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합니다

전시 준비가 마무리 된 새벽

by hari

bleuir



1.

시간은 흐른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척 하며 살아가는 나를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

2.

모든 것들이 한 자리에 살아 숨 쉬면 서로 다툰다. 나는 그 중간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항상 그들 사이를 걸어 다니며 싸움을 일으키기도 하고 사랑받기도 하고 미움 받기도 하고 여러 무리를 포개고 누워있기도 한다.

3.

불확실성이라는 것은 불안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흥미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나는 두 무리 사이에서 불확실성을 받았다. 슬픈 눈으로 유쾌하게 웃고 있었다.

4.

의자를 뒤로 끌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 때의 나는 나 자신을 푸르게 만들고 있었다. 이제는 그들과 푸르게 어우러져 있었으며 타인의 함께 있지 않는 나를 상상하기 싫다. 맑은 것들과 불순한 것들을 합쳐 정확하고 깔끔하게 다듬는 동시에 나를 더럽히고 있다. 검푸른 색과 파란색과 창백의 남색이 어우러져 있는 이미지가 보인다.

5. 모든 모순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강력한 힘이다. 하지만 그들은 한 줄기의 깔끔한 선을 희망하곤 한다. 단 한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은 드물고 혹여 설명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모순이 될 수 있다.


bleuir라는 단어는 프랑스어로 ‘푸르게 하다, 창백하게 하다.’ 라는 뜻이다. ‘푸르게 하다.’ 라는 문장은 맑은 생동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창백하게 하다.’ 라는 것은 시들어가는 생명력을 가진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들은 나의 여러 시기를 포괄하는 문장이다. 나는 때때로 푸르렀고 창백했고 두 개의 문장 다 버리기도 하였다.
푸르게 흘러가는 것은 몹시 연약하면서도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특히 검푸른 것들이 그렇다. 푸른 것의 가장 깊숙한 색이 검푸른 것이며 폐쇄적이다. 나는 그 시기동안 가이아라는 방 안 사각지대에서 혼자 누워있었으며 때때로 타인을 불러들여 나의 에너지를 분출시키곤 하였다. 그들은 그 에너지를 튕겨내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수용하되 나에게 동화되진 않았다. 나는 다만 그들에게 나의 기억이라는 것을 선물하곤 하였다. 누군가는 그것에 슬퍼하였고 누군가는 그것을 포옹하였고 누군가는 그것에 감당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곤 하였다. 나는 기억을 사랑하였지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덩어리같이 느껴졌다. 그 무거운 덩어리를 빼내는 해결책으로 글을 쓰곤 하였지만 글이라는 것은 오히려 기억을 더 진득하게 기억하게 하였고 악순환은 반복되었다.
그러다 나는 점점 위로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맑은 것들에 관심을 가지며 더 이상 검푸른 색을 쓰지 않곤 하였다. 나를 끈질기게 뭉개는 그것들에 진절머리가 났고 활기찬 힘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 때부터 기억을 끄집어 내 적는 걸 자제하였다. 힘을 빼고 드로잉을 하였다. 오염되었던 감정들이 서서히 아래로 가라앉았고 하늘을 보았다. 푸르렀다. 날카로운 달이 움직였다. 누군가를 병적으로 사랑하는 행위를 멈추었고 개운하게 포옹하였다. 나는 깊지도 얕지도 않았다.
맑은 기운을 다 써버렸을 때 푸름의 한계를 느꼈고 나는 푸름을 버리기 시작하였다. 물감을 사러 갔다. 하지만 여전히 푸른 물감을 고르곤 하였다. 많은 것을 얻었지만 많은 것을 잃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 푸른 방에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고 검푸른 감정도 거의 드나들지 않았다. 사람과의 거리가 가까워져 폐쇄적인 마음을 많이 접었지만 심적 거리가 멀어졌다는 씁쓸함을 느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면 그들은 항상 ‘무슨 일 있니?’라는 첫 문장으로 나를 반기곤 하였는데 그들은 더 이상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힘이 빠졌다. 나는 시든 무기력을 얻었고 그것에 강한 힘을 받았다. 무기력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급속도로 시들어져버린 시간을 느꼈다. 육체는 팽창하였으며 혼은 말라갔다.
흐트러지지 않았던 것들을 무작위로 던져버리고 싶어졌다. 수치심을 이용하고 싶었다. 악한 것들을 즐거운 방향으로 비틀고 싶었다. 상처를 한 번도 받지 않은 것 마냥 상처를 빙빙 돌리고 싶었다. 나는 불쌍하지 않으며 착하지도 않으며 격식을 차리지도 않으며 기억을 다 잊어버리고 다른 곳으로 여행 다니는 방랑자처럼 살고 싶었다. 처음 태어난 순수를 집어 던지고 깊은 바다 속을 헤엄치지 않으며 푸르지 않는,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않는 사람으로, 잃어버릴 것조차 없는 사람으로 망각하고 싶었다. 나는 모든 기억을 잊은 사람마냥 시간을 흘려보냈다. 꿈을 꾸지 않았다. 과거를 복습하지 않고 미래를 놓아버렸다. 내 안에 있는 히셔를 죽였다. 여러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간에서 정신이 나간 사람 마냥 뛰어다니곤 하였다. 그리고 갑자기 사라졌다.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서 누군가를 놀래 킨 뒤 깔깔거리며 경박하게 웃었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친구는 타들어 가는 감정에 불을 붙였고 나는 그것이 거의 다 타기를 기다리며 약간의 형태가 남아있는 감정에 물을 부었다. 망가지고 뭉개진 그것들을 보며 우리는 낄낄거렸다. 즐거웠다. 이기심을 당연시 하였고 수치심은 우리를 이기지 못하였다. 그 시기는 지속되었고 나를 잡고 있었던 기억이라는 것들은 나를 이기지 못하였다.
이러한 나의 시기들 속에는 사랑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연인 간 사랑이라는 좁은 개념이 아니다. 공허해진 것들에 구더기를 꾸역꾸역 넣어버리는 사랑이기도 하였으며 나의 이상을 찾아가는 행위이기도 하였으며 모든 것을 망각하고 여러 품에 안기는 이기심이기도 하였다.
나는 어렸을 때 부모님을 사랑하였고 부모님은 내 곁에 머물지 않았다. 그것은 검푸른 기억이 되어 엄마에 대한 증오로 변하였고 아버지를 사랑하였지만 다가가지 못하였기에 또 다른 아버지를 찾아다녔다. 항상 부모님을 대체할 다른 사랑을 찾았다. 부모님으로 인하여 비어버린 공간을 쓸데없이 지독한 감정으로 채우곤 하였다. 그것이 검푸른 시기였다. 누군가를 병적으로 사랑하였다. 사랑받고 싶었다. 나는 사랑하는 법을 잘 몰랐다. 나 자신을 사랑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다 사랑받고 싶은 것을 조금씩 놓았고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었다. 사랑을 주고 싶었다. 그 사람은 히셔이다. <히셔>라는 영화의 주인공과 닮은 인물이었다. 그는 나의 이상이었고 나는 그 이상을 놓아버리고 싶지 않았다. 곧 떠나버리는 그 사람에게 계산 없이 사랑을 퍼부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떠났다. 나의 히셔라는 ‘이상’이 끝나기 전에 떠나버려 히셔라는 이상을 기억으로 지니고 있었다.
나는 히셔라는 기억을 보이지 않게 품에 안고 다른 사랑을 찾았다. 내가 원하는 사랑은 없었다. 사랑은 원한다고 지닐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걸 체득하였을 때 나는 내 안에 있는 히셔를 죽였다. 푸른 피가 흐르지 않았다. 따뜻한 사람들을 안았다. 내가 차갑기에 우리들의 균형은 잘 맞아 떨어졌다. 그것이 현재이다.
이 전시를 통하여 과거를 걸어 다니고 있는 것 같다. 감정에 잡혀 먹히곤 하였던 내가 감정을 조절하고 있다. 과거라는 여러 칸의 서랍을 뒤지며 읽고, 보고, 다시 집어넣고, 다시 열고, 다시 읽고, 보고, 집어넣고.. 우연찮게 전시 공간에 푸른 방이 만들어져가고 있을 때 나는 과거의 내가 측은해져 울면서 그곳에서 잤다. 슬픈데 행복했다. 내가 항상 찾고 있던 집을 단기간동안 깊숙이 느꼈다.
나는 나라는 짧고도 진행되고 있는 삶 동안 인생의 의미를 찾아다녔고 그것을 찾았을 때 기뻐하면서 슬퍼하고 행복해하면서 우울해하고 고통스러워하며 불안해하고 괴로워하였다. 부정적인 마음속에 희망이라는 나약한 빛을 지니고 있었다. 죽고 싶었고 죽지 못했다.
의미라는 것에 지쳐서 쓰러져 있을 때 살만한 이유가 없다고 느껴졌다. 우울하진 않았다. 살 이유가 없기에 죽고 싶었다. 하지만 죽지 않았다.
나는 살아있다. 아직도 퍼렇고 아직도 푸르고 아직도 창백하다. 의미가 있으며 의미가 없고 삶의 이유가 있으며 이유가 없다. 나는 명석한 동시에 멍청하다. 나는 강한 동시에 나약하고 선한 동시에 악하다. 이러한 것들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내가 인간이라는 한계 때문이다.
나는 인간이라는 한계가 좋다. 인간이라는 한계는 내 삶에 있어서 큰 위로가 된다. 내가 인간이기에 쓸데없고, 인간이기에 의미 있다. 인간이기에 사랑을 하고 인간이기에 사랑을 체념한다. 인간이기에 살고 인간이기에 죽는다. 인간이기에 푸른 그림을 그리고 인간이기에 푸른 그림을 내려놓는다. 앞으로 급속도로 푸르게 변할 것이고 천천히 푸른 것이 식어갈 수도 있다. 그래도 좋다. 나는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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