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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치 Nov 22. 2022

택시에서 UFO로 환승하는 법

오늘 아침엔 택시를 탔습니다. 운전을 해도 택시를 타는 사람이 저예요. 버스 도착 시간이 가까운 날에는 버스도 곧잘 탑니다. 뒤쪽으로 걸어가 끝에서 두세 번째 정도 자리에 앉아요. 그리곤 창가에 무의식적으로 옆통수를 기댑니다. 불규칙한 진동에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하면 심호흡을 합니다. 후... 후...


운전하는 사람들은 통 걷지를 않는다는 통념을 깨고 싶어서일까요? 저는 걷기도 잘 걷습니다. 하지만 인정할 건 해야겠죠. 운전하지 않을 때보다야 1/5 정도로 줄었습니다.


샛길로 빠졌던 얘기를 다시금 끌고 오겠습니다. 걷고 버스에서 멀미하고 택시 타는 얘기를 하려던 건 아니었으니까요.


늘 그렇듯 어플로 콜을 부르고, 택시에 올라타고, 행선지를 다시 확인한 다음, 택시 기사님께 에어컨 바람을 좀 줄여주실 수 있는지 여쭸던 찰나였습니다. 기사님께서 갑자기 휴대폰을 열며, '내가 손님께 좀 보여드릴 것이 있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도대체 뭘 보여주시려는 거지? 싶어 몸을 앞으로 기울였습니다. 뭐 따님이나 손주 사진을 보여주시는 기사님들은 가끔 가다 있으시니까요. 그런데 그런 사진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구봉산에 가서 찍은 사진인데... 이 노을, 여기, 여기 좀 봐요.

네네.

여기, 이거, 이게 뭘로 보여요.


어... 음... 이게 뭐지? 그건 마치 비행접시 같은 모양의 무언가였습니다. 기사님은 뭘 찍으신 걸까? 노을을 찍다가 카메라 렌즈에 빛 번짐이 일어난 게 아닌가? 퍼뜩 그렇게 생각했지만 제 입은 아주 착실한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혹시 이거... 유 에프 오예요? 그러자 기사님은 만면에 미소를 띄웠습니다. 그쵸? 손님이 봐도 그렇죠? 내가 구봉산에 가서 이 이 유 에프 오 사진을 찍었어요. 저기 어디 방송국에 제보를 했는데, 거기서도 이 이렇게 파란색 유 에프 오는 처음 본다는 거 아녜요. 내가 찾아보니까 미국에서 발견된 유 에프 오 중에서도 이런 파란색 유 에프 오는 없었는데... 내가 이거를 사진관에 가서 액자로 만들어서 집에 걸어뒀잖아요. 아주 우연하게도, 이거 봐, 내가 사진 열 장을 찍었는데, 마지막에 이게 갑자기 이렇게 찍힌 거 아니에요. 이번엔 다른 방송국에도 제보를 하려고 하는데...


기사님은 유 에프 오 얘기에 열중한 나머지 두 번이나 저를 다른 곳에 내려주려고 하셨습니다. 유 에프 오 이야기에 최대한 열심히 맞장구치며 반응하려고 노력했지만, 자꾸 머릿속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빛 번짐 같은데...' 그런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습니다. 그치만 그 말은 절대 입 밖으로 내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계산하고 내리며 말했습니다. 유 에프 오 사진 보여주셔서 감사해요. 조심히 가세요! 그러자 기사님은 그보다 더 밝게 웃을 수 없는 웃음을 지으셨어요. 아이 고마워요! 오늘 잘 되길 바랄게요!


하지만, 제가 아무리 이렇게 기사님께 얘기해도, 다른 승객은 무안을 줄 수도 있죠. 누군가 그런다 하더라도 기사님은 그 말을 믿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 사람은 유 에프 오를 모르는 사람이구나, 그냥 그렇게 치부해 버렸으면 싶습니다. 믿는 것을 보고, 생각하는 대로 살기에도 벅차잖아요.


그럼에도 그건 정말로, 단 한 치의 조작 없는 미확인 비행 물체였을 수도 있습니다. 머나먼 은하에서 달려온 광속의 비행접시일 수 있습니다. 그 유 에프 오의 탑승객들은 지구의 인간들에게 우호적인 집단일지도 모르고요. 본인들을 촬영한 기사님을 초청하고 싶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기사님은 지구의 인간들 중에서는 거의 손에 꼽게 우주선을 타고 웜홀과 거대한 성운들과 다 타버린 별의 잔해들 사이를 달려 나갈 수 있겠죠. 기사님은 아주 오래전, 언젠가 한 번, 본인의 유 에프 오 얘기에 대단하다며 엄지를 치켜든 저를 기억해 줄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럼 그날이 제가 처음으로 우주를 여행하는 날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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