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Quadrophenia

by 콰드로페니아

인간은 먹지 않고 살 수 없다. 음식을 통해 꾸준히 영양분을 섭취해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먹는가 라는 문제는 인간에게 무척 중요한 문제이다. 예를 들어, 살을 빼야 하는 사람이라면 가급적 기름진 음식을 피해야 하고, 지병이 있는 사람은 의사가 권고한 식단을 잘 지켜야 한다. 건강한 행복을 중시하며 좋은 음식을 먹기를 추구하던 ‘웰빙(well-being)’ 열풍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이와 달리 영양 균형이 무너져 있는 음식은, 건강을 기준으로 둘 때, ‘나쁜’ 음식에 속한다. 건강에 나쁜 음식을 먹는 일은 죄가 아니다. 하지만 그리 권장되는 일 역시 아니다.


음식은 생존, 건강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문화를 형성하고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삼시 세 끼를 챙겨 먹는 일 그 이상의 의미를 생각한다. 때론 부모님과 오붓하게 고깃집에 가고 싶기도 하고, 특별한 날에는 사랑하는 이와 레스토랑에서 파스타를 먹고 싶기도 하다. 여기서 파스타, 고기는 단순한 영양 섭취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빚어지는 의미를 담는다. 음식이 만드는 문화는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전통, 종교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삶 속에 스며들었다. 설에 먹는 떡국처럼 특정한 상황에서 먹기를 권장하는 음식이 있는가 하면, 시험 당일 날 미역국을 먹지 않는다거나, 종교적 이유로 쇠고기를 먹지 않는 경우도 존재한다.


음식에 담긴 의미는 사회적 배경에만 있지 않다.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기억과 경험이 있다. 그 경험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음식을 좋아하게 하기도, 싫어하게 하기도 한다. 지금 우리에게 바나나는 마트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음식이다. 하지만 부모님 세대는 그렇지 않았다. 바나나는 중요한 날에나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고, 성인이 되어 서울에 와서야 처음 먹어본 음식이기도 했다. 바나나가 일상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은 지 꽤나 시간이 흘러서 이제 바나나가 귀하다 말하는 이는 없다. 그럼에도 지나온 시간과 공간이 다른 만큼 우리와 부모님 세대가 바나나를 통해 느끼는 감정이나 떠오르는 이미지는 다를 가능성이 크다. 위의 바나나 예시처럼 세대 간의 차이가 있는가 하면 각 개인마다 느끼는 작은 차이 역시 존재한다. 이런 차이는 음식에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영양학적 이유, 문화적 이유, 개인적 이유, 그리고 그 외의 여러 이유들. 여러 생각들이 음식을 둘러싸고 있다. 그러한 생각은 사람들 사이에서 많은 이야기를 만든다. 의사는 건강에 좋은 식단에 대해 이야기하고, 비평가는 맛있는 음식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소설가는 자신이 끓인 라면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는 대부분 좋은 음식에 집중한다. 건강이든, 맛이든, 사회든, 나 자신에게든 인상 깊었고 좋았던 음식이 주된 주제이다.


반면 나쁜 음식에 대한 물음은 표면적인 부분에서 그친다. 우리는 그 음식은 왜 나쁘며, 또 왜 먹지 말아야 하는지 물을 뿐이었다. 우리는 그 질문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놓쳤을 뿐 나쁜 음식은 더 깊고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개인적인 경험부터 사회적 문제, 문화적 기피 대상에 이르기까지, 나쁜 음식들은 문화 전반에서 자신의 이유를 찾아왔다. ‘나쁜 음식’이라는 주제 위에서 각자의 이유가 공존한다. 우리는 그 사이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쿼드로페니아의 시선으로 풀어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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