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섯맘 Jun 18. 2024

콩팥 큰 여자

우리 부부는 병원에서 예약해 준 일정에 따라 신장 기증 검사를 실시했다.

다행히 혈액 검사(교차반응 검사)가 통과됐다. 그 이후로  CT,24시간 소변 검사 등 여러 검사를 진행했다.

모든 검사를 진행하는데 한 달여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직장을  다니며 검사를 진행하다 보니 일정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정신과 진료만을 앞두고 있었다.

신장 기증 검사를 하는데 정신과에서 진료를 받는다는 것이 의아했지만, 이 검사만 마치면 결과를 들을 수 있는 날이  다가 오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 나 스스로를 다독이며 힘을 내보았다.



1월 어느 날, 처음으로 정신과에 문을 두드렸다.

기증자와 수혜자와 관계, 그리고 기타 여러 질문들을 하셨다. 그리고 신장 기증 후에는 정신과적인 문제가 일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음 수 있음을 안내해 주었다. 생각지도 못한 안내에 조금은 어리둥절했다.

'신장 기증하는데 왜 그런 증상들이 생길까...'

물론 모든 기증자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 기증자들에겐 그런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기억은 흐릿해졌지만, 또렷이 남아 있는 한 장면이 떠올랐다.

"아내분이 남편분에게 신장을 기증하시는 거 맞나요?"

"네, 남편에게 신장을 선물로 주려고요."

의사 선생님이 자판을 두드리다 잠시 멈추고 내 얼굴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리곤 다시 자판을 두들긴다.

'내 답변이 이상했나?' 고개를 갸우뚱할 찰나...

"본인이 원치 않았는데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기증하시는 분도 있어서요."

'그렇구나. 어떤 누구는 그런 상황을 마주할 수 있겠다.'

신장을  기증한다는 것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다.

하지만  이 방법만이 말기 신부전 환자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기에  투병하는 환자들에게 많은 기회가 열리기를 소망해 본다.

'



모든 검사를 마치고 나니 마음이 후련해졌다.

검사를 하면 할수록  이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더욱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마음 같아선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서 검사 결과를 듣고 싶지만, 병원 시간표는 더디 흘러만 갔다.

나는 흘러가는 시간에 마음을 내려놓았다.



드디어 고대하던 결과가 나오는 날이다.

여전히 병원은 진료받는 환자가 않았고 진료 시간은 지연 됐다.

우리 부부는 긴장된 마음으로 진료실에 들어갈 순서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기다렸다.

이제  진료실에 들어갈 차례가 되었다.

"선생님~! 결과는 어떻게 나왔나요?"

"잠시만요~"

선생님은 한참을 컴퓨터를 들여다보셨다. 얼마만큼의 정적이 흘렀을까?

초초한 마음으로 우리 부부는 선생님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기증 가능합니다.

남편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속으로 얼마나 감사함을 외쳤는지 모르겠다.

"000님의 신장이 몸에 비해  크네요!"

'와~! 내 신장이 크다고?'  

남편 체격은 나보다 훨씬 컸고, 신장 크기를 따지자면  남편에게 기증하기에 좋은 조건은 아니었다.

그런데 신장 기증이 가능하다는 소식과 더불어 나의 신장 크기가 크다는 건 기적이었다.

어쩜 우리 부부는 이날을 위해 만났었던 것일까???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깃털처럼 가벼웠다. 소원하던 일이 이루어진 역사적인 순간이다.


오늘 진료 결과를 궁금해야 할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기도해 주어서 감사하다고...

신장 기증이 가능하다다고...

심지어 내 신장도 크다고...

휴우~

이제 한고비는 넘겼다.

'이제 다음 고비는 이식 수술, 그 이후가 더 중요하지.'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갑자기 친구의 호탕한 웃음소리,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축하한다! 친구야~! 너 콩팥 큰 여자구나.


고마워~! 나 콩팥 큰 여자야! 하하하!





이전 04화 신장 기증 검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