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31 일기
결국 잘 만들고 싶었던 지금까지 내 장점들을 담은 포트폴리오 겸 잡지는 다 만들지 못했다.
브런치를 만들었던 이유가 이건대 참 웃기지. 정말 실패했다. 인정!
조금 안 예뻐도 얼기설기라도 완성해 볼걸 아쉬움은 있다.
패인은 게으른 완벽주의 성향 때문이다.
사업을 접은 후 업으로 삼으려 했던 마케터 직무도 결국 포기했다. 마케터 포트폴리오도 열심히 만들었고 100개 넘는 회사에 지원했고 면접도 봤다. 몇 개월간 몇 개의 회사를 짤막하게 합격하고 나오고를 반복했다.
주변에서는 왜 진득하게 붙어있지를 못하냐며 타박도 들었다. 근데 또 어떻게 계속 회사를 들어가는 것도 참 재주다라는 칭찬도 들었다(?) 점점점 회사를 거칠 수록 연봉은 낮아졌다. 나이나 공백기 탓이 있는지 합격률도 점점 낮아져 갔다. 조급감에 아무 회사나 막 들어가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걸 겪고 나니 깨달았다. 나는 마케팅 쪽에 크나큰 관심이 없으며 썩 적성이 있는 것도 아니란 것을. 나 정도 스펙이면 나쁘지 않은데 왜 이 정도 급여를 받지를 못하지?라는 생각이 허상이라는 것을. 그냥 내가 그 정도 돈을 받을 만한 인재가 아니었던 거다. 일을 해보니 알았다. 난 내가 원하는 연봉받아도 1인분 못한다. 하물며 그 압박감도 못 견딘다. 그냥.. 능력이 거기까지 안된다!
그리고 또 느꼈다. 나는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추진력도 좋지만 과도하게 좋은 사람 훌륭한 노동자가 되려고 애쓰고 과하게 책임감을 느껴 어떤 일에 압도되는 힘에 기를 못 편다는 사실을.
다들 이 정도 과업은 평범하다고 하는데 다 힘들다고 하는데 나는 왜 그것마저도 너무 벅차고 허덕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일과 커리어에 대한 환상이 너무 심했나? 나보다 어린 친구들도 다 버티는데... 모든 결론을 나약함으로만 요약하니 더 힘들었다. 취업 우울증 /중소기업 퇴사기준 /쉬고 있는 mz세대 이런 거나 검색해보고 있는 내가 한심했다.
게다가 나는 은근히 나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면이 있었다.
근데 그런 멋진 모습을 유지할 수 없게 되자 삶을 포기하고 싶었다.
죽고 싶다는 느낌보다는
대학 시절에는 창업시절에는 여러모로 빛났던 거 같은데
게임처럼 다시 리셋하고 싶었다. 이건 아니야 하면서.
누군가가 산신령처럼 나타나
삶은 애초에 좀 덕지덕지 붙은 맛이 있어야지라고
너털 하게 말해주기를 바랐다.
내 나이 또래에 아이들이 연애도 결혼도 승진도 포기하게 되는 이유는
한국 사회는 평범함을 결핍이 없는 완벽한 상태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건 결코 평범함이 아니다. 말 그대로 완벽함에 가깝지.
완벽하지 못할 바에는 그냥 포기하겠다는 당연한 결론에 도달한 거다.
25살에 30살에 이 정도 돈은 있어야 하고
결혼도 해야 하고 애도 있어야 하고 아파트도 있어야 하고
그게 또 영끌은 아니어야 하고
월세를 내고 생활비를 내고 나서도 이 정도는 저축해야 하고
투자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하고
국민연금이 고갈될 것이니 노후 대비도 알아서 해야 하고
경기가 좋지 않아도 최소 얼마 이상의 직장을 들어가야 하고
중소기업은 좇소 기업이니 들어가면 안 되고
여러 가지 n잡을 가져 갓생을 살거나
근로를 하면서도 아침이나 저녁시간을 쪼개 자기 계발을 놓치지 않아야 하고
중소기업에서 경력을 쌓아 '프리랜서'가 되거나 '창업'을 하거나 '대기업'으로 승격하거나
그러면서 해외여행도 좀 가줘야 하고 친구들하고도 잘 지내고 효도도 하고 패션센스도 놓치지 않는
어휴 벅차다. 이 정도 조건이면 금수저 아닌가?
이걸 목표로 두니 뭘 할 수가 없는 거다.
동네 뒷산 오르는 게 전부인데 에베레스트를 올라야 하니
정보가 많은 게 오히려 저주처럼 느껴졌다. 모르면 좋을 텐데.
연일 유튜브에서는 경제적 자유를 이뤄야 한다고 말한다
애초에 돈을 많이 가지면 경제적 자유일까?
그럼 그 돈은 얼마일까? 10억 100억?
100억을 가져서 경제적 자유를 가졌다고 가정하면
10년 뒤에 그 100억의 가치가 1억이 된다고 했을 때
그럼 그 사람은 다시 자유를 박탈당한 건가?
나 스스로가 자유를 이룩한 게 아니라
사회적 가치 조정으로 인해
박탈당할 수 있는 게 자유일까?
원하는 소비를 하지 못하고 원치 않는 노동을 해야 하니까?
그럼 또 이 경제적 자유라는 목표점을 두고 다시 힘차게 달려 나가면
해결이 되는 문제인가?
내게는 자유를 만드는 게 아니라 1000명 대회에서 10등 안에 들려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처럼 보였다.
그건 그냥 성실히 요령껏 공부해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 거지 '자유'를 가졌다고 할 수 있나?
그러다가 한 유튜브를 보게 되었다.
그 유튜브에서는 평범함은 사실 보통의 사람들이
대다수 가지고 있는 조건임으로
우리가 구리다고 말하는 조건들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속한다고
한국사회는 서로의 소비력에 대한 정보의 밀도가 높아서 스탠더드에 대한 기준이 너무 높다고
자유를 만드는 것은 어떤 물리적인 조건들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에 대한 수용감이며
돈이 필요 없고 사회생활을 안 해도 된다는 게 아니라
우린 수저 게임에서 은퇴를 해서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면 된다고
자기 합리화라고 루저라고 하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내 갈길 가면 되지 않겠냐고
만약 내가 특별한 줄 알았는데 평범한 사람이라면
아 나 특별한 사람인 줄 알고 열심히 노력해서 너무 벅찼는데
평범한 사람이면 오히려 좋다 이제 덜 노력해도 돼서 편하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겠냐고
그 영상을 보고 나서 꽉 막혔던 가슴의 응어리가 풀리고 뭔가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패배의식에 합리화한 게 아니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구나
다행이다. 저런 식의 삶도 잘 굴러가고 있어서.
저런 식의 생각들이 많아져서 평범함에 대한 역치가 낮아진다면 정말 좋겠다
숨 좀 쉬게. 결국 내가 시류를 따라가려면 나는 그 능력치에 맞지 않아 너무 힘들겠다.
나에게는 한 가지 업과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 매달려야 하는 사실이 더 압박되고 불안감으로 다가왔으며
폐업 경험이 있음으로 한 가지 사업으로 큰돈을 벌지 못할 경우에는
여러 가지 직업으로 수익을 분산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정적으로 내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비용을 추산하고 거기서 안정성을 만들어했다.
창업-투자-취준을 하면서 모아둔 돈은 모두 털어서 썼으니 말 그대로 개털이었다.
이제는 마케팅이 아닌 말 그대로 아무 곳이나 일을 할 수 있으면 다 지원했다.
월세가 없어 똥줄이 탔다. 그 와중에 돈 나갈 곳은 야무지게 쌓였다.
1년여간 직업탐색을 하면서 돈을 다 썼으니 이제 더 이상 뭔갈 따지는 건 사치스럽다고 느꼈다.
그래도 창업을 준비하려면 너무 품을 많이 쓰는 일보다는 단순일이 낫겠지?
라는 알량한 고민을 하는 중에 붙은 몇 곳을 보니 급여가 너무너무 짰다.
입에 풀칠이나 하고 살겠네 하며 자조하고 어쩔 수 없지 일을 안 하면 0원이야 하며 출근하려는 찰나
취준을 하면서 쭉 일했던 주말 알바 사장님이
내 사정을 들으시더니
자기 밑에서 사업을 배워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주셨다.
부담이 되면 1년 일하고 다른 일을 찾아봐도 좋다고.
빈말을 하실 분은 아니라 나는 고민하다가 좋은 기회가 될 거 같아
내일부터 정규 파트로 나가기로 했다.
몸 쓰는 일을 해보지 않아 너무 걱정되지만
이전에 회사에 취직했을 땐 갸우뚱했던 마음이
지금은 어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사무직 취직에 완전히 실패하고
경로를 재탐색하는 단계에 들어갔다.
물론 또 너무 힘들다고 중간에 나와 어중간한 일들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뭘 하냐는 것보다 내가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어렴풋한 생각이 든다.
포기를 포기하고 쭉 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한 달만 버티자 1년만 버티자 라는 생각으로
임하려고 한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