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만들어 밀봉해 두었던 감잎을 꺼내 차를 우린다. 조글조글한 잎이 따뜻한 물에 연노랑을 푼다.
사월 어느 햇살 맑고 하늘 푸르고 바람결 부드럽던 날 감잎을 땄다. 감잎은 그날의 풍경을 고스란히 풀어놓는다.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고 싶듯이.
처음 감잎차를 만들었을 때가 생각난다. 우연히 감잎차 마시는 모습을 어디선가 보고 시골에 감나무도 있겠다. 저 정도는 내 손으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
어리지도, 훌쩍 자라 너무 크지 않은 잎을 따야 하는 그 적당한 때를 기다리는 일이 좋았다. 한참을 기다렸는데 하룻밤 사이 몰라보게 커져 있는 감잎을 보는 해도 있었으니 그 적당한 때를 맞추는 일이란 언제든 무엇이든 누구든 쉽지 않은 일임이 틀림없다.
지금이야 요령도 생겼고, 집에 미니 건조기가 있어 도움을 받지만, 몇 년 전에는 감잎을 따 씻고 쪄, 일일이 펴 말린 후 몇 번의 덖음 과정을 치러야 단맛이 나는 감잎차를 마실 수 있었다. 이제는 조금 쉽게 원칙대로 하지 않아도 차를 마실 수 있으니 좀 편하긴 하다. 누군가 해 놓은 것 사 마시면 가장 편할 텐데 굳이 애써 내 손으로 하는 몇 가지의 일이 있다. 감잎차를 만드는 일도 그중 한 가지 일이다.
감잎차를 만드는 일은 기다림을 기억하기 위한 일이다.
차를 우리는 일 외에 차를 마시는 순간 잎을 따던 날의 시간과 공간, 또 감잎이 커가는 과정을 기다렸던 일 등의 시간을 다시 만날 수 있게 한다. 무엇보다 내 손으로 만든 차를 마시면 그날의 봄이 소환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봄 햇살을 등지고 형언할 수 없이 투명하게 비껴들던 연둣빛의 찬란함을 어찌 잊을까. 그 색깔을 누군들 그려낼 수 있고 쓸 수 있을까? 그냥 보는 것으로 족할 일이다.
“편하게 마시지!”하며 엄마를 위해 투덜거리던 딸과 감잎차를 마시기 위해 마주 앉는다. 모처럼 한가롭다. 차 한 잔이 오기까지의 부산스럽고 애썼던 일들이 언제 적 일이냐 싶게 잊히고 단맛을 우리며 노랗게 퍼지는 봄이 찻잔에 고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