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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도훈 Jan 07. 2023

새로운 물결을 노래하다 - 누벨바그

소프라노 강혜정 연말 콘서트 리뷰


어느 순간부터 연말이면 그 해를 마무리하는 의미로 음악 공연을 보러 간다. 이전까지는 좋아하는 재즈 피아니스트의 공연을 봤지만 2022년의 마무리는 조금은 색다르게 <소프라노 강혜정의 연말 콘서트>를 감상했다. 


클래식 문외한이 이 공연을 고른 데는 ‘누벨바그’라는 콘서트 제목 때문이었다. 누벨바그는 1950년대 프랑스 영화계에서 일어난 새로운 영화적 풍조를 지칭한다. 기존의 영화적으로 고착화된 장르와 관습에서 벗어나 창조적인 개성을 추구하는 혁명적인 운동이었다. 앙드레 바쟁, 장뤼크 고다르 등 영화를 공부하다 보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인물들이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영화 음악 콘서트를 ‘누벨바그’라고 당당히 명명한 것에는 그만큼 영화 음악을 개성 있게 해석했다는 자부심이 엿보인다. 소프라노 강혜정은 2005년 뉴욕 케이 플레이하우스에서 오페라 <마술피리>로 데뷔해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에서 패티 역을 맡는 등 클래식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다. 그와 함께 지휘에는 차웅, 연주에는 ‘한경arte필하모닉’이 참여해 다채로운 공연을 선사했다. 이동진 평론가와 출연했던 프로그램 <영화는 수다다>로도 유명한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이 공연을 더 유쾌하고 깊게 즐길 수 있도록 사회와 해설을 맡았다.


좋아하는 장르나 음악을 물어봤을 때 ‘클래식’ 혹은 ‘베토벤 교향곡 제3번’하고 대답하는 사람이 그리 흔하지는 않다. 만나는 사람들의 나이 대와도 관련이 있겠지만 대중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영화 음악은 대중성과 예술성을 함께 녹여내는 데에 효과적이다. 



1부에서는 <엽기적인 그녀(2001)>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을 시작으로 <드라이브(2011)>의 Oh My Love,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코다(2021)>의 Both Sides Now, <Out Of Africa(1985)>의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 아다지오, <레미제라블(2012)>의 I Dreamed a Dream, <포카혼타스(1995)>의 Colors of the wind, <사랑은 비를 타고(1952)>의 Singing In The Rain 순으로 이어진다. 


대중적인 영화들에 삽입되어 익히 들어본 음악들이다. 알고 있는 기존의 음악이 멋진 클래식 하모니로 어떻게 재탄생할까 기다리고 있는 순간, 그리고 첫 음절이 시작될 때의 느낌은 영화음악 콘서트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만든다. 특히 가장 기대했던 ‘Both Sides Now’와 ‘Colors of the wind’에서는 깔끔하게 뻗어나가는 목소리와 함께 두 명곡이 담고 있는 가사가 마음으로 읽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2부는 <라라랜드(2016)> OST 메들리를 시작으로 산뜻하고 발랄하게 출발한다. 이어서 <스타 이즈 본(2018)>의 I’ll Never Love Again,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의 오드리 헵번이 창가에 앉아 우크렐레를 연주하며 불렀던 Moon river, <멤피스 벨(1990)>의 Danny boy, <라벤더의 연인들(2004)>의 Ladies in Lavender, 홀로코스트를 다룬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1994)>의 Main Theme, 마지막으로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1989)>의 Rusalka 중 ‘달에게 부치는 노래’로 콘서트는 막을 내린다. 1부에 비해 2부에서는 낯선 곡들이 많았지만 무대 뒤편의 스크린에서 영화가 상영되어 오롯이 장면들과 음악에 집중할 수 있었다. 


특정 냄새를 맡았을 때 과거의 어떤 기억과 감정이 떠오르는 프루스트 효과는 음악에도 적용된다. 예로 Moon river를 들으면 창가에 앉아 노래를 부르는 오드리 헵번의 아름다운 모습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혹은 Another day of sun을 들으면 라라랜드의 오프닝 시퀀스가 떠오르면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싶어진다. 사랑하는 사람과 버스에서 함께 들었던 음악, 식당에서 밥을 먹다 우연히 귀에 꽂힌 노래는 기억 깊은 곳에 잠들어 있다 우연히 그 음악을 다시 듣게 되는 순간 깨어난다.


영화 음악은 영화라는 놀라운 경험과 감정을 다시 상기시켜주는 힘이 있다. 그리고 영화 음악 콘서트는 영화 속 장면과 음악을 다시 새롭게 해석하여 공연을 감상하며 연말을 마무리하는 작은 순간을 근사한 2022년의 마지막 시퀀스로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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