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한점 없는 맑은 하늘이 유난히 파란 날이다. 하늘도 내 마음과 같나 보다. 나는 들뜬 마음으로 아빠의 손을 꼭 잡았다. 굳은 살이 베어 있는 아빠의 손을 맞잡을 때면 언제나 마음이 포근해진다. 옆에서 올려다본 아빠의 드넓은 어깨가 듬직하게만 느껴졌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함께 떠나는 여행길, 아빠, 엄마, 누나와 나 네 가족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모두 룰루랄라 콧노래를 불렀다. 엄마는 길가에 핀 꽃향기를 맡으며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렸고 새침데기 누나는 이리저리 팔을 휘저으며 유난스럽게 춤을 췄다. 그 모습이 하도 우스꽝스러워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누나를 마녀라고 부르며 놀렸다. 그러나 기분이 기분인지라 오늘만큼은 누나도 웃으며 순순히 넘어가 줬다. 산 중턱에 있는 별장은 얼마 전 아빠가 손수 지으신 집이다. 언제나 자연과 함께하기를 바랐던 아빠는 집에서 멀지 않은 뒷동산에 멋진 나무집을 지으셨다. 오늘 우리는 이 집에서 처음으로 잠을 청한다. 나는 놀랍고 경이로운 별장의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너무너무 멋있는 집이다. 주방이 딸린 널따란 거실은 그 어느 곳보다 아늑했고, 예전에는 가져 보지 못했던 내 방엔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몇 날 며칠 동안 하나하나 정성 들여 나무를 베고 깎아 만든 당신의 작품이다. 아빠의 손재주는 정말 탁월하시니까. 아니나 다를까. 아빠는 나를 위해 역시 나무로 깎아 만든 귀여운 다람쥐 인형을 책상 위에 올려 두셨다. 나는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다.
"아빠! 너무 예뻐요. 감사합니다."
아빠는 흐뭇한 듯 나를 보며 환한 웃음을 지으셨다.
"누나, 이것 좀 봐. 이 인형 너무 예쁘지 않아?"
"호들갑 좀 떨지 마. 진우야. 그게 뭐가 예쁘다고 그래?"
누나는 코웃음을 치며 아닌 척했지만 이내 부러운 듯 내 손에 있는 다람쥐 인형을 슬쩍 쳐다보았다. 항상 누나는 아빠가 나를 위해 만들어 주신 인형에 탐을 내곤 했지만 이번만큼은 절대 뺏기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다람쥐 인형을 자칫 부러질세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꼭 나를 보고 웃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런데 계속해서 힐끔힐끔 나를 쳐다보는 누나의 표정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누나의 아쉬운 마음을 모른 체할 수가 없었던 나는 뒤뜰에 놓인 나무토막과 공구 상자를 들고는 아빠에게로 달려갔다. 아빠는 늘상 내가 원하는 것이라면 마다하지 않으시고 잘 들어주셨으니까.
"아빠, 죄송한데 다람쥐 인형 하나만 더 만들어 주세요. 누나에게도 주고 싶어요."
"지금 말이니?"
"네, 지금 만들어 주시면 안 돼요?"
그런데 난처하다는 듯한 아빠의 표정이 예사롭지가 않다. 평소 같으면 흔쾌히 나무를 깎아주시던 당신인데 오늘따라 머뭇머뭇 뜸을 들이시더니 이내 나무토막을 바닥에 내려놓으시는 게 아닌가.
"미안해, 진우야. 아빠가 오늘은 팔이 좀 아파서 힘들겠는데 다음에 만들어 주면 안 될까. 누나를 생각하는 진우의 마음을 아마 소희도 잘 알고 있을 거야."
"네, 알겠어요."
아쉽긴 하지만 나는 시무룩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써 표정을 감추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아시는지 아빠는 인자한 표정을 지으시며 나를 꼭 안아주셨다.
"자, 이제 짐을 풀어 볼까."
나는 아빠의 아픈 팔이 빨리 낫게 해달라고 하늘에 기도했다. 하늘도 내 기도를 들으셨는지 팔이 아프시다던 아빠는 금세 온 가족의 짐을 힘껏 들어 올리시며 손쉽게 집안으로 옮기셨다. 우리는 아빠가 손수 지으신 별장에서의 첫 여행을 기념하기 위해 가족사진을 찍기로 했다.
"자 찍는다. 하나둘셋"
아빠는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올려놓으시고는 힘차게 셔터를 누른 후 우리에게로 달려오셨다. 우리는 일제히 멋진 포즈를 취한 후 사진을 찍었다. 예쁜 추억의 페이지가 또 한 장 늘어나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 순간 나는 오늘따라 아빠의 표정에서 예전과는 다른 천진난만함이 숨어 있음을 발견했다. 언제나 늠름하고 표정에 변화가 없는 아빠였지만 기쁠 때면 나처럼 환한 웃음을 짓는다는 사실에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오후가 되자 엄마는 음식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엄마는 부침개와 수제비, 그리고 비빔밥을 한 상 가득 차려 주셨다. 토속적인 음식이지만 나는 그게 세상에서 제일 맛있게 느껴졌다.
"잉, 엄마 고기는 없어요? 죄다 풀밖에 없잖아요."
"소희야, 원래 산에서는 산지나물로 요리한 음식이 제일 맛있는 거야."
"그치만.."
누나의 반찬 투정이 또 시작되었다. 나는 저절로 나오는 한숨을 숨길 수가 없었다.
"철 좀 들어라. 누나야. 이렇게 맛나기만 한데."
나는 터질 듯 입안 가득 부침개를 집어넣고는 말했다.
"너, 나한테 혼나 볼래."
나는 내게로 달려드는 누나를 떼어 놓으려고 줄행랑을 쳤다.
"소희야!!"
그 순간, 가만히 지켜보시던 아빠의 입에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아빠가 누나에게 큰소리를 치는 것은 정말 처음 있는 일이다. 항상 새초롬하기만 하던 누나도 언제 한번 호되게 당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날이 오늘일 줄이야. 쌤통이다. 나는 누나를 향해 혀를 날름거렸다. 중학생이나 되었으면서 엄마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때아닌 반찬 투정만 하고 있다니. 누나의 별명을 마녀라고 지은 것은 다시 생각해 봐도 참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밥을 먹고 나른해진 오후에 엄마와 누나는 거실 한쪽에서 낮잠을 청했다. 나도 하품을 하며 졸린 눈을 비볐지만 이 황금 같은 휴일을 잠으로 때우기엔 가는 시간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아빠가 내게 다가와 유쾌한 웃음을 지으며 말씀하셨다.
"진우야, 어때? 아빠랑 한 게임 할까?"
아빠의 손에는 축구공이 들려 있었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좋아요!"
아빠는 동네에서도 유명한 축구광이셨다. 그래서 나는 남들보다 훨씬 더 일찍 축구공을 만질 수 있었고 자연스레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우리 아빠 멋있지?"
"진우는 좋겠다. 저렇게 멋진 아빠가 있어서."
"맞아. 맞아. 나도 우리 아빠가 진우 아빠처럼 자상하시면 좋겠어."
친구들 사이에서 내세울 것이라곤 변변찮았던 나에게 있어 유일한 자랑거리는 바로 아빠의 존재였다. 당신처럼 가족만을 생각하시고 자신을 헌신하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게다가 만능스포츠맨인 데다 동네 곳곳의 어려운 일을 먼저 도맡아 해결해 주시는 분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아무래도 오늘은 아빠의 컨디션이 예전만 못하신 거 같다. 계속해서 아빠가 찬 공이 들판 너머로 넘어가 버리는 바람에 나는 몇 번이나 헛걸음을 해야만 했다. 이상하네. 어딘가 모르게 아빠의 어깨는 굽어 있었고 다리는 바깥으로 많이 휘어져 있었다.
"진우야, 공을 제대로 된 방향으로 보내기 위해선 시선이 제일 중요하단다. 눈은 정확하게 오른발을 쳐다봐야 해. 알겠지?"
아빠와 함께 축구를 할 때면 늘 나에게 일러주시던 말씀이 오늘따라 당신에게는 예외인 것만 같았다. 마치 그동안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진우야. 아빠가 오늘 계속 실수를 해서 미안해."
"아, 아니 괜찮아요. 얼른 공 가져올게요."
의심의 순간도 잠시, 나는 저 멀리 굴러가는 공을 붙잡기 위해 달릴 준비를 하였다. 그 순간 내 발밑에 놓인 돌부리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나는 그 자리에서 그만 꽈당 넘어지고 말았다. 놀란 아빠는 다급히 내게로 뛰어오셨다.
"괘.. 괜찮으세요?"
뛰다 넘어지는 일상에 이골이 난 나는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훌훌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빠의 근심 어린 표정을 보니 때아닌 웃음이 났다. 그런데 방금 내가 잘못 들은 걸까? 분명 아빠가 내게 존댓말을 하신 것 같았는데.
"괜찮아요. 아빠, 그런데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으.. 응? 괜찮냐고 물었잖니. 다행이다. 아..아프진 않았니?"
"네, 전 괜찮아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분명 잘못 들은 거겠지. 하긴 아빠가 나에게 존댓말을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아빠는 의아해하는 내 눈빛을 읽으셨는지 잠시 말을 더듬거리시다 이내 고개를 돌려 버리셨다.
"엄마가 오늘 저녁엔 삼계탕을 해 준다고 하셨으니까 어서 집 안으로 들어가자꾸나."
"네, 정말이에요?"
나는 닭고기를 정말 좋아한다. 안 그래도 지난 밤, 엄마가 내게 뭐가 먹고 싶냐고 물어보셔서 삼계탕 이야기를 꺼냈는데 진짜로 요리를 해 주실 줄은 예상치 못했다. 사실, 조금은 기대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때마침 배에서 꼬르륵 배꼽시계가 저녁 식사시간을 알렸다. 나는 기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아빠의 등 뒤에 올라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항상 아빠의 등 뒤로 올라 탈 때면 느껴지던 당신의 듬직하고 드넓은 어깨가 오늘따라 유난히 좁게만 느껴지는 게 아닌가. 순간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을 뒤흔들어 놓았다. 어떻게 된 거지? 우리 아빠가 왜 이렇게 변하셨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아빠의 이상한 행동이 점점 머릿속에 각인되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오늘 아침에도 엄마와 알콩달콩 손장난하시는 아빠를 보고 놀란 기억이 떠올랐다. 평소에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장면이다. 아빠는 나도 모르는 사이 안경을 쓰고 신문을 읽으셨고, 항상 입에 물고 있던 담배도 이내 끊어 버리셨다. 밤이 되어서도 항상 나와 누나가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문단속을 철저히 한 후 잠자리에 들었던 그동안의 모습과는 다르게 아빠는 초저녁부터 쿨쿨 이른 잠을 청하셨다. 기분 탓이라기엔 의심의 씨앗이 너무나도 커져 버렸다. 그날 밤, 하루종일 이리저리 많이 뛰어다닌 탓인지 나는 밤새 잠을 설쳤다. 아니, 온종일 아빠에게서 느꼈던 이질적인 감정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휘저어 놓아 심란했기 때문이리라. 나는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고자 조용히 누나를 불러 보았다.
"누나, 누나 자?"
"으..으응 왜 그래?"
한껏 잠에 취한 누나는 귀찮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누나, 오늘 아빠가 좀 이상하지 않았어?"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아빠가 글쎄.. 오늘따라 예전과 다르게 느껴져서 말이야. 꼭 다른 사람 같았다니까."
나는 쥐죽은 듯 자그마한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누나는 그 말이 영 못마땅했는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얘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럼 뭐, 아빠가 외계인이라도 된다는 말이야."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아빠가 너무 달라진 거 같아서 말이야."
"으이구. 원래 사람은 나이가 들면 조금씩 성향이 바뀌는 거야. 이상한 생각 하지 말고 어서 잠이나 자."
"으..응 알겠어. 누나."
누나의 핀잔을 듣고 나니,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 싶어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의심을 거두고 나자 마음이 편안해진 나는 순식간에 스르르 깊은 잠에 빠져 버렸다. 다음 날, 하늘은 어제 아침과는 다르게 우중충한 먹구름을 깊게 드리웠다. 오늘은 산속 계곡으로 물놀이를 가기로 한 날인데 말이다. 평소 아빠는 물을 극도로 싫어하셨다. 어린 시절 수영을 하다가 물에 빠진 이후로 공포심이 생겨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울한 내 기색을 읽으신 아빠는 한층 들떠 극구 물놀이를 강행하셨다. 그래, 아빠는 그동안의 모습과는 다른 방식으로 가족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시는 것뿐이다. 엄마도 분명 그렇게 말씀하셨잖아. 아빠가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성격이 변하셨지만 여전히 우리를 제일 사랑하신다고 말이다.
"와, 이것 좀 봐. 물이 엄청 맑아. 물고기도 사는걸."
누나는 물에 발을 담그고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밝은 표정으로 물장구를 쳤다.
"에이, 이 정도는 우리 동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걸."
누나의 말에 애써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찌는 듯한 더위를 피하려고 물에 몸을 담그자 나 역시 누나보다 더 신나게 물장구를 칠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누나는 한참이나 물놀이를 하고 난 후 나보다 먼저 아빠, 엄마가 누워있는 뭍으로 향했다.
"나는 이제 힘들어서 그만하고 나갈래. 진우도 그만 놀고 나와."
누나를 이겼다는 생각에 괜히 마음이 뿌듯해졌다. 그러나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게 개구쟁이 소년의 심리가 아니던가. 나는 땅에서 조금 더 멀리 떨어진 깊은 물 속을 향해 물장구를 쳤다. 그런 내 모습이 걱정스러우셨는지 엄마가 나를 향해 외쳤다.
"진우야. 위험해. 그만하고 나와."
"네, 알겠어요."
뒤에서 그만하라는 어른들의 성화가 이어져서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순식간에 어두워진 하늘에서 갑작스레 굵은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평소 수영을 곧잘 했지만 갑자기 비바람이 거세지자 당황한 나머지 물줄기를 헤쳐나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보다 더 놀란 것은 아빠였다. 저 멀리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소리를 지르는 아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나 때문에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쳐 드리고 말았다. 땅 근처의 얕았던 물웅덩이도 계곡의 깊은 수면을 넘나들었다. 그리고 비바람이 생성한 세찬 소용돌이가 순식간에 반대편으로 콸콸 큰 소리를 내며 휘돌아 나갔다. 나는 점점 더 그쪽으로 몸이 빨려 들어갔다. 물이 내 키를 넘어서 몸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나는 이대로 죽는 것이 아닌가 무서운 생각마저 들었다. 어떡하지. 다 내 잘못이야. 내가 가족들의 말을 듣지 않는 바람에 이렇게 된 거야. 그때였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알 수도 없이 아빠가 갑자기 내 곁으로 다가와 와락 내 몸을 끌어안았다. 아.. 아빠.. 어떻게 된 일이지? 아빠는 분명 물을 무서워하셨는데. 아빠는 능수능란한 수영 실력으로 물줄기를 이겨내시고는 내게 가까이 다가와 또 한 번 존댓말로 안위를 물었다.
"괜찮으세요? 정말 괜찮아요?"
이상한 일이지만 의구심을 가질 여유가 전혀 없었다. 다급한 순간이 오랫동안 지속되자 아빠는 내 팔을 당신의 어깨에 휘감았다.
"여기서부터는 제 옆에 꼭 달라붙어 계셔야 해요. 알겠죠?"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고개만 끄덕이고 아빠의 등에 내 몸을 의지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좁게만 느껴졌던 아빠의 어깨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순간이다. 오랜 시간 물속에서 사투를 벌인 끝에 조금씩 땅이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 살았다. 힘겹게 물 밖으로 나오자 엄마와 누나는 황급히 내게 달려와 내 몸을 살폈다.
"진우야, 우리 진우 괜찮아?"
"네, 괜찮아요. 정말 죄송해요."
"다행이다. 천만다행이야. 어떻게 병원에 가지 않아도 괜찮겠어?"
"아니에요. 문제없다니까요."
나는 나를 걱정하시는 가족들의 근심을 해소하기 위해 자리에서 훌훌 털고 일어났다. 바로 옆에서 내 모습을 관찰하시던 아빠도 그제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셨다. 그런데 오늘도 아빠는 내게 존댓말을 하셨다. 항상 다급한 순간에만 말이다. 그럼 어제도 당신의 존댓말을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닐 것이다. 게다가 물속에 들어가시는 것을 그 무엇보다 질색하셨던 아빠가 수영을 이렇게나 잘하시다니. 대체 언제부터 수영을 배우신 걸까? 아빠는 오후 내내 내 시선을 피하시며 나를 멀리하셨다. 그래서인지 나도 왠지 모르게 아빠가 낯설게만 느껴졌다. 밤늦게까지 세찬 빗줄기는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엄마는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아빠에게 말했다.
"별일 없겠죠?"
"걱정하지 마요. 별일이야 있겠어. 조금 있으면 비도 그칠 거라고 하니까."
아빠는 인자한 얼굴로 나를 쳐다 보시며 말했다.
"우리 진우, 많이 놀랐을 텐데 오늘은 일찍 가서 잠자리에 드는 게 좋겠구나."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이제는 나를 향해 웃음 짓는 아빠의 미소까지 낯설게만 느껴졌다. 오늘도 누나는 세상 걱정 없이 혼자서만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은 이렇게도 가슴이 타들어 가는 데 말이다.
무서운 개가 나를 향해 쫓아왔다. 나는 잔뜩 겁을 먹고 먼 곳을 향해 달렸다. 한참을 뛰어가니 아빠가 저 앞에서 앞장서서 걸어가고 계셨다. ‘아빠, 아빠 저 좀 도와주세요. 무서운 개가 저를 막 쫓아와요.’ 아빠는 한참 만에야 나를 향해 뒤돌아보셨다. 그런데 아빠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지는 게 아닌가. 아빠는 일그러진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내가 아직 네 아빠로 보이니?' 으악!! 나는 깜짝 놀라 고함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꿈이었구나. 아빠에 대한 근심이 이제는 꿈속에까지 이어지나 보다. 휴~ 꿈이라서 다행이다. 나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 깊은 잠에 빠진 누나가 야속하기만 하다. 창밖을 보니 비는 완전히 그친 모양이다. 그러나 여전히 어두컴컴한 게 아직 새벽녘이 되려면 한참이나 남은 듯했다. 나는 목이 말라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누나가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부엌으로 향했다. 작은 소리라도 날세라 조용히 찬장에서 컵을 꺼내든 나는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벌컥벌컥 물을 따라 들이켰다. 물을 마시고 나니 조금이나마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다. 정말 이상한 꿈이었어. 나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으며 꿈속에서 보았던 아빠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려 애썼다. 그 순간 창밖에서 무엇인가 반짝이는 것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고는 창문 밖으로 몸을 숨겼다.
"저게 뭐지?"
불빛은 아주 조금씩 한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순간 나는 오싹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 이 시각에 누가 바깥을 배회하고 있는 걸까. 산 중턱에 위치한 집이라 근처에는 아무도 없을 텐데. 혹시 도둑이나 강도가 나타난 거라면 어떡하지. 아빠를 깨워야 하는 걸까. 그러나 무서움도 잠시, 나는 피어오르는 호기심을 도저히 억누를 수가 없었다. 나는 조용히 집 밖으로 나가 방금 보았던 불빛의 움직임을 잽싸게 눈으로 좇았다. 불빛은 아주 천천히 산속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윽고 잠시 불빛의 움직임이 멈춰 있는 틈을 타 나는 조용히 발소리를 죽이고 그쪽으로 몸을 옮겼다. 어렴풋하던 불빛이 어느새 시야에 가까워질 때쯤, 나는 마침내 불빛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아빠였다. 아빠는 자그마한 손전등을 들고는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이 시간에 대체 어디로 가시는 걸까. 나는 어제, 오늘 아빠가 보였던 이상한 행동들을 다시금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아빠가 이렇게 한순간에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수가 있을까.
"그럼 뭐, 아빠가 외계인이라도 된다는 말이야."
지난밤, 누나가 내게 한 말이 생각났다. 외계인, 정말 아빠는 외계인이라도 된 것처럼 스스럼없이 어두컴컴한 풀숲을 헤치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거리가 멀어지지 않게 신경을 곤두세우고는 조용히 아빠를 뒤따라갔다. 잠시 후 마침내 목적지에 다다랐는지 아빠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었다.
"응 이제 다 왔어. 바로 돌아갈 거야."
틀림없이 아빠의 말소리만 들릴 뿐 상대방의 음성은 들리지 않았다. 대체 누구랑 이야기하는 걸까? 주변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데. 아빠는 호주머니에서 전에는 본 적 없던 장치 하나를 꺼내더니 삑삑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마주하는 정말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아무것도 없던 어두컴컴한 곳에서 갑자기 하얀 빛이 솟구치는 게 아닌가. 나는 너무 놀라 터져 나오는 탄식을 막기 위해 손으로 입을 틀어막아야만 했다. 솟구치던 하얀 빛은 이내 굉음을 내는 무언가로 바뀌더니 주위를 환하게 비추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를 오랫동안 사용했던 자신의 것인 양 손쉽게 조종하던 아빠는 이내 묘한 웃음을 지으며 순식간에 그 안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나는 마치 온몸이 감전이라도 된 듯 그 자리에서 꼼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저건 분명 우주선이다. UFO 말이다. 그리고 아빠, 아니 저 사람은 아빠의 모습으로 위장한 외계인이 틀림없다. 누군가에게 이제 돌아갈 거라고 보고를 하지 않았던가. 무언의 목적을 달성한 외계인은 그렇게 이곳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자신의 세계로 귀환을 하려는 게 분명하다. 그럼 우리 아빠는? 아빠는 대체 어디로 가 버리신 거야? 나는 아빠를 돌려 달라며 외계인을 향해 크게 고함을 지르고 싶었다. 그 순간 이번에는 환한 빛이 내 눈앞으로 다가왔다. 순간적으로 하얀빛이 내 눈을 비추자 나는 너무 눈이 부셔 그만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앗"
깜짝 놀란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자 아빠의 모습을 한 외계인이 우주선에서 나와 내 쪽으로 살며시 다가왔다. ‘아..안 돼.’ 나는 더 크게 고함을 질렀다.
"거..거기 누구요?"
아빠, 아니 외계인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순간 나는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이대로 붙잡혀서는 안 된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얼른 도망을 가라며 내 발걸음을 재촉했다. 나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야말로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 반대 방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외계인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안 돼, 여기서 붙잡히면 큰일 나.
얼마나 오래 달렸을까. 깊은 산 속의 어두운 시야는 어느덧 내 발목을 붙잡고 말았다. 산속 모퉁이를 돌려던 그 순간 밤새 내리던 비로 토사가 쓸려 내려가 나는 그만 언덕 너머 절벽의 끝자락에서 밑으로 굴러떨어져 버렸다. 점점 정신이 혼미해진다. 그때, 눈앞에서 누군가의 실루엣이 점점 가까워졌다. 안 돼, 정말 안 되는데. 나는 나를 향해 다가오는 마수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완강히 저항했다. 아니, 저항하려고 발버둥 쳤다. 이미 헛수고임을 알지만. 그리고 나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뚜뚜뚜. 저벅저벅, 범상치 않은 기계 소리와 누군가의 분주한 발자국소리가 번갈아 들려 온다. 진우는 감은 눈을 억지로 뜬 후 살며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가 대체 어디지?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진우는 눈앞에 서 있는 손녀딸 소희의 얼굴을 발견했다. 진우는 힘겹게 손녀의 이름을 불렀다.
“소희야, 여기가 어디니?”
깜짝 놀란 소희가 진우에게 다가왔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맞아요? 여기 병원이에요. 아빠, 엄마 할아버지예요. 할아버지가 다시 돌아오셨어요.”
“아버지 저 기억하시겠어요?”
황급히 달려온 진우의 아들 태석이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진우는 이게 무슨 영문인지 알지도 못한 채 태석의 손을 잡았다.
“그럼, 내 아들 태석이 아니냐? 괜찮다, 괜찮아. 그만 울거라.”
태석의 옆에서 진우의 며느리 미영 역시 눈물을 훔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진우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잘 알고 있었다. 몇 년째 치매를 앓고 있던 진우는 몇 번이고 다른 시기의 삶을 살아 왔기 때문이다. 40여 년 전 아내와 신혼생활을 하던 그때로 돌아가기도 하고, 10년 전 아내의 병수발을 하던 삶을 다시 살기도 한다. 갓 태어난 아들 태석을 품 안에 안기도 하며 그리운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직접 경험해 보기도 한다. 과연 이번에는 어떤 삶을 살다 돌아온 것일까. 가족들의 표정을 보니 이번에도 적잖은 애를 썼겠구나 싶어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미안하구나. 미안해. 내가 또 정신을 놓아버린 모양이구나.”
“아니에요.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태석은 진우의 옆에 앉아 당신의 손을 꼭 잡았다. 진우는 자신이 지난 며칠 동안 10살 초등학생으로 살았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들과 며느리를 아빠, 엄마라 부르고 손녀딸을 누나라 불렀다니 이토록 부끄러운 일이 또 어디 있을까.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 말이 그냥 허투루 나온 말이 아니었구나. 진우는 오랫동안 자신의 행동을 자책하며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가족들은 진우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괜찮다고, 10살 소년이 되어도 좋고, 20살 청년이 되어도 좋다고.. 그저 우리 곁에 오래오래 함께 있어만 달라고 말이다.
가족들은 초등학생이 되어버린 진우를 위해 3일간의 여행을 계획했다. 진우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지어주신 나무집에 대해 몇 번이고 그리운 마음을 토로했다. 지금은 불에 타서 없어져 버린 집이지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오랜 기간 깊게 자리하고 있는 탓에 그곳에서의 추억이 쉽게 잊히지 않았다. 태석네 가족은 그렇게 진우를 위한 연극을 감행했다. 아버지의 기억과 최대한 비슷하게 나무집을 짓고 그 곳에서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러나 결코 그 과정이 곤욕스럽거나 싫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 할아버지를 즐겁게 해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 날 밤, 몰래 숨겨둔 아들의 차를 우주선이라 착각했던 진우는 허겁지겁 달아나다 그만 절벽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다행히도 커다란 나무가 진우의 등을 받쳐 주었고 태석이 바로 진우를 발견하였기에 경미한 부상만 입은 채 병원으로 옮길 수 있었다. 사고가 있었던 이후로 오랜 기간 잠이 든 탓인지 진우는 오랜만에 명쾌한 본인의 기억을 되찾고 자신의 삶으로 돌아왔다. 물론 그 시간이 얼마나 오래 주어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진우는 무심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오늘따라 자신의 얼굴이 영 낯설게만 느껴진다. 내가 이렇게 생겼었던가. 진우의 곁에서 당신의 안위를 내내 걱정했던 태석은 밤이 늦어서야 조용히 잠이 들었다. 진우는 잠이 든 아들의 얼굴도 유심히 쳐다보았다. 내가 며칠 동안 아빠라고 불렀던 내 아들이라니…. 태석의 얼굴에도 어느새 주름이 깊게 패였고 희끗희끗한 흰머리도 수두룩해졌다. 그런데 오늘따라 아들의 얼굴이 꿈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돌아가신 아버지를 똑 닮아 있었다. 어린 아이가 되었던 지난 며칠간은 전혀 다르게 느껴졌는데 참 신기한 일이다. 그렇게 진우는 오랫동안 태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음 날, 몸이 건강해진 진우는 퇴원을 하기로 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어떻게든 가족들에게 폐가 되지 않게 건강한 몸을 유지하려 애쓸 것이다. 할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한껏 들뜬 소희가 진우를 꼭 안아주었다.
“할아버지, 이거 보여 드리려고 가져 왔어요.”
소희는 며칠 전 별장 앞에서 찍은 가족사진을 진우에게 보여 주었다. 진우는 소희가 건네준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아들과 며느리, 손녀딸, 그리고 자신을 10살 초등학생이라 믿는 70대 노인이 환한 미소로 웃고 있었다. 나무집 역시 어린 시절 돌아가신 아버지가 만들었던 추억의 장소와 너무나도 흡사했다. 잠시 후 진우는 사진 속의 자신이 조금씩 조금씩 10살 소년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광경을 목격했다.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그 모습에서 꿈에 그리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리라. 진우는 찬찬히 사진 속 아들과 자신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닮았구나. 그래. 많이 닮았어. 아들은 아버지와의 추억을 먹고 자란다. 그렇게 아들은 아버지를 닮아 간다. 진우는 다시 10살 소년이 된 것처럼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