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17> 가장 봉준호스러운, 가장 봉준호답지 않은

<미키17> 리뷰 및 단평

by 미니미누

- 작가의 말

오늘은 물음표의 방향이 약간 다르다.

보통 물음표 리뷰의 경우, 해석의 여지를 돕는 약간의 첨언 정도라면,

오늘은 봉준호 영화임에도 왜 어딘가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을까?를 생각해보려고 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자연스레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오르곤 한다.

‘뭔가 뭔가 아쉬워..’
‘오! 역시 봉준호인걸?’

오늘은 <미키17>이 어떤 부분에서 부족했고, 또 어떤 부분이 만족스러웠는지 부족하지만 의견을 남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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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17> 은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 봉준호가 다시금 할리우드로 건너가 거액의 제작비를 들여 완성한 SF 신작이다.

한국적인 정서를 누구보다 날카롭게 포착해온 봉준호가 <옥자>와 <설국열차>에 이어 또다시 SF라는 장르를 택한 것은 도전정신을 증명하지만, 이번 작품이 남긴 감상은 기대에 비해 꽤나 복잡하다.


봉준호는 그동안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잡는 연출로 관객들을 설득해왔다. 그의 영화는 대중이 즐길 수 있는 오락성이 존재하면서도 은근하게 사회적 메시지를 새겨넣는다. 이 선을 넘나드는 감각 덕분에 그는 단순한 ‘한국 감독’을 넘어 세계 영화계의 아이콘이 됐다. 그러나 <미키17>은 이 절묘한 줄타기가 한쪽으로 크게 기울어진 듯하다. 작품성보다는 대중성에 방점을 찍었고, 색다른 서사 대신 익숙함이 자주 보인다. 장재현 감독의 <파묘> 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물론 <파묘>가 자가복제와 같은 익숙함이 보이진 않지만, 대중성에 치우쳐져 편리주의적인 연출을 남발해 작품성을 다소 약화시킨 것과 일맥상통한다.


물론 <미키17> 이 못 만든 영화라는 뜻은 아니다. 봉준호 특유의 주제 의식과 연출은 분명 살아 있다.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과 파괴된 계급 구조, 산재로 죽어가는 노동자들의 은유, 그리고 소수자 연대의 메시지는 여전히 그의 서사적 뼈대를 이루고 있다. 문제는 그 완성도가 이전작에 비해 느슨하다는 점이다. 특히 엔딩과 캐릭터 설계가 뼈아프다.


영화는 ‘모든 인간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메시지로 출발해, 순혈 인간과 인조인간이 구분 없이 연대하는 서사를 예고한다. 그러나 결말은 어느 순간 개인의 영웅 서사로 급회귀한다. 인간을 ‘같은 존재’로 그리겠다던 영화는 결국 ‘더 뛰어난 인간’을 강조하며 스스로의 논지를 스쳐 지나간다.

더욱이 미키라는 캐릭터는 봉준호 특유의 이중성과 아이러니를 잃어버린 채, 평면적으로 소비된다. 관객은 질문을 던지지만 답은 더 이상 깊지 않다. 이전 작품들을 그대로 눌러담은 ‘봉준호 표 프린트물’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결국 <미키17> 은, 피 튀기지 않아도 뜨거웠던 봉준호 영화의 땀내 대신, 한겨울 산장 안 벽난로 앞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만든 듯한 포근한 SF이다. 안온함은 있지만, 그간 그를 빛나게 한 치열함은 보이지 않는다.

그 점이 가장 아쉽다.



# 봉준호의 고유한 연출이 사라지다


<미키17>은 복제와 소모를 테마로 삼아 미키의 계급 구조와 수없이 죽어 나가는 노동자 미키들을 통해 봉준호식 부조리를 드러낸다. 그러나 캐릭터성은 빈약하다. 두 인물을 대비시키기 위해 과도하게 단순화된 ‘선한 성격과 과격한 성격’의 대비는 너무나 손쉬운 선택이다. 사회 문제를 표면적으로 다루며, 깊이 파고드는 봉준호 특유의 한국적 서사는 글로벌한 SF로 가면서 옅어져 버렸다. <파묘> 의 무속적 색채가 겉핥기에 그친 것과 비슷하다.

봉준호는 김기영 감독에게 자신이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여러 인터뷰를 통해 언급했다. 이번 <미키17> 도 그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인긴 소모의 구조나, 계급 사회의 은유에 김기영의 그림자가 선명하히 보인다. 하지만 이것을 할리우드 SF로 가져오면서 김기영 감독의 특유의 기괴함과 불안함이 다소 옅어졌다. 봉준호는 김기영의 그림자에 자신만의 색을 입힌 완성된 <기생충> 의 한국형 아이러니가 할리우드의 고자본을 투입해 대중성을 중시한 안전한 SF 속에서 희미해진 점이 매우 아쉽다.



# 반복되는 자기복제


계급 구조는 <설국열차>와 닮아있고, 자본의 탐욕은 <옥자> 와, 사회 시스템을 개인을 통해 은유하는 방식은 <괴물>, <기생충>과 맞닿아 있다. 계급 역전, 연대 실패, 파국의 결말까지, <미키17> 은 마치 SF판 <기생충> 같다. 새로운 서사를 제시하기보다는, 이전 작의 요소들을 안전하게 복제해 대입한 듯하다.

<미키17>이 결코 못 만든 졸작이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평작 내지 꽤 잘 만든 수작에 가깝다. 다만, 봉준호 고유의 색채가 빠져 ‘더 잘 만들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못했다’ 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아무리 고유한 개성이 옅어졌다고 해도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며, 오히려 강조한 대중성은 관객에게 충분히 어필된 것으로 보인다. ‘자가복제’라는 비판도 사실 봉준호이기에 가능한 말이지, 다른 감독이었다면 오히려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미키17>이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는, 우리가 아는 봉준호라는 이름이 기대를 키웠기 때문이다. 거대한 자본과 감독의 역량이 완벽히 맞물리지 못하면서 예상보다 빈틈이 드러났고, 그로 인해 아쉬움이 더 크게 다가온 것이다.



그럼에도 봉준호는 봉준호다. 다음 작품에서는 다시 봉준호만의 치열함과 아이러니로 관객들을 설득해 나갔으면 좋겠다. 결국 우리는 또다시 그 이름을 믿고 기다릴 수밖에 없다.

<미키 17>을 영화 개봉 이후 아직 OTT에 풀리지 않았기에 자세한 해석과 분석은 진행하지 못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자세히 분석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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