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가명)는 에이즈가 이미 발병한 상태에서 아들을 낳았다. 아마는 어릴 적부터 다른 이들보다 모든 것이 더디었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과부였고 아편을 좋아했다. 결국 아편을 사다가 체포되어 감옥에 들어갔다. 아마는 어리고 싱그러웠고 사랑이 고팠다. 그래서인지 아마에겐 남자가 많았다. 누가 알려 주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는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약도 매일 빼놓지 않고 먹었다. 다만 그의 애인들에게는 이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일부러 그랬는지, 아니면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남자 친구들은 아마가 아프다는 것을 알고 나면 불같이 화를 냈고 사정없이 때렸다. 아마는 빈털털이에 만신창이가 된 채로 늘 쫓겨났다. 주변 이들은 모두 남자의 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마가 병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태어난 아기와 마지막 살던 곳에서 쫓겨난 아마는 우리 보육원까지 흘러왔다.
아마의 젖먹이는 신경질적이었다. 잠시만 엄마 품에서 떨어져 있어도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사람들은 모두 젖을 못 먹어 그렇다고 했다. 아마가 에이즈 환자였기 때문에 젖을 물리지 못한 것이다. 여러 명이 생활하는 시설이기 때문에 아마는 원아들이 설거지를 마치고 나면 개수대에 가서 설거지를 했다.
아직 돌이 되지 않았을 즈음, 아이의 얼굴에 열꽃이 났다. 그리고 낫지 않았다. 결국 아이 머리의 반이 열꽃으로 뒤덮였는데, 피와 진액이 터져 나와 범벅이 되었다. 굳은 피고름 반, 흐르는 피고름 반 사이에서 아이는 울었다. 아마가 언제부터 약을 먹기 시작했는지 잘 몰랐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이도 보균자가 아닌지 걱정하기 시작했다. 마침 원에 와 있던 봉사자들이 돈을 모아 아이를 큰 병원에 보냈다. 아이를 보내기 전, 아이를 안은 아마를 빙 둘러싸고 모두가 아이가 무사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다. 한 아이가 대표로 고름에 젖은 아이의 몸에 손을 대고 기도했다. 나는 그때 아마가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아마와 아이를 병원으로 보내고 해가 지는 들녘을 바라보았다. 나의 뺨도 축축하고 뜨거웠다.
아이의 검사 결과가 나왔다. 음성이었다. 기도했던 이들은 모두 안도했다. 입원과 항생제 치료를 받고 돌아온 아이의 얼굴에는 흉이 남았을 뿐 더 이상 피고름이 흐르지 않았다. 그렇게 아이는 나았다. 여전히 신경질적인 아이였지만 늘 엄마와 함께였기에 모두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아이는 돌을 넘겼다. 그리고 여전히 걷지를 못했다. 걷는 것을 떠나 가만히 서 있는 것도 버거워했다. 오랫동안 서 있으면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로 천천히 한 걸음을 떼면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아이의 다리는 유니세프 광고에 나오는 아이들의 사지처럼 얇았다.
어떤 이들은 아마가 너무 아이를 오래 안고 있어서 아이의 다리가 발달하지 못했다고 얘기했고, 또 어떤 이들은 역시 아이가 젖을 먹지 못해 그런 것이라고 했다. 나는 아이가 앓았던 열꽃이 폴리오가 아니었을까 생각했지만, 당시 의사에게 그런 말은 듣지 못했다.
아무튼 아이는 열심히 걸으려고 노력했다. 어찌어찌 첫걸음까지는 성공했지만, 두 번째 걸음을 떼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신기하게도 울보인 아이는 걸음마를 하다 넘어질 때는 좀처럼 울지 않았다. 익숙한 어른들을 보면 신이 나서 그쪽으로 걸어가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그를 지켜보았다.
어느 날 보육원 직원이 식당에 앉아 있는데, 식당 저 끝에서 아이가 그를 보고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한 걸음, 두 걸음... 아이의 다리가 사시나무같이 떨리기 시작했다.
"잘한다!" 그는 손뼉을 치며 아이를 응원해 주었다.
세 걸음.... 그리고 네 번째 걸음을 떼는 순간, 아이는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려고 버둥거렸는데, 좀처럼 잘 일어나 지지가 않았다. 직원은 식당 가운데서 목놓아 울었다.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아이는 노력했다. 그리고 또래보다 한참 늦기는 했지만 잘 걸을 수 있게 되었고, 종일 뛰어노는 것이 일이기에 걷기 시작하자 곧 뜀박질도 제법 잘했다. 다만 이 동네의 다른 아이들처럼 쪼리를 신지 못했다. 발가락에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세 살쯤 되자 아마는 보육원을 떠났다. 실은 아이가 두 돌이 지날 때부터 조금씩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던 그녀는 부쩍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머리를 곱게 빗고 분칠도 하고 마실을 다니던 그에게 다시 애인이 생겼다. 그리고 뭇 애인들이 그러하듯, 남의 아이를 함께 키우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아마는 울며 말했다. 나는 아직 젊다고. 아이를 사랑하지만, 나는 아직 어리다고. 그리고 애인과 함께 새 삶을 찾아 떠났다. 우리는 아마에게, 이번에는 꼭 병을 앓고 있다고 상대방에게 먼저 이야기하라고 조언했다.
아이는 또래에 비해 키가 컸지만 늘 뭔가를 앓고 있었다. 어디가 특별히 아프다기보다는 만성적으로 무언가에 감염되어 있었다. 머리에 있는 종기는 한 달 정도 매일 연고를 바르면 나았다가, 사나흘 후가 되면 약 올리듯 다시 올라왔다. 아이의 눈꺼풀에는 항상 진득한 눈곱이 잔뜩 끼어 있었다. 심한 날은 면봉으로 눈곱을 떼어 주지 않으면 눈을 뜨지 못할 정도였다. 피부도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친구들의 앞니가 빠질 때, 아이의 앞니도 빠졌다. 한 철이 지나자 친구들은 튼튼한 앞니가 생겼다. 아이는 두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앞니가 나지 않았다.
아이가 다섯 살이 되기 전에 아마가 다시 보육원에 돌아왔다. 그는 예전보다 야위어 있었고 화장을 곱게 하고 있었다. 아마는 아이를 안으려고 했지만, 아이는 아마를 기억하지 못했다. 아마는 곧 결혼을 할 것이고 앞으로도 종종 아이를 보러 보육원에 들리겠다고 했다. 그녀는 아이를 위해 사용해 달라며 돈을 건네고 돌아갔다.
아마가 돌아간 후, 아이에게 모두 엄마가 다녀 가서 좋겠다는 말을 한마디씩 건넸다. 아이는 자기는 엄마가 없다고 했다. 아이와 같은 방을 쓰며 돌보는 고등학생 누나가 네 어머니의 이름은 아마고 아까 왔다 가신 분이라고 하자, 아이는 배시시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누나가 우리 엄마잖아."
해가 지날수록 우리는 아이가 걸음마만 늦은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아이는 또래보다 어휘력이 떨어졌고 친구들과 놀이를 할 때 규칙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온갖 상처를 달고 사는 와중에 쓰레기통에 들어가 노는 것을 유독 좋아해서 자주 혼이 났다. 아무리 무섭게 혼을 내도 삐지는 일도 없었다. 훈육을 하고 돌아서면 해 살해살 웃으며 안아 달라고 떼를 썼다. 그리고 한 시간 뒤에는 똑같은 잘못을 반복했다.
어느 날 화장실을 갔다가 충격을 받았다. 아이가 고양이 세수를 한 뒤에 화장실 바닥을 닦는 걸레를 수건 삼아 뒤처리를 하는 것을 본 것이다. 지저분하다고 혼을 내자 아이는 또 배실배실 웃으며 애교를 부렸다. 그 날 오후, 한국 나이로 일곱 살이 된 아이에게 집을 그려 달라고 했다. 아이는 뭉뚱그려진 동그라미를 하나 그려냈다. 사람도 그려 달라고 했더니 작대기를 두 개 직직 그었다. 똘똘하지는 않구나,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마의 남편 될 사람이 보육원을 찾아왔을 때, 직원들은 그에게 사실을 알려 주는 것을 택했다. 그는 적잖이 쇼크를 받았다. 역시 아마가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이었다. 직원들은 아마가 약을 먹고 있으며 성실히 복용하면 파트너에게 병을 옮길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설명했다. 그것과 상관없이 둘은 파혼했고, 내가 목격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아마를 심하게 폭행했다고 들었다.
아마는 요즘도 가끔 돈을 들고 보육원을 찾아온다. 아이는 우리가 혼낸 것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돌아서서 안기면서, 여전히 아마가 찾아오면 주변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 이제는 아마도 굳이 아이를 안아 보려고 하지 않는다.
보육원에 손님들이 올 때마다 아이의 모습에 시선을 빼앗긴다. 그리고 대부분 아이를 조금 무서워한다. 항상 진물이 나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들 보육원을 책망하듯 아이가 왜 저런 상태인지 묻는다. 어떤 답을 해도 변명처럼 들리기에 다들 머리를 숙이고 가만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다. 24시간 누군가 아이를 계속 보고 있는 것은 사실 아니니까 말이다.
이따금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면 마음 한편이 꽉 막힌 듯한 느낌이 든다. 가끔은 아마를 책망하고 싶어 진다. 그는 지금 사귀는 사람에게도 아마 본인의 병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젊고 모자란 아마와 만나다 그녀의 비밀이 밝혀지면 매질부터 하던 대머리 벗겨진 그들도 딱히 좋은 사람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어쨌든 아마는 사리분별이 잘 되지 않는 이가 아닌가. 때로는 아마의 어머니를 책망해 본다. 그런 딸을 두고 아편과 도박에 인생을 허비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도 어찌 보면 여타 고산족들과 같이 역사와 마약 갱들의 피해자였을 뿐이다. 때로는 우리를 책망해 본다. 내 자식처럼 아이를 24시간 옆에 끼고 돌보지 않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소수이고, 아이들이 너무 많아 어찌 보면 어쩔 수가 없다. 어찌 보면 모두가 피해자이지만, 다른 면에서 모두가 조금씩은 가해자이다. 온전한 피해자는 아이 뿐이다.
아이는 오늘도 신발을 거꾸로 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