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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iin Mar 24. 2024

눈물이 흐르기 전에
우리는 마트로 가자.

낯선 땅에 떨어진 당신의 은신처는 어디인가요?

정신없이 짐을 푸는 순간의 분주함은 차라리 행운이다. 슈트케이스에 남아 있는 품목과 서랍에 들어앉은 물건 사이를 바삐 오가는 머릿속에는 잡념이 끼어들 틈이 없다. 가방 속 모든 것을 꺼내어 대충 자리를 잡아주고 보니 공허함이 밀려온다. 눈을 떠 보니 사방이 하얀, 출구도 없는 방에 떨어져 버린 그런 기분. 누가 와서 나를 꺼내주기를 기다려 보는 일도, 소리치고 두드려 보는 것도 의미 없는 무력함. 당장 방문을 박차고 나가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고 껄껄 웃을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고립감. 나는 안락한 집과 모국의 편리를 모조리 집어던지고, 스스로 이 작은 골방 안에 나를 밀어 넣었다. 자유롭고자 욕심을 내었는데 내가 지금 손에 쥔 것은 베개를 적시던 날의 불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연이란 정말 위대한 것이, 최악의 순간에는 늘 벗어날 신호를 반드시 준다. 이를테면 느닷없이 찾아드는 요의(尿意), 쏜살같은 재채기, 어처구니없는 허기 같은 것들 말이다. 마지막 짐가방을 벽장에 넣고 보니 속이 쓰려왔다. 갖은 청승을 다 떨어도 배는 고프구나.


9월 초 당시의 사진 아님.

시계를 본다. 9시 36분. '이 나라는 이 시간에도 날이 어슴푸레하네.' 영국의 여름은 낮이 아주 아주 아주 길다. 한국의 시간 감각에 의지해 짐정리를 하다 보니 어느새 한 밤 중이 되어버렸다. 후다닥 로비로 내려가 직원에게 근처에 슈퍼마켓이 있는지 물었다. (우버기사는 곧이곧대로 구글지도의 파란 안내선을 따라 나를 이곳에 내려두었다. 그 길이 공사판 한가운데를 가로질렀기 때문에 나는 거처를 잡아도 한참 잘못된 곳에 잡았다 느꼈었다.)


"이 길 따라 쭉 내려가면 '웨이트로즈'가 있고 같은 길로 올라가면 '테스코'가 있어. 웨이트로즈는 곧 문 닫을 시간이니까 서두르는 게 좋을 거야."


'웨이트로즈'가 되었든 '테스코'가 되었든 해리포터 시리즈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내가 영국 슈퍼마켓 브랜드를 알 턱이 없었다. 더 가까운 곳을 묻고는 허둥지둥 길을 따라 내려갔다. 기능에 충실한 마트 외관일까, 굶어 죽지 않으려는 인간의 생존본능일까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도 식료품점은 기가 막히게 찾아낸다. 형광등 불빛을 쨍하게 밝힌 커다란 벽돌 건물이 보였다. 


"오, 마트다!" 


헐레벌떡 달려 자동문 안으로 몸을 던졌다. 손잡이가 달린 장바구니, 카트, 앞쪽에 진열된 야채코너, 제일 안쪽에는 정육코너. 우리 동네 마트를 한 삽에 퍼다가 사뿐히 내려놓은 것 같은 익숙한 공기가 마음에 든다. 잔뜩 움츠린 어깨가 말랑하게 가라앉았다. 


분주한 손길로 늦은 저녁거리를, 내일 먹을 아침을, 출출한 속을 달랠 야식을 골라 카트에 담는 사람들이 보인다. '먹고사는 거 다 똑같네.' 도처에 일상에 치이고도 먹고살 궁리를 하는 인간들이 있다. 나와 별반 다를 바 없이 배가 고프면 마트를 찾는 이들이 사는 나라가 영국이다. 그게 그렇게도 위안이었다. 


익숙한 브랜드 제품들과 내 모국의 맛을 흉내 낸 음식들이 눈에 들어왔다. 굶어 죽진 않겠구나. 앙 다문 입술 사이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끝을 모르고 떨어져 내리는 것만 같던  불안과 걱정의 바닥이 결국 굶어 죽는 두려움이었던 건가. 결국 죽는 게 무서운 건가. 그들도 나도 먹고 싶은 것을 고르고, 값을 치르고, 배를 채운다. 이 간단한 3단계의 시스템이 내가 처한 상황을 간단하고 명료하게 정리했다.


내가 어디에 있건 우리는 결국 자본주의문화권에 거주하는 소비자라는 족속들이다. 사고파는 행태는 어디에서나 똑같다. 필요를 충족시킬 물건을 고르고, 값을 지불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명확한 프로세스는 지구별 어디에서나 유효한 진리이다. 교환의 법칙만 안다면 나는 어디에서든 살아남을 수 있다. 참 서늘하기만 한 세상의 질서가 위로가 되었다. 한국을 떠나기 직전까지만 해도 내 발목을 찰거머리처럼 붙들고 늘어지던 등가교환이라는 실은 불공평하기만 한 그 원칙이 길을 잃은 것만 같은 내게 모종의 힘을 준다. 적어도 콜라 한 캔 사들고 나올 만큼의 적은 돈이 어깨 펴고 슈퍼마켓을 활보할 힘인 것이다.


그날 밤 나는 무엇을 사들고 나의 하얀 방으로 돌아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무엇이 되었든 텅 빈 속을 채웠다. 나는 이 방 안에 무사하다.


그 후로, 그리고 지금도 우울해지려는 찰나 나는 작은 방문을 박차고 마트로 간다. 부족하거나 남루한 구석 없이, 보기 좋게 정돈된 선반 사이를 누빈다. 아슬아슬한 삶의 취약한 구석을 보지 않아도 되는 곳. 굶어 죽지 않는다. 값을 지불하고 원하는 것을 얻는다. 욕심을 접어두고 필요에 만족한다. 내 작은 방 밖의 사람들도 나와 같은 행위를 하며 오늘 치의 삶을 번다. 결국 너도 나도 살아 있으니 값을 치르고 또 살아 내려고 억척스럽게 버틴다. 자, 그럼 맛있게 먹고 씩씩하게 버티자.


내일의 일은 내일의 나에게 맡기고 부른 배를 흐뭇하게 두드린다. 내려앉는 눈꺼풀에 저항 없이 항복한다. 나는 이곳에서 1년만 살아낼 것이다.


슈퍼마켓은 사실 평등한 공간이 아니다. 진열된 물건들은 가격대 별로 진열된 경우가 태반이고 품명에 "오가닉, " "방목" 등이 붙으면 선뜻 손이 가기엔 망설이게 되는 가격인 경우도 다반사다. 가격정찰제를 시행하는 한국과 달리 영국에서는 마트가 입점한 지역, 마트의 등급에 따라 같은 상품도 다른 값을 받는다. 신분제란 이미 오래전에 철폐된, 그런데도 집집마다 족보 하나씩 가지고 있는 나라에서 온 나는 마트가 신분계급을 반영하는 이 나라가 영 낯설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나는 웨이트 로즈에서 쇼핑했고, 지금 나는 테스코에 간다. 종종 리들이나 알디가 눈에 들어온다면 절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그리고 평생 리들과 알디만 가는 삶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어 전전긍긍한다. 


이곳에서 밥벌이를 하고 산다는 것은 이 나라의 촘촘한 계급체계에 원하든 원하지 않는 합류한다는 의미이다. 나는 자칫하면 지금 손에 넣은 것들도 잃을까 두렵고 이보다 나은 삶은 없을 거라는 막막함에 쉽게 우울해진다. 하나 여전히 슈퍼마켓에서 느끼는 살아있다는 감각, 안전하다는 감각이 나를 위로한다. 그 온갖 삶이 뒤섞인 잡탕의 공간에서 나도 그들 중 하나로 존재하는 한 나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살아있다고, 삶의 이 편에 있다는 안도를 주는 당신의 공간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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