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연구에서 간학문적 접근이 필요한 이유

by Haru

행동과학 계량 필드에 있다 보면 다양한 연구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가 많다. 임상/상담/사회/뇌과학/보건/의료 쪽 전공자들도 심심찮게 본다.


이들에게 대개 내 전공을 계량심리라고 소개하면 열이면 열 모두 낯설게 느낀다. 하지만 구체적인 통계 모형을 언급하면 그들도 통계 수업을 듣다 보니 대화는 가능하다.


문제는 대화의 시작점이 ‘계량심리 관점’에서의 연구가 아니라 ‘타전공 관점’에서의 연구라는 점이다.


즉, 나는 그들에게 내 연구 주제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할 수가 없다. 내가 지금까지 만나 본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통계를 연구에 필요한 수단적 이유로 공부하지, 방법론 자체 학습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연구 주제와 가설을 정리하면서 일종의 컨설팅 느낌으로 대화가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 보면 생각보다 그들의 연구에 대해 깊이 알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정말 많은 대화가 오고 가기도 한다.


이럴 때마다 간혹 머릿속에 드는 생각이 있다.


“공동 저자로 논문이 올라가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솔직히 돈도 안 받는 재능 기부인데, 이렇게 열심히 도와줄 필요가 있을까?”


특히 평소에는 전혀 연락하지 않다가 어디까지나 필요할 때만 연락하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 물어보는 경우에 더 그런 듯하다(IRB 신청, 자료 수집, 데이터 분석, 결과 해석 단계 등 그 범위도 다양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디펜스할 수 있는 논문을 요청하기도 한다).


이럴 때마다 참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이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들에게 처음 요청받았을 때 반드시 확인하는 세 가지가 있다.


이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자료가 구하기 힘든 희귀한 자료인가?
고급 방법론을 적용하는가?
학술지 출판이 목적인가?


대개 이 세 가지 중 최소 2개 이상이 충족되면 나는 일단 OK 하는 편이다(3번이 보장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위 사항들을 확인하는 이유는,

첫째, 데이터가 희귀한 경우 그 자체만으로도 계량 연구자들에게 매력적인 포인트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풍부한 데이터를 모아만 두고 논문이 많이 출판되지 않은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둘째, 고급 방법론을 적용하는지 여부도 중요하다. 적어도 도전감 있는 분석이어야 나도 하면서 배우는 게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해당 내용 영역 전문가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면 결국 남는 건 분석하면서 난관을 헤쳐 나가며 쌓인 경험치뿐이다.


셋째, 학술지 출판은 가까운 지인들로부터 부탁받는 경우 돈을 받는 대신 내가 가장 책임감을 가지고 도와줄 수 있는 좋은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에 중요하다.


하지만, 위 세 가지의 기저에 깔려 있는 가장 중요한 가장 근원적인 동기는 따로 있다. 바로...


“내 전공 지식을 활용해 타 분야 연구자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연구에 내가 기여할 수 있는가?”


타 분야 전공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이 잘못 알고 있는 방법론적 개념부터 잘못된 해석, 잘못된 분석 관행을 옆에서 지켜보게 된다.


물론 사회과학에서 사용하는 통계 분석 방법들을 순수히 계량 전공자들만 발전시킨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용어 표현의 다양성까지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잘못된 관행이 굳어져 하나의 보편적 절차로 자리 잡은 경우도 종종 본다. 그래서 해당 전공 분야의 특수성을 인정하되, 최대한 정확한 지식 전달과 올바른 분석 방법 공유에 포커싱한다.


그리고 이러한 스탠스를 견지한 상태에서 해당 연구의 가설을 입증할 수 있는 가장 세련된 분석으로 서포트하는 것이 공동 연구를 할 때 나의 포지션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

.

.

이런 정도까지 생각이 정리되고 나서 우연히 아주 인상적인 글귀를 하나 보게 되었다.

스크린샷 2025-09-27 124357.png 출처: 지식인사이드 최재천 교수편(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명예교수 정진홍 교수 말씀 인용)

간학문적(interdisciplinary) 접근을 가장 문학적으로 표현한 문구가 아닌가 싶은데, 나는 이 말에 많이 공감한다.


계량 분야에서는 아무래도 방법론의 이론적 측면에 몰두할 수밖에 없고, 테크니컬한 부분을 많이 다루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은 타 전공에서는 크게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경우가 꽤 흔하다(물론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것도 매우 많다).


하지만 특별한 관련성이 없는 분야 사람들과 공동으로 일을 하다 보면, 이 분야에서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식, 척도를 바라보는 관점, 최근 트렌드로 떠오르는 분석부터 앞서 이야기한 해당 분야만의 독특한 분석 관행 등을 엿보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새로운 분석 방법을 접하기도 하고, 기존의 분석과 다른 접근 방식의 필요성을 느끼기도 한다. 물론 잘못된 분석 관행에 대해서는 여전히 하나하나 다 알려주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리긴 하지만 말이다(ㅎ).


아무튼 논문 시즌이 오면서 여기저기서 연락이 또 오다 보니 많은 생각들이 떠올라 정리해본다.


박사 과정에 들어가서도 많은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주말ㅎ…


- Haru -

작가의 이전글상담은 비과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