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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도 살아있음에 감사하다.
텅 비어버린 그릇이 되었음에 감사하다. 많은 것들을 담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삶에서 일어나는 것 중 우연인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은 단 한 순간의 연결로 이루어져 있으며, 조바심을 내지 않고, 걱정을 하지 않으면 일은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순간을 믿으면 된다. 삶은 우리가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을 제거하면, 우리가 상상했던 것 보다 더욱 큰 선물을 준다.
일 년 전, 나는 지하철 시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보았다.
“하루가 전 생이다.”
그 말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 행여 앞날이 컴컴한 일이 생겼다 하더라도, 내가 내일 당장 죽는다면, 그리고 오늘 하루가 전 생이라면 오늘 하루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다. 그 마음을 준 삶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우리는 무엇을 더욱 소유해야 한다고, 어떠한 것을 크게 이루고 성공해야 한다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에게 원하는 것을 묻기 전에, 사람들이 따라가는 발걸음에 맞추어 살기가 쉽다. 미래를 기대하느라 현재를 살지 못한다.
꿈이라는 것은 좋은 것이다. 자기 스스로가 행하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꿈만을 좇다가, 현재라는 시간을 낭비하고 현재를 미래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나는 어느 순간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한 나 자신을 발견했고, 그것을 깨닫자 그 행위를 멈추었다. 더 천천히 걸었고 더 현재라는 시간을 음미했다. 자연스럽게 행복했다. 행복이라는 것은 평화 위에 올려 있는 손수건과도 같다. 그 펄럭이는 움직임을 보며 자연스레 우리 앞에 왔다가 사라졌다, 왔다를 반복하는 행위와도 비슷한 것이다.
일을 그만두고,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무엇을 하고 지낼까 살짝 걱정도 되긴 하였지만, 매일매일 마지막 날인 것처럼 자연에서 친구들과 놀고, 그림을 그리고 살고 있다. 실은 이러한 방식의 ‘놀이’는 다른 사람들이 보았을 때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논다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개념으로 보이기가 쉽다. 하지만 놀이라는 것은 사람에 있어 활력을 띠게 만들고 더욱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해준다. 우리가 어렸을 때 자연스럽게 놀이를 배운 것, 그리고 그 때 당시의 우리의 활력을 상상해 보라. 그 때에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으며 태어난 순수였다.
오늘 또한 나는 놀이를 했다. 등산을 하며 사진을 찍었고, 아침도 못 먹은 채 하산을 하여 분식집에 가서 라면과 김밥, 떡볶이를 먹었다. 무엇을 먹었는지, 무엇을 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했는지’가 제일 중요하다. 아무리 고급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먹는다 할지라도 그 상황과 분위기가 별로라면 그 스테이크는 아무리 비싼들 맛있는 음식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오늘 조촐한 분식을 먹으며 행복감을 느꼈다. 나와 함께 등산을 한 사진작가님과 서로 놀래가며 얼굴을 마주보며 허겁지겁 떡볶이를 먹는 우리의 모습 사이에서 행복이 피어나왔다. 누군가와 함께 행복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지금 이 순간 온전히 살아있음에, 그리고 가끔 부정적인 감정이 나를 괴롭혀서 엉엉 우는 날을 지나치고 또 다시 건강한 나를 되찾았을 때, 삶이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얼마나 조건 없는 사랑을 주는지, 우리의 소망을 이루어주기 위하여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깨달았을 때 저절로 감사하게 된다. 감사하지 못하는 마음은 욕망 위에서 피어오른다. 욕망을 제거하고 순수한 평화를 느꼈을 때, 존재 자체로도 신비한 세상이 펼쳐진다.
오늘은 하루라는 도화지 위에 꽃분홍색과 민트색의 그림을 그렸다. 무척 향기로웠고, ‘화’라는 부정적인 감정이 나를 지나쳤지만, 그것이 화사한 색상을 더하는 요소로 작용했음에 감사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있음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