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pringtime May 02. 2023

함께 산다는 건, 상대의 귀가를 걱정하는 것도 포함이다

알콜 러버들의 동거 

나와 지유는 중학교를 다닐 무렵, 서로의 공통된 친구 소개로 알게 되었고 이후 '한 무리'로 엮였을 뿐, 다른 동네에 살았고, 같은 반이었던 적도 없었기에 친해질 계기가 마땅치 않았다. 함께 하는 친구들이 둘만 있으면 어색한 사이라고 해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친구'가 있지 않은가. 개인사정은 잘 알지 못해도 집은 자주 놀러 가고, 단 둘이 일대일로 연락을 한다거나 따로 만나서 노는 일은 없었지만 매년 돌아오는 서로의 생일을 기억하고 축하해 주는 '친구', 우리는 그런 ‘친구’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대학교를 지나 취업을 한 뒤에도 서로가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던 우리가, 함께 살기로 결정한 뒤부터는 이제 막 썸을 타는 연인마냥 서로를 향한 관심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우리의 공통점은 취업을 하고 독립을 했다는 것, 분야는 다르지만 어찌 되었든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알코올을 즐긴다는 것이었다. 함께 다니는 친구들이 알쓰였기에 만나면 술 대신 커피를, 안주 대신 밥을 먹는 것이 기본이었는데 그동안의 시간이 우스울 정도로 지유와 나는, 인생에서 '술'을 빼놓을 수 없는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지유와 나의 보관함
그리고 냉장고


"제 주량은 소주 1병이에요. 그 이후로 마시면 다음날 너무 힘들더라고요"

"아니, 다음날 힘들 뿐이지 마실 수는 있는 거잖아!"

"그건 그래도... 다음날 뻗어있어야 해요"

"잘 마시네~"


분명 숙취가 심하다는 말을 덧붙였음에도 회사 사람들은 ‘나의 진짜 주량’을 알고 싶다며 계속해서 술을 권했다. 어린 날의 나는 그것이 '술 강요'임을 알지 못했고 더불어 분위기가 좋아서, 술이 달아서 그들이 권하는 술을 전부 받아먹었다. 어디에도 쓸데없는 '술 부심' 부리기가 나온다는 것은 '내일 침대에서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일 것이다'는 예언과도 같았다. 이 기준점을 살짝만 넘기면 쥐도 새도 모르게 집으로 귀가를 하곤 했는데, 이 술버릇은 위험한 대한민국을 살아내기에는 꽤나 좋은 습관이었고, 그렇게 안전귀가를 한 어느 날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하루가 순삭 된 이후였다.      


'포카리 & 갈아 만든 배' 


생명수와 같은 두 음료를 마시다 잠들고, 또 마시고 잠들고를 반복하여 겨우 살아난 나는 마지막 해장을 하기 위해 거실로 향했다. 퇴근시간이 지났지만 컴컴한 지유의 방안을 보니 그녀 또한 회식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알코올 러버인 그녀도 나와 같이 '술 부심'을 지니고 있었고, '귀가본능' 또한 탑재되어 있었으나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난데,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겠어"


자정이 다 된 시각 지유는 내게 전화를 걸어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내뱉었고, 나는 그녀가 조금이라도 정신을 차리기 바라면서 지도 보는 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도 어플 켰으면 거기서 현재 위치를 눌러! 그리고 그걸 캡처해 봐!"

"....어딘지가 안 떠"


상수역 근처 상호명까지 정확히 기억하는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중, 더 이상 못 마시겠다고 외치고는 그 가게를 뛰쳐나와(?) 일직선으로 쭉 달렸다는 그럴듯한 지유의 얘기가 진실이길 바라며 그녀를 데리러 가기 위해 택시를 불렀다. 


“기사님, 상수역으로 가주시는데.. 혹시 2배로 드릴 테니 친구 찾는 것 좀 도와주실 수 있나요?”


다행스럽게도 기사님은 친절하셨고, 여전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지유를 찾아 함께 골목을 누벼주셨다. 눈에 보이는 건물의 이름도 말하지 못할 만큼 점점 취해가는 그녀는 어느새 길바닥에 앉았다고 얘길 했고, 동시에 나의 복장이 터질 무렵 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친구 분이신가요? 여기 oo편의점 앞인데 이쪽으로 오시면 될 것 같아요. 제가 지금 집에 가는 길이라 오래는 못 있어 드릴 것 같은데, 언제쯤 오시나요?”     


그가 말한 편의점은 3분 거리였고, 나는 연신 그에게 고맙다는 말 내뱉었다. 택시가 도착했을 때, 그는 없었고 널브러진 지유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정신 차려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친구분이 착하시네, 이렇게 데리러도 와주고"

"다시는 안 하려고요. 꼴 보기가 싫네요"


이렇게 취한 와중에 집에 가겠다고 내게 전화를 건 것을, 전화를 끊지 않고 계속 한 자리에 앉아 있었던 그녀를 칭찬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지유는 무언의 사인을 보내왔다. 하지만 그 사인은 내가 아닌 택시기사님이 먼저 캐치하셨고, 다급하게 검은 비닐봉지를 건네셨다.


"여기에 하던지, 아니면 바로 세워줄게요. 잠깐만 참아봐요" 


택시가 멈추자, 지유는 하수구를 찾아 목구멍에 차올랐던 술의 기운을 내뱉었고 그 모습을 보던 나는 쥐구멍으로 숨고 싶어졌다. 이렇게 한숨을 단전에서부터 올려 내쉬어본 게 얼마만인지. 


"그래도 15만 원 아꼈네"

"네?"

"택시에 저러면 15만 원이에요. 다른 건 다 괜찮은데, 냄새가 잘 안 빠져"




"나만 가정이 없어!"


처음이 어렵지, 그날 이후로도 종종 술에 취한 지유는 내게 전화를 걸어오곤 했다. 자신과 술을 마시는 사람 모두가 가정이 있어 빠른 귀가를 해야 하는 날이면 자신만 가정이 없어서 서럽다는 둥 가정이 있으면 집에 가야 하냐는 둥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곤 했고. 때로는 얼큰하게 취한 직장 동료들이 지유가 감당이 안되니 데리고 가라는 연락을 해오기도 하였다. 


나를 찾는 것이 그녀의 '술버릇'으로 고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유의 모든 횡포(?)를 녹음, 녹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술에 취해 기억이 잘 나지 않을 그녀를 위해, 증거물들을 카톡방에 공유해 주었다. 물론 중학교 친구들이 함께 있는 방에. 


"아, 수치스러워. 다신 안 그럴게"





 

"귀가 시간이 12시를 넘길 시, 카톡 보내기"


우리에게는 암묵적인 규칙이 하나 있다. (지난번, 얘기했던 페이퍼는 진즉 쓸모 없어졌다) 야근, 회식 등등 다양한 이유로 집에 오는 시간이 늦어질 때, 서로가 걱정하는 것 방지하기 위해 귀가 여부를 미리 알리는 것. 혼자 살면 결코 필요 없는 규칙이지만, 둘이 살기 때문에, 함께 살기 때문에 꼭 필요한 규칙. 


"나 오늘 회식. 좀 많이 늦을 듯. 취하고"  


지유의 카톡이 울릴 때면, 본가에서 회사를 다닐 때 엄마와 주고받았던 "언제 오니?", "저녁은?"과 같이 나의 퇴근을 물어오는 문자가 가끔 생각날 때가 있다. 그리고 다시는 그때가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 괜히 헛헛해지기도 한다. 물론, 나에게는 하우스메이트가 있긴 하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룸메이트를 구하려는 자, 룰의 무게를 견뎌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