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합리성이 만든 벽, 우리는 어떻게 넘을 수 있을까?
의사는 왜 소통하지 못하는가!
현대 의학이 ‘불통’의 이미지를 갖게 된 원인은 의사와 환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와 문화의 영향이 더 크다고 작가는 주장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의학적 역사와 사례를 소개하며, 환자와의 소통을 개선하기 위한 고민을 담아낸다.
특히 작가는 의학이 과학을 바탕으로 발전하면서 의사-과학자 집단이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확립했고, 그로 인해 다른 집단과의 소통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고 분석한다. 이는 결국 의사와 환자 간의 단절로 이어졌다.
의사는 어떻게 만들어지며,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의사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현대 의학은 20세기 초 과학의 발전과 함께 등장한 필연적 산물이었다. 그러나 과연 의사들이 ‘절대적 진리’에 가까운 존재일까? 작가는 획일화된 교육과 과학 중심의 의료 시스템이 의사들에게 과도한 스트레스를 부여하며, 이들이 소통의 어려움을 겪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흥미로운 점은 작가가 제안하는 ‘의학의 혁신’이다. 그는 의사가 단순히 과학자로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학습을 통해 자신만의 전문성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의사-과학자’뿐만 아니라 ‘의사-사서’, ‘의사-광대’처럼 다채로운 정체성을 결합할 수 있는 시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작가는 “만약 의학이 완전히 합리적이고 표준화된 체계라면, 대기 시간이 긴 유명한 의사는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플렉스너 보고서’를 인용하며, 의사라는 직업이 변화를 맞이할 시점이 도래했음을 강조한다.
불통의 아이콘이지만, (더럽게) 합리적이네
미국 드라마 하우스를 본 적 있는가? 주인공 ‘그레고리 하우스’ 박사는 천재적인 실력을 가졌지만, 동료들과의 소통 능력은 0에 수렴하는 인물이다. 그는 환자의 감정보다는 철저한 논리와 합리성에 따라 진단을 내리고, 윤리적 고민조차 냉정하게 판단한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현실에서도 반복된다. 작가는 프레더릭 밴팅의 사례를 통해, 의료 자원의 배분이 단순한 숫자 문제가 아님을 강조한다. 그는 의료가 음식처럼 반반씩 나눠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아니며, ‘정의의 원칙’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제 의료에 질문해야 한다. 어느 질병과 분야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가? 이 문제를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의료에서 정의를 실현하는 방식이다.”
의사는 남의 아픔을 잘 느낄까?
앞서 의사를 단순한 ‘과학자’로 정의하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했는데, 이에 대한 대안적 사례가 있다. 바로 윌리엄 카를로스다. 그는 의사이자 시인이었다.
그는 시인이었기에 더 나은 진료를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얼핏 보면 의사와 시인은 전혀 다른 직업처럼 보이지만, 그는 어떻게 이를 연결했을까?
드라마 하우스의 주인공은 “Everybody lies(모두가 거짓말을 한다)”라며 환자와의 대화를 단절하는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윌리엄 카를로스는 그 반대다. 그는 언어와 감성을 통해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이를 치유의 과정으로 연결하려 했다. 이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더욱 중요한 의료인의 모습이 아닐까?
소통의 중요성
우리는 때때로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한계를 느낀다. 이는 우리를 좌절하게 만들고, 타인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한계야말로 의사들에게 중요한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환자는 자신의 고통을 완벽히 설명하기 어렵다. 그들의 아픔을 언어로 풀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의사에게는 단순한 의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환자의 감정을 읽어내는 능력 또한 필수적이다.
작가는 언어의 본질을 탐구하는 시인의 역할과 환자의 증상을 세밀히 관찰하는 의사의 역할이 공통점을 가진다고 말한다. 시인은 언어를 갈고닦아 사물의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고, 의사는 환자의 미세한 증상을 관찰하여 질병의 본질을 찾아낸다. 두 직업은 결국 같은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은 의사가 단순히 과학자가 아니라, 소통의 전문가가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환자와의 대화 속에서 새로운 의학의 혁신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을 일깨운다. 현대 의학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싶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누가 정상이고 표준인가
이 책은 총 4부로 이우러여짔는데 그 중 2부 '누가 정상이고 누가 표준인가'에서는 '정상'의 범주에 들고자 애썼던 사람들고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냄으로써 장애에 대한 인식을 바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고 의료인의 인식이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으며 그들의 선택이 의료를 어떻게 바꾸어놓았는지 살펴본다.
특히 149페이지를 살펴보면 미국의 작가 낸시 마이어스(1943~2016)는 28세에 다발 경화증을 진단받고 이후 병과 함께하는 삶에 대해 많은 글을 남겼다는 것을 담고 있다. 그 주에 미국 전역에서 읽히며 많은 반향을 일으킨 글이 <병신으로 살다 (On being a cripple, 1986)>이라고 한다. "병신"이라는 표현으로 자신을 표현한 것도 충격적이지만 이 책이 미국 사회에 가져온 반향은 더욱 놀랍다.
그녀의 글과 과격한 표현은 특히 오히려 장애 운동가들에게 큰 영감이 되었는데, 소수자를 배려하지 않는 사회적 결정에 의해 '장애'를 갖게 된 사람들을 사회가 '장애'라는 딱지를 붙였음을 주장하는데에 발판이 되었다.
즉, 낸시 메이어스와 그녀를 지지하는 모든 장애 운동가들은 장애인과 비 장애인을 구분해 그들을 '병신'으로 만드는 것을 드러내는 것을 드러내는게 저항의 방식 중 하나임으로 생각한 것인데 작가는 이것을 언급하며 의학에서도 장애인과 비 장애인을 구분짓는 보이지 않는 유리벽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아픔은 치료했지만 흉터는 남았습니다』는 단순히 의료의 발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가 한 사회의 가치와 시선을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보여준다. 낸시 마이어스와 장애 운동가들의 목소리는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는 의료가 단순한 치료를 넘어, 더 포용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진다.
이 책은 우리가 무심코 받아들이는 ‘정상’의 기준을 다시 묻고, 의료가 사회적 편견을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보여준다. 낸시 마이어스의 글처럼,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은 사회가 만든 것이며, 의료 또한 그 경계를 강화하거나 허물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가진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다시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