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숭 아파트의 추억

그땐 모두가 이웃사촌이었습니다.

by Yolo On
유년기의 첫 기억은 지금은 흔적조차 남지 않은 낙산 자락 동숭 아파트이다.


60년대 최초의 본격적인 현대식 아파트의 효시인 마포아파트의 성공으로 정부는 저렴한 비용의 시민아파트를 대거 짓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동숭 아파트는 서울의 대표적인 시민아파트로 한양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낙산에 빼곡히 지은 대단지 아파트였다.


낙타의 등을 닮았다 하여 낙산이라 불리는 그곳은 남산이나 인왕산처럼 서울 사대문 안이 모두 내려다보이는 최고의 입지조건을 갖추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운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의 거리는 대화는 물론 물건을 던져 주고받기도 가능했다. 또한 연탄보일러가 설치된 마포아파트와는 달리 시민 아파트답게 연탄아궁이로 난방을 하였으며 화장실과 세면장은 각층에 공동으로 사용하도록 되어있었다.

세면대는 군대식으로 넓은 타일 개수대에 벽 수전이 대여섯 개씩 붙어있는 구조였으며 화장실은 재래식 조차 아닌 구멍이 뚫린 파이프가 연결돼 간혹 신발이나 물건을 빠트리면 찾을 수조차 없는 무시무시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종종 발이 빠지는 수모와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멍을 통해 달걀귀신이 나온다는 소문까지 무성한 공포의 화장실이었다.


집 구조는 현관을 들어서면 무릎 높이의 마루와 방이 있는 전형적인 한옥구조에 주방은 현관보다 낮아 도무지 층과 층 사이의 두께를 가늠할 수 없는 신비로운 건물이었다. 그 미스터리한 층간 두께로 인해 어릴 적 집에서 스카이콩콩 이전 최고의 히트상품이었던 고무 말 통키를 타고 놀아도 층간소음 항의를 전혀 받지 않았던 것 같다.


더욱이 부산에서 상경해 제법 돈을 버셨던 아버지께선 서울이 다 내다보이는 이화장 바로 위 맨 앞의 아파트를 두 채나 사셔서 벽을 허물고 한 채로 만들어 사용한... 지금으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용도 변경을 하셨다.

그래도 어릴 적 마음엔 아파트 베란다에서 내려다 보이는 아랫동네 마당 딸린 단독주택이 너무나 부러워 아버지께서 돈을 더 벌어 이사 가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중앙계단 양쪽에 하나의 복도를 사이로 마주 보던 집들은 여름이면 대부분 열려있었고, 식사 때면 온 아파트가 무엇을 해 먹는지 알던 하나의 작은 마을이었다.


각 층 복도에는 옆 단지와 연결된 구름다리가 놓여있었고, 한쪽 베란다에는 쓰레기를 버리면 1층 수거통으로 떨어지는 우편함 같은 철제문이 달린 쓰레기 투입구와 화재 시 탈출 통로로 만든 베란다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 조그만 닭장을 만들어 학교 앞에서 사 온 병아리를 키우기도 했다.

어린 마음에도 저거 키워 먹겠다는 생각에 정성껏 배추 잎을 줬는데 그만 시들시들 병들어 죽고 말았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신문지에 싸서 그 베란다 쓰레기통에 던져버리셨다.


그때 그 시절... 이웃은 사촌이었다. 이웃사촌!


모두가 잘살아보겠다고 고향을 떠나온 타지 사람들이었기에 낯선 서울의 삶은 자연스레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어 주었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의 심각한 공동체 의식은 자신이 사는 곳을 삶의 터전으로 여기지 않고 직장이나 학교나 집값에 의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는... 고향으로 뿌리내리지 못하는 떠돌이 같은 삶에서 기인되었다고 생각한다.

아파트 사이사이 모든 골목 곳곳에 숨어있던 구멍가게와 온갖 노점상들과 리어카들은 하나의 거대한 유기적인 생명체였다.


유기적인 마을 공동체적 삶을 잃어버린 지금,
우리의 삶은 더 안락해지고 편해졌는데...... 많이 행복하지는 않은 것 같다.


당분간 공동주택에 대한 매거진 글은 쉴 예정입니다. 보잘것없는 이 글을 어느 신문사에서 칼럼으로 연재해주신다고 하셔서 총 10회 기획으로 마친 후 다시 차례차례 적어보겠습니다. 대신 한동안 쓰지 못했던 육아일기와 사춘기에 들어가는 딸아이와 함께 하는 자녀교육에 대해 적어볼까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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