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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랑 May 18. 2021

소쩍새 울음이 사랑에 가닿기를


 오월 숲에서 소쩍새가 운다. 저녁 무렵의 산책길을 소쩍새와 함께 걷는다. 밤에 듣는 새 소리는 남다르다. 낮 동안 환하던 사물들이 어둠으로 가라앉으면 비로소 들리는 소리가 보이지 않던 것들에 귀 기울이게 한다.


 소쩍새는 솥이 작아 굶어 죽은 며느리의 설화(說話)를 가지고 있다. 온 식구 밥 다 퍼주고 텅 빈 솥을 바라보며, 구박하는 시어머니를 향한 미움보다 피붙이 떠나 낯선 시집살이 서러워 못내 가슴 쥐었을 어린 며느리의 눈물을 떠올리게 하는 듯한 간절한 소리로 들린다.


 소쩍새 울음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정갈해진다. 딱히 설화의 사연이 아니라도 늦은 밤 듣는 소쩍새 울음은 살아온 생을 뒤척이게 하고 남은 날들을 헤아리게 한다.


 구름 같던 벚꽃 지고 난 후 고봉밥 같은 이팝나무꽃이 피고 있다. 천지가 밥이라며 이팝나무는 제 몸 부풀리며 허기진 자들을 모으고 호명한다. 한바탕 그리움에 지친 영혼들 품으며 가진 것 넉넉히 베풀 듯 풍요로운 손짓을 까부는 이팝나무.


 오늘 문득 소쩍새 울음소리와 이팝나무가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서러운 것이 어디 며느리일 뿐일까. 세상 모든 이름 불리는 것들이 다 서러운 것은 아닌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는데 호수 건너편에서 큰 목소리가 공기를 찢는다.


 “ㅇㅇ아, 사랑한다!”


 풋살 구장에서 운동을 마치고 나오는 청년들인 듯하다. 전화에 대고 하는 소리인지 아니면 함께 가다 소리 지른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하하, 웃고 말았다. 그래, 사랑이어라. 사랑하니까 삶이 아름답기도 서럽기도 한 것 아니냐. 괜히 가슴이 따뜻해진다. 


 그 누구에게라도 크게 소리 내어 “사랑한다.” 말해 본 적 있었나? 


 소쩍새 울음소리의 간절함이 청년의 사랑에 가닿기를, 그 마음이 누군가의 가슴에서 둥! 하고 울리기를, 소쩍새야 더 크게 깊게 온 밤을 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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