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 지구과학 이야기
반만년 역사를 갖고 있는 우리는 역사를 고조선, 삼국, 통일신라(남북국), 고려, 조선, 대한제국, 대한민국으로 길게 배운다. 하지만 역사가 짧은 미국은 선컬럼버스시대, 식민지시대, 혁명 및 건국 시대, 연방 시대, 내전 시대, 재건기, 도금시대, 진보시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전간기, 제2차 세계대전 및 냉전 시대, 현대 시대로 구분한다.
대충 보면 전쟁과 그에 이어지는 호황기가 이어지는 형국인데, 이 호황기에 오늘날의 미국의 삶의 모습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꾸준히 전쟁을 하는 나라가 미국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그중 미국이 유럽을 경제적으로 능가하기 시작한 도금시대, 진보시대가 아메리칸드림의 자신감뿐 아니라 배금주의(拜金主義), 물질주의가 만연하게 된 중요한 시대적 배경이 되었다.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 1896~1940)는 프린스턴을 나왔지만 애인인 지네브라 킹(Ginevra King, 1898~1980)의 아버지가 반대하여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 이 때문에 '리치걸 푸어보이'라는 피츠제럴드의 문학에 있어서 핵심 에피소드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1925년에 출간한 <위대한 게츠비>는 그의 세 번째 작품이었고, 이제는 20세기 최고의 소설로 손꼽히고 있다. 1974년 로버트 레드포드(2025.9.16 작고) 주연으로 영화화 됐으며, 2013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으로 다시 영화화된 바 있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누가 봐도 잘 생긴 주인공이라는 점이다(당연한 이야긴가...).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20년대인데, 이 시기는 특별히 '광란의 20년대(The Roaring Twenties)'라고 불렸다. 1차 대전 종전에 따른 유럽의 부흥정책에서 유발된 미국의 호황은 높은 경제성장률과 제조업의 발전, 금융 같은 무노동 산업의 발달로 사회문화적 혁신이 일어났다. 비록 금주법이라는 지켜지지 못할 법이 있었지만 술, JAZZ, Swing Dance 같은 문화 전반의 변화가 확산되었다. 하지만 100년 전 이러한 상황이 잉태된 시대는 바로 도금시대였다.
도금시대(鍍金 時代, Gilded Age)는 1865년 남북 전쟁이 끝난 후, 1873년부터 불황이 오는 1893년까지 미국 자본주의가 급속하게 발전한 28년간의 시대를 일컫는다. 이 명칭은 문학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 1835-1910)과 찰스 더들리 워너(Charles Dudley Warner, 1829-1900)가 공동 저술해 1873년에 발표한 소설 <도금시대 The Gilded Age: A Tale of Today>에서 유래됐다.
이야기는 가난한 호킨스 가족이 테네시의 쓸모없는 땅을 팔아 부자가 되려는 헛된 희망을 품고 미주리로 이주하면서 시작된다. 그들은 허풍선이 버라이어 셀러스 대령과 같은 인물들을 만나며 일확천금을 노리지만, 그들의 계획은 번번이 실패하고 정치적 부패와 투기 광풍에 휩쓸린다. 결국 소설은 개인의 비극과 사회의 만연한 탐욕을 통해,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썩어 문드러진 '도금 시대'의 어두운 이면을 폭로하며 막을 내린다.
'도금(Gilded)'은 구리 같은 가치가 적은 금속에 금이나 은과 같은 가치가 큰 금속을 표면에 붙여서, 마치 전체가 가치 있는 금속으로 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즉 겉으로는 화려하고 멋져 보이지만, 실제로는 속이 비어 있거나 실속이 없고, 부패한 당시 미국 사회를 풍자하는 단어로 쓰인 것이다.
당시는 카네기, 록펠러 같은 미국 최초의 재벌(트러스트)들과 함께 토머스 에디슨(1847~1931), 니콜라 테슬라 등의 발명가가 활약한 시기이기도 하다. 돈이 된다면 어떤 짓이든 저지르는 비열한 시대였다. 우리가 발명왕의 알고 있던 토머스 에디슨의 구질구질한 에피소드들이 그 시대를 잘 나타내준다.
이 시기에 지질학계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진흙탕 싸움이 벌어졌다. 공룡 화석 전쟁(恐龍化石戰爭) 또는 뼈 전쟁(Bone Wars)은 미국사 도금 시대 동안에 오스니얼 찰스 마시(Othniel Charles Marsh, 1831~1899)와 에드워드 드링커 코프(Edward Drinker Cope, 1840~1897) 사이의 강렬한 화석 발견, 발표 경쟁을 말한다. 두 고생물학자는 서로를 끌어내리기 위해 뇌물을 쓰는 것은 물론, 도둑질에, 화석을 파괴하는 등의 떳떳지 못한 일도 서슴지 않았다. 또한 두 과학자는 논문에서 서로를 인신 공격했으며, 서로의 신용에 흠집을 내고, 상대방의 자금 제공이 끊어지게 했다.
원래는 서로 호의적인 동료였던 마시와 코프는 서로 간의 개인적 무례로 인해 같은 하늘아래 있을 수 없는 앙숙이 되고 말았다. 화석을 찾아다니던 두 사람은 콜로라도와 네브래스카, 와이오밍의 풍부한 골층(화석이 나오는 지층)으로 떠났다. 1877에서 1892년까지 두 고생물학자는 자기 탐험대를 지원하고 화석 사냥꾼을 영입하며 화석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들의 부와 명성을 이용했고, 결국 치열한 경쟁을 돋우기 위해 재산을 마구 쓰던 두 과학자는 공룡 화석 전쟁이 끝에 파산하고 말았다.
이들의 이야기는 <쥬라기 공원>으로 유명한 소설가 마이클 크라이튼(Michael Crichton, 1942~2008)의 유고작인 <드레곤 티스, Dragon Teeth> (인플루엔셜, 2019)에 잘 그려져 있다. 이 작품은 사후 세 번째로 발표된 소설인데, 부인인 셰리 크라이튼이 유작을 정리하면 발견했다고 한다.
캘리포니아 골드러시(1848~1855) 이후인 1870년대를 배경으로 실존인물인 화석사냥꾼 커프와 마시의 피 튀기는 이야기를 예일대생 윌리엄 제이슨 터툴리어스 존슨의 성장과 모험을 통해 잘 그렸다.
도금시대와 진보시대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정하고 못된 짓도 서슴지 않았던 시기였다.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황금만능주의, 배금주의의 시대였다. 그 이후 이러한 과도한 행동을 자제하고 이성적인 인간의 모습을 회복하자는 반사적인 흐름이 나타나게 되었다. <위대한 게츠비>도 돈이 아닌 순수한 열정을 찾고자 하는 불쌍하면서 순진한 게츠비를 그려내면서 그를 위대하다(Great)고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 모습을 보면 과연 도금의 시대가 지나갔는지 잘 모르겠다. 경제적인 가치는 유치원생에게 의대반으로 밀어 넣고, 남에게 자랑하려는 과시소비는, 길거리에 넘쳐나는 고급차, 수십 만원 하는 빙수, 체할 만큼 비싼 호텔 뷔풰, 언론에 도배하듯 등장하는 명품 가방, 목걸이, 시계와 구두. 어쩌면 도금시대는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르고 어리석은 인류는 영영 극복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걱정스러운 마음이다.
<위대한 게츠비>는 100년 전에 나온 책임에도 아직도 생생하게 읽힌다. 영화는 지금 부유한 동네에서 벌어지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1억 년 이상 세상을 호령하던 공룡도 운석 한방으로 순식간에 멸망했다는 것을 알 정도로 똑똑한 인류는 유인원에서 진화한 지 고작 300만 년 밖에 안 됐다. 우리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잘난 척인지, 그것이 인류를 살리고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세상의 모습인지 나부터 고민해 봐야겠다.
전영식,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