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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Vol 9 Os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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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콰드로페니아 Sep 08. 2022

한국인이신가요?

서양인은 한, 중, 일, 세 나라의 사람을 구분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그들이 보기에 세 나라 사람은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모양이다.  그래서 한국인을 중국인이나 일본인이라고 물어보는 일은 흔하다. 상황만 놓고 보면 별 일 아닌 듯싶지만 세 나라의 관계는 참으로 묘해서 그런 질문을 들었을 때 찝찝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그걸 구별하지 못하느냐며 하소연하기도 한다.


세 나라가 서로를 구별하는 방식은 매우 미묘하다. 가령 일본인은 하관을 보고, 중국인은 특유의 분위기를 보고 알아챈다는 식이다. 이  차이는 세 나라가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가까운 나라이기에 서로의 문화에 익숙하고 그 나라의  특징을 조금이나마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멀리 위치한 영국, 프랑스, 독일 사람을 잘 구별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그 차이는 무척 미묘해서 알아채기 힘들 때가 많고 우리가 생각하는 구별 방식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도 많다. 나는 말소리를 듣기 전까지 겉모습만으로 중국인인지 일본인인지 잘 구별하지 못하는 편이다. 그래서 정말 세 나라의 사람들이 구별될 수 있는 차이가 있긴 한지 의문스러웠다.


이상하게도 일본에 가서는 그 차이를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그 기준은 옷차림이었다. 우선 한국인은 무척 세련된 옷차림을 자랑했다. 누가 봐도 멀끔하고 멋있다면 그 사람은 한국인일 가능성이 높았다. 한국 사람은 옷차림에 관심이 많다는 평을 들어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연령대가 높다면 (우리가 흔히 아는 대로) 등산복 같은 아주 실용적인 복장을 입고 있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본인의 패션은 개성이 넘치고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스타일이다. 나도 일본에 가면 그런 사람을 여럿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아쉽게도 그런 사람은 생각보다 보기 힘들었다. 오히려 지극히 평범하고 편한 복장을 입었거나 양복을 깔끔하게 입은 사람이 더 많았다. 우리는 패션 잡지나 인터넷에서 나온 사진에서 본 모습은 극히 일부였다. 우리나라를 돌이켜 봐도 개성 넘치는 옷차림은  주요 번화가에서나 볼 수 있으니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중국인은 묘하게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옷차림은 평범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깔끔하고 멋드러지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미묘하게 과한  지점이 꼭 하나씩 있었다. 청바지가 너무 많이 찢어져 있거나 티셔츠 뒷면에 화려한 무늬가 있는 식이었다. ‘좀 과하지 않나?’ 생각이 들면 여지 없이 중국인이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중국인은 빨강을 길한 색으로 여기는데 워낙 강렬한 색상인 탓에 옷에 담으려고 하면 확 튀는 느낌이 들어서는 아닐까 추측해본다.




사람들에게 나는 과연 어느 나라 사람으로 비쳤을까? 나를 일본인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좀 있었다. 아마 내 옷차림 때문이었을 것 같다. 홍대  빈티지 샵에서 구입한 M65 2세대 자켓, 회색과 남색이 섞인 럭비 셔츠(또는 회색 후드 티셔츠), 연한 청바지, 핑크색 반스 뉴에라, 그리고 빨강 비니까지. 마치 일본 길거리 패션에서 나올 법한 개성 충만한 스타일로 입고 있었다. 당시 나는 빈티지에 꽂혀서 나만의 패션을 찾으려고 애를 쓰던 편이었기에 또래 친구들과 스타일이 현저히 다른 감이 있었다. 이 옷차림은 한국에서도 꽤나  이질적이었는데 일본에서는 오죽 했을까 싶다. 


가끔 나에게 일본어로 말을 거는 사람이 있었다. 일본 잡지까지 사 모을 정도로 일본 패션에 진심인 사람이지만 아쉽게도 일본어는 몇 가지 기본적인 표현만 알았고 번역기의 도움 없이는 대화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래서 그럴 때면 ‘저는 일본어를 못합니다’ 라고  말하고 영어로 대화하려고 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한국인처럼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 눈에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오사카성에서 만난 한국인 가족이었다. 나는 숙소가 위치한 난바에서 나와 다니마치욘초메역에서 오사카성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무척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두리번거리는 한 가족이 눈에 들어왔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기억이 희미하지만 부모와 아이 둘, 이렇게 4인 가족이었던 것 같다. 그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주위를 둘러 보고 있었다. 나도 멀리에서 여행 온 손님이었기 때문에 구글 지도에 의존하는 상황이었고 누군가를 도와줄 처지는 아니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걸어가던 중이었는데 그들이 나에게 다가왔다. 나에게 말을 걸려는 것 같아서 한 쪽 이어폰을 뺐다. 나를 보고 한 10초 정도 고민하다가 아이 엄마가 나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大阪城はどこですか。(오사카성은 어디입니까?)”


그들은 나를 일본인으로 알고 있었다. 독특한 옷차림을 보고 내가 일본인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간신히 일본어 한 마디를 뱉은 후 마치 슈렉에서 나오는 고양이처럼 간절한 눈빛을 건넸다. '당신은 일본인이니까 우리를 도와줄 수 있겠죠? 제발 우리를 도와주세요'라고  눈빛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어설픈 일본어와 가족의 모습을 볼 때 그들은 한국인인 듯했다. 그렇다고 확신할 수는 없어서 조심스레 한 마디를 건넸다.


“私は韓国人です。(저는 한국인입니다.)”


나는 혹시나 해서 한국말로 한 마디 덧붙였다.


“저 한국인이에요.”


그 말을 듣자마자 아이 엄마는 애타게 기다리던 구조대를 만난 듯이 크게 반색했다. 표정만 보아도 얼마나 나를 반갑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 표정은 ‘살았다!’ 라고 말하는 듯했다.


“아, 한국인이셨구나. 일본인인 줄 알았어요. 다행이다. 오사카성은 어느 쪽으로 가야 해요?”


나는 가족들에게 오사카성으로 가는 길을 알려줬고 그 방향으로 같이 걸어갔다. 그들은 나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고 나는 일본에서 한국인을 만나게 되어 무척 반가웠다고 말했다.


생판 모르는 외국에서 한국인에게 한국인이 아닌 대우를 받는 기분은 무척 묘했다. 내가 그만큼 옷을 독특하게 입었나 싶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친구들에게 이 일화를 이야기하며 내가 그렇게 일본인처럼 보이냐며 물어봤다. 친구들은 한국인으로는 보이지 않을 수 있겠다고 말해줬다. 그제서야 그 가족이 왜 나에게 일본어로 말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겉모습만으로 한, 중, 일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드는 “구별 방식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그렇게 개성 넘치는 패션을 추구하지 않는다. 과연 다시 일본에 갔을 때 나를 보고 일본인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하다. 이번에는 그런 사람이 없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혹시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이번에는 일본어 회화를 준비해서 감쪽 같이 속이는 짓궂은 장난을 하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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