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일이다.
우리 조상님들은 이름 앞에 호를 많이 붙였다고 하는데(도올 김용옥, 연암 박지원 같은), 요즘에는 그런 경우는 없지만, 영어 이름을 갖는다거나(난 제이크였다.) 게임을 좋아한다면 좋은 아이디를 만들기 위해 꽤 오랜 시간 노력한다.
그만큼 명명한다는 것은 재밌고, 의미 있으며, 창조적인 순간이다.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과는 또 느낌이 다르다. 사회 구조적으로 주어진 직업이나 정체성과도 다르고, 법명, 세례명, MBTI는 그래도 좀 더 적합하거나 창조적 규정에 가까워 보이지만, 그것과도 다른 위치다. 완전히 새로운 이름에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라는, 그리고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 더 가까울 것이라는 어떤 종류의 희망이 있다.
창세기에서도 하나님은 아담에게 '각 생물들의 이름을 짓게'했다. 참 인간 중심적이고 오만하다면 오만한 것이지만, 그만큼 이름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유한하고 부족한 한 사람이 잠시나마 창조주의 지위를 빌려올 수 있으니 말이다.(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소설이나 시를 쓸 때도 제목에 신경을 좀 쓸 걸 그랬다.)
새로운 행성을 발견한 천문학자는 그 행성에 자기가 원하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게놈은 유전자와 염색체의 합성어이고, 나노는 난쟁이를 뜻하는 그리스어 나노스에서 차용한 이름이라고 한다. 우리 나라 최초의 복제 송아지에게는 젊게 오래 살라는 의미로 '영롱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한 교수님은 식물의 장수에 관여하는 돌연변이 유전자에 'oresara(오래 살아)'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다.
예전부터 생각했던 것이지만, 작가들은 이름들이 참 멋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 헤밍웨이, 스콧 피츠 제럴드, 러브크래프트, 이외수, 한강 등등- 원래 이름이 개성이 없으면 필명을 만들기도 한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무명시절부터 세계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좋아할 만한 이름으로 '바나나'를 선택했다. 이런 노력조차도 작가의 자질이 아닐까?
큐레이팅이라는 닉네임을 꽤 오랫동안 사용했었다. 그런데 너무 대명사스러운 느낌도 있고 입에 감기지가 않아서 닉네임 추천을 받았는데, 성이 허 씨다 보니 거기에 맞춰서 참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나왔다. 허슬, 허니버터칩, 허니, 허상, 허니츄러스, 허남바, 허무 등... 그러다 SF뽕이 요즘 차오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블로그를 열심히 하기도 하니까 '허블'이라는 닉네임을 ID나 필명 등에 써보기로 헀다. 아마 SF 소설 같은 걸 써서 출간하면 필명으로 쓰지 않을까 싶다.
글이 좀 길어졌는데, 다시 종교로 돌아가서 하나님이 말로 세상을 만들었다니 나도 말의 힘을 한번 믿어봐야지, 우리 은하를 넘어 새로운 은하를 발견한 허블처럼 나도 앞으로 새로운 것들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