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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여름 Jan 20. 2022

파리로 떠나는 이유



장학금을 받았지만 도무지 어디에 써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물질에 쓰는 것은 언제나 잠깐이면 그만. 사람을 만나는  쓰기에는 그것도 시시했다. 너무 똑같잖아.  그저 그런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은 너무 힘들었다. 무료한 시간을 의미있게 때우는 일에는 여행만큼 좋은  없지. 그래서 그냥 파리행 티켓을 끊었다. 루브르가 가까운 1존에 집을 잡았다. 그게 다였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그냥, 파리는 예쁘니까. 낭만과 예술의 도시니까. 박물관을 어슬렁 거리고 카페에만 있어도 하루가 끝나있을 도시니까. 그래서 파리행을 택했다.




이번 생은 부자가 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너무 쓸모없고 낡은 것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가격이 오르는 필름과 이제는 절판되어 구하기도 힘들어진 책, 본다고 아무도 칭찬해주지 않는 독립 영화, 만든지 50년은 지난 옛날 영화까지.  아무튼 나는 그다지 실용적인 것들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나의 사랑은 앞으로도 내 삶에서 수없이 갈등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친구를 사귈 때도 맛있는 걸 많이 사줄 수 있는 친구보다는 편지를 잘 쓰는 친구가 좋고, 돈이 많은 친구보다는 그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친구가 좋다. 그렇게 해서 자극을 받고, 나도 그 친구가 읽는 책을 따라 읽고, 무엇보다 즐거운 대화가 될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 아무튼 난 그렇게 쓸모없는 것들을 사랑한다.



파리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파리를 상징하는 에펠탑 자체가 아무 쓸모 없는 철제탑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쓸모없는 것들이 사람들의 삶에 많은 것을 차지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과도하게 쓸모와 자본을 촉구하는 여느 나라와는 다르게 파리에서는 그렇게 쓸모없는 것들이 극찬을 받고 각광받는다. 처음에 에펠이 건립될때는 많은 예술가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왜 저런 쓸모없고 흉측한 철제탑을 건립하는 것인지 이해를 받지 못했다. 그 중에서도 유일하게 에펠탑 건립에 찬성한 것은 롤랑바르트였다.  에펠탑은 롤랑바르트가 극찬한 순수한 의미의 시니피앙이다. 쓸모없음의 쓸모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파리가 낭만의 도시임을 상징하는 도구. 쓸모만 따지는 것이 당연해진 사회에서 쓸모를 따지지 않아도 빛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에펠탑을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작은 도시.


그래서 나는 파리가 좋다. 돈 없는 예술가들이 모여 길거리에서 그림을 그렸던 도시, 그리고 그게 함부로 우습다고 평가받지 않았던 도시, 자동차가 있어도 굳이 그것을 타지 않고 걷고 싶게 만드는, 아름다운 센강을 따르는 거리. 여느 도시와 비교했을 때 가장 쓸모를 따지지 않는 도시라서. 나는 가진 옷이 몇 벌 밖에 없더라도 확고한 취향을 가진 사람을 사랑했고, 본다고 해서 아무도 칭찬해주지 않는 독립 영화를 사랑했고, 전시장에 하루종일 머물러 뚫어져라 작품을 바라보는 일을 사랑했다. 난 그렇게 느리고 독특한 나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존중받을 수 있는 파리의 분위기에 끌렸다.



나는 무언가를 서두르게 해치우려고 하는 행위 자체가 실은 그 사물에 진정한 애정이 없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진정으로 애정하는 것들은 최대한 내 곁에 오래 머무르기를 원하는게 우리의 마음아닌가. 마치 사랑하는 사람과의 하루가 영원하길 바라듯,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조금 더 천천히, 오래도록 음미하며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나는 느린 것이 좋다. 솔직히 말해 모든 사회가 전부 느렸으면 좋겠다. 그 누구도 빠르게 배달 하다가 다치는 일이 없고, 제대로 된 안전 설비 없이 서두르게 공사를 하다가 목숨을 잃는 일이 없고, 빠르게 해결하고 빠르게 이뤄내기를 독촉 받지 않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자본 주의에서는 우습다고 비웃음 당할지도 모르는 생각들이다. 겨우 톱니바퀴 속 나사인 주제에 이런 앙큼한 일탈을 꿈꾸다니! 그렇다. 난 결국 그렇게 일탈을 위해 태어난 고장난 나사가 분명하다.


아무튼 파리의 공기에는 파리진이 들어있다고 하지.

어떤 방식으로도 정의할 수 없는 특수한 성분인 파리진은 네스토크 로크플랑이 발명한 문학 용어다. 니코틴처럼 중독성이 있지만 몸을 아프게 만들지는 않는다.  파리진은 파리의 풍경을 대상으로 그림을 그리고 파리에 대해 글을 쓰도록 자극한다. 위대한 도시 파리. 그 무엇보다도 다채로움에서 비교할 자 없다. 파리를 부드럽게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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