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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콩콩 Mar 09. 2020

2020 원더키디는 방으로 출근한다

재택근무 체험기

2주 전 주말 사이 코로나19의 확진자가 급격히 늘면서 월요일 아침 공기가 달라졌다. 어린이집이 휴원 하고, 개학은 연기되고, 단톡방에서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건강을 단속했다. ‘학교가 위험하면 회사도 위험할 텐데 회사는 계속 가는 건가?’ 그러면서 모두가 재택근무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사태의 심각함을 뒤로 두고 세상 사람이 다 집에서 일하게 될 모습이 궁금했다. 철없지만 어쩐지 2020년 다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체 재택근무는 어딘가 철없고 흥미로운 상상이었다. 그렇게 될 일이 없다고 믿어서 해보는 공상 같은 거. 그리고 메일이 왔다. 2주간 전사 재택근무.

메일을 받고부터 기분이 ‘착’하고 가라앉았다. 이윤을 추구하는 회사라는 조직이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게 사태의 심각성을 대변하기 때문이었다. 회사에 오지 마라는 이야기가 세상이 이렇게나 위험합니다 같이 들렸다. 공공연하게 출근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더했다. 재택근무’는 ‘재택감금' 같았다. 회사에 오지 말라니. 점심은 누구랑 먹으라고. 수다는 누구랑 떨라고. 2020년이 이런 거였다니. 이렇게나 차가운 거였다니. 흑흑. 공상 같은 일이 눈 앞에 펼쳐지자 혼란스러웠다. 엉겁결에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주말 내내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안 나가는 날도 많았으면서 하루 집에서 일하는 건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었다.

재택근무 축하해(?)

재택근무 첫째 날. 일을 하다 말고 인터넷으로 꽃을 주문했다. 라넌큘러스와 아네모네를 섞은 한 다발. 꽃이라도 보면 좀 나을까 싶어서였다. 일을 마치고는 마트에 갔다. 냉장고에 든 거라고는 생수 몇 병뿐이라 온라인 마트로 식료품을 주문하려는데 죄다 품절이거나 배송이 마감이었다. 쌀이랑 김치랑 라면도 넣고, 당장 먹을 채소랑 고기도 좀 사고, 좋아하는 꼬깔콘도 집고, 긴급할 때 마실 인스턴트커피도 넣어야지. 어머 딸기가 세일을 하네? 하면서 십몇만 원어치를 샀다.

첫째 날 마트에서 장을 너무 많이 봐 온 것이 패착이었을까. 자꾸 요리를 한다. 요리한 건 안 남기고 다 먹게 된다. 그래 놓고 간식도 먹는다. 도처에 먹을 것이 너무 많다. 손을 뻗어 홈런볼 한 봉지를 뽀개고 재택근무하니까 너무 헛헛해서 자꾸만 먹게 되네... 했더니 2주 만에 3kg이 늘었다. 헛헛함도 헛헛함이지만 출근, 오전 근무, 점심, 오후 근무, 퇴근, 저녁으로 분절되었던 생활이 한데 뭉뚱 그러 지면서 리듬이 깨진 탓도 크다. 소화불량은 덤이었다.

요가 매트도 샀다. 집에서 며칠 일하고 ‘사무실이 정말 일하기 좋은 환경이었구나.’ 하는 당연한 깨달음을 얻었다. 동료들 다음으로 그리운 건 의자다. 테이블용 의자에 앉아 여덟 시간씩 일 하려니 허리가 아작 나고 있다. 매트에 누워 허리를 한 번씩 펴주지 않으면 필라테스로 겨우 잡아 놓은 통증이 재발할 게 분명하다. 재택근무가 본격화되려면 의자가 필요하겠다. 그런데 사무용 의자는 너무 투박하다. 문득 재택근무가 흔해지면 가정용-사무의자라는 장르가 생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용인데 거실 테이블에 둬도 좋은 뭐 그런 의자. 그리고 #홈카페 #홈바 처럼 #홈오피스 꾸미기가 유행하겠지.  

단점만 있는 건 아니다. 며칠 전엔 “와아 집 너무 좋아. 재택근무 좋은데?!” 하고 육성으로 말했다. 방으로 햇빛이 한참 잘 들어오는 시간이었고, 튜즈데이(나의 반려식물)가 조금 열린 창문 앞에서 바람과 햇빛을 누리고 있었다. 이 시간에 집이 이렇게 예쁘고 평화로운 거 회사에 있었으면 몰랐겠지. 튜즈데이에게 바람도 못 쐬어 줬겠지. 갑자기 집이 사랑스러워졌다. 사람을 그리워하다 못해 집을 사랑하게 됐나.

재택근무를 하는 동료들과 친구들이 자꾸 산책을 하고 글을 쓴다. 나는 사람에게는 저마다 하루에 쓸 수 있는 단어수가 정해져 있다는 말을 믿는다. 사람들이 이야기할 상대가 없으니까 단어가 자꾸 남아서 글을 쓰는 게 아닐까. 우리가 서로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글 쓰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한다. 산책도 비슷하다. 오늘의 에너지가 남아 그걸 다 쓰려는 느낌. 오늘 나는 산책을 두 번이나 했다. 산책을 기다리는 강아지의 마음을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코로나19 종식 이후를 상상해 본다. 나는 이 사태가 끝나면 세상이 제법 많은 모습으로 달라져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재택근무라는 선택이 쉬워질 것이다. 감기, 임신, 부상, 등등의 개별적인 상황에서의 일시적인 재택은 빠르게 늘 것이다. 태풍이나 홍수 같은 천재지변은 물론 무더위, 강추위, 미세먼지 같은 날씨에도 재택이라는 결정이 쉬워질 것이다. 몇몇 회사는 사무실을 없애는 논의를 하고 실행에 옮길 것이다. 이제 시작하는 회사는 사무실과 재택근무를 동일선상에 올려놓고 고민할 것이다.

거리에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썼다. 그 모습이 너무 미래적이라 현실감이 없다. 가짜 뉴스가 쏟아져 나오고 가짜였으면 싶은 뉴스는 진짜라 또 한 번 현실감을 잃는다. 현실인데 미래 같은 재택근무는 이제 3주 차에 접어든다. 원더키디는 알았을까? 2020년엔 방으로 출근하게 될 줄.

아, 마스크 벗고 싶다. 아아, 회사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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