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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읽는 행위에 대하여

by 라엘북스

세상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영상과 이미지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그 가운데 문자의 영향력이 축소될 것이라는 견해가 있었지만, 우려와는 달리 문자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이어져왔고, 여전히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 온라인 상에서도 블로거 분들이 유튜브로 많이 넘어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역시나 검색할 때에 블로그의 글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 전반에 퍼져있는 N사의 영향력이나 광고의 수익성과 같은 기타 요인들이 작용 한다해도, '글을 읽는 것'은 우리의 생활에서 뗄 수 없는 요소입니다. 영상에도 조금 더 편하도록 자막을 입히기도 하고요.


'읽기'로 인한 변화


세계사적 사건을 빌려와 말하자면, 인쇄술의 발명이라는 '구텐베르크 혁명'이 커다란 영향을 주었습니다. 거대한 세계사적 사건이 출현하여 당시에 가장 중요한 삶의 부분이었던 종교 상황에서부터 일상생활까지 변화를 가져다 준 것입니다. 이 혁명은 읽기의 방법에도 변화를 주었습니다. 낭독에서 묵독으로 옮겨간 것이지요.


"교회라는 거대한 조직과 목자들의 다양한 위계들을 불식시키고 루터가 주장한 것은 성서에서 직접 하느님의 ‘말씀’과 조우하라는 것이었다. 읽는 행위는 모두로부터 분리된 내면의 고요한 공간에서 고독하게 진행된다."


"읽는 행위가 낭독에서 묵독으로 전환하면서 또 하나의 거대한 변화가 인간들의 관계맺음 방식에서도 나타났다. 앞서 봤듯, 낭독은 광장에서 일어났고, 군중과 결합해 형성됐다. 반면, 묵독은 격리된 공간과 고독한 자아를 필요로 한다. 그것은 인간의 공동체를 추상적인 창조물로 변화시켰다."

(출처 : 2017년 4월 8일 스카이 데일리 기사, '낭독·묵독 그리고…읽기의 변화, 관계의 변화' http://www.skyedaily.com/news/news_view.html?ID=59762)


오에 겐자부로는 그의 책 <읽는 인간>에서 "읽는 행위란 단순히 문장을 익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장을 사색하고, 작품의 배경, 작가의 일생까지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외국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 원서로도 작품을 읽습니다.


이렇게 읽는 행위가 지속 된다면 수없이 많은 유익을 얻겠지만, 그 가운데서도 나 자신에게 끈질기게 집중하게 되고,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학생들도 대학 생활 동안 맹목적으로 어떤 목표부터 세울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우선해야 합니다.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할 때 즐거운지 세심하게 관찰해야 하죠. 봄철의 아지랑이가 무심히 길을 걸을 때는 보이지 않고 멈춰 서서 유심히 관찰해야 보이듯이, 내 마음속의 아지랑이도 스스로를 유심히 들여다봐야 볼 수 있는 것이죠."(한동일, '라틴어수업', 81)


한동일 신부는 대학 시절 무엇보다 자신을 알아가는 작업을 해야한다고 말하는데, 이를 위하여 '읽는 것'보다 좋은 것은 없을 것입니다. 물론 밖으로 표현된 문장을 읽는 것 뿐 아니라, 오에 겐자부로가 말한 '읽는 행위'를 할 때 말이죠.

읽는 오늘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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