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by hari

가을인데 봄같다. 하늘에서 뭐가 떨어지길래 보았더니 흰 색 꽃가루 같은 거였다. 눈이 오는 가을

가끔 친구의 블로그를 염탐하곤 하는데 그 아이의 담백한 생각이 좋았다. 쓸쓸하면서도 덤덤한 감정. 우리는 많은 걸 느끼고 생각하고. 그저 잊어버리고.. 내 친구의 생각을 보는데 좋았다. 몰래 보는 거라서 미안한 마음도 있기야 하지만.

전남자친구가 나에 대하여 알려고 했을 때 나는 뚱딴지같은 말을 하곤 했다.

알 수 있음의 없음! 알지마.

무슨 사건이건 생각이건 이유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겠지만 굳이 알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틀 전에 꾸었던 꿈이 정말로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 예전에 알고지냈던 그 사람이 내게 왜 그런말을 했는지 굳이 내가 알아 무엇할까.

처음 책을 접한 건 에세이였는데 읽기 쉽고 감정이입이 잘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 여러 책을 읽게 되었는데 주로 시집이나 인문학이었다. 인문학도 비극, 죽음, 감정에 대한 책을 많이 읽은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서 막혀버렸다. 나는 그때부터 에세이를 싫어했다. 가벼운 감정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그 때부터 나는 전문가인 것 마냥 에세이는 절대 안 읽는다는 다짐을 했고 지금까지 왔다. 남들이 이해하기 힘든 것들, 남들이 이해하기 힘든 책들, 남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과 영화. 내가 지금까지 차곡차곡 쌓아올린 데이터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들을 읽으려 해도 마음이 무거울 것 같다. 사람들과 공존하고 싶다는 생각에 서서히 그들을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무거운 소재들을 보기야 하겠지만 그저 흘러가는 무게가 없는 것들도 바라보고 싶다.

떠난다는 것과 떠나지 않는다는 것 사이에는 가만히 머무는 것도 있다는 걸 알았다. 나와 맞지 않는다고 무심코 타인을 끊어내곤 했는데 그저 가만히 두어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옆에 두든 혹은 저 멀리 두든간에. 사람과 사람사이의 보이지 않는 끈이 있다고 항상 생각해왔는데 그 끈을 내가 생각한다고, 염두한다고 바뀌는 건 없는 것 같다. 그저 내가 보고싶을 때 연락하고 아니면 말고. 나를 자발적으로 학대하고 싶다는 생각이 서서히 사라진다. 나는 그저 삶에 대한 무거운 고찰을 하며 살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그냥 그렇게 흘러가듯. 미래에 대한 계산 없이. 만약 내가 다시는 사랑을 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저 그렇게.

오늘 아침부터 계속 그 아이가 생각이 났다. 암묵적으로 미안한 게 나는 그 아이를 그 아이 자체로 보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심하게. 좋은 감정도 있고 내 옆에 머물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긴 했지만 그 기저에는 그 아이가 떠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또한 크게 작용했다. 그리고 이전에 내가 실수했던 것들. 내가 그 아이에게 실수할까봐, 나 중심적으로 생각하여 그 아이를 가해자로 몰아갈까봐. 그게 가장 겁났다. 내가 그 아이에게 너무 많은 집착을 해버릴까봐. 이전에 만났던 그 아이의 선배를 계속해서 생각했다.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며. 하지만 그게 오히려 화가 되었다. 내 속에서. 나는 그 아이를 그 아이 존재 자체로 보지 않고 과거의 사람들과 비교해갔다. 그리고 그것이 지쳐갈 무렵에 나는 그냥 그 아이를 가만히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굳이 끊어버릴 이유도 없었고 끊어내고 싶지도 않았다. 타인과 비교하며 그 아이 자체를 바라보지 않았어도 나는 이유없이 그 아이를 좋아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오늘 계속 생각이 맴돌았다. 뭐하고 있을까? 그냥 평상시와 똑같이 바쁘게 살고 있겠지. 친구들도 만나고 학교에 다니며. 언젠간 기회가 된다면 안부라도 전해야지. 그 언젠가가 되면 그 아이를 그 아이 존재 자체로,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고 바라보고 싶다.

그냥 그대로 관조하고 싶다. 아픔이 있거나 상처가 있어도 그것이 만약에 나의 현재를 지나쳐 과거가 된다면 그저 영화 한 편을 보는 것 마냥. 트라우마처럼 그것을 취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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