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랑 Apr 06. 2021

마당에 수선화가 피었다


 화단 앞쪽에 일렬로 죽 늘어선 수선화가 저희끼리 노랗다. 


 집은 비어 있으나 마당은 분주하다. 온갖 풀이 자라고 화단에는 작년에 심었던 수선화, 튤립과 수국, 매년 꽃이 피는 접시꽃, 마거릿, 비비추의 새순이 제각각의 모양을 하고 궁금한 세상 기웃거리며 부풀어진 흙을 뚫기 시작했다. 


 아! 저기 미니 철쭉도 조르르 붉은 봉오리를 달고 있다. 민들레는 이미 피고 지며 제 세상 만난 듯 노란 사탕 굴리고 있다.


 화단은 곧 꽃과 풀들로 엉켜 빈집의 적막을 더 실감 나게 할 것이다.


 봄부터 늦가을까지는 며칠 만에 한 번씩, 텃밭을 일구는 시기엔 이틀에 한 번꼴로  드나들지만, 겨울엔 집만 혼자 덜렁 남는다. 


 빈집은 춥다.


 바람 몹시 불고 눈이라도 펑펑 내리는 날이면 저 혼자 덜컹거릴 대문이, 마당을 휩쓸고 다닐 바람을 뒤척이며 마음이 편치 않다. 어서 겨울이 가기를 바라기도 한다.


 온기를 잃고, 말을 잃고, 따뜻함을 잊은 집에서 다시 봄이 온다. 추억과 기억을 고스란히 남기고 더 무엇을 담을 기력 없는 집에서 봄이 왔다고 새가 울고 나비와 벌이 찾아든다. 헐거워진 집도 봄맞이하듯 몸을 덥히며 들썩이는 것 같다. 


 춥고 외롭고 캄캄했던 긴 겨울을 보상이라도 받는 듯 봄날의 풍경을 품어 안으며 빈집은 어깨를 펴고 봄날의 시간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산 것은 또 그렇게 살아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