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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QURIO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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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세라세라 Dec 28. 2020

QURIOSITY 03 : '적응'하는 브랜드.

서울 안의 에이전시가 생존을 생각하다.

시장도 살아있다. "시장생태계".


출처 : unsplash (저작권 프리)

 언뜻 들었을 때는 별로 관계가 없는 듯하지만 이 일을 하다 보면 의외로 자주 맞닥뜨리는 표현이 있다. 재화와 서비스가 오가는 시장 전반을 생태계라고 일컫는 것인데, 퍽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디지털 생태계’, ‘금융생태계’ 등의 신문 헤드라인을 통해 왕왕 접하게 되는 이 낯선 단어는 나무가 잎을 피우고 병아리가 알을 깨는 내추럴한 연상보다는 아무래도 상당히 차갑고 무기질적인 이미지를 갖는다.

 그러나 디자인을 생각하는 우리는 이 ‘생태계’를 마냥 삭막하게 생각할 수만도 없다. 대개는 생산자의 입장에 있지만 무시할 수 없는 빈도로 소비자이기도 한 우리는 변화무쌍한 환경, 시류, 감성들에 적응하고, 선택해야 한다.

 이 시장은 마치 살아있는 것 같다. 살아있는 시장 속의 우리는 혹독한 생태 안에서 치열하게 적응하는 생명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이 생물학적 법칙이나 논리를 시장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억지이다. 어떤 부분은 보다 공학적이고, 기계적으로 탐구해야 한다.


출처 : unsplash (저작권 프리)


 어느 쪽이든 결국 생존은 환경에 적응한 결과물이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멸종생물들이 항상 강하고 뛰어난 것만이 오래도록 남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자연 생태계가 뭇 생물체들의 수고로움을 배려하여 변하지 않듯이 비즈니스의 생태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업장을 생각해주지 않는다.

 환경에 맞추어 변화하지 못한 비즈니스, 적응하지 못한 비즈니스는 스스로 탈응하지 않는 한 도태된다. 물론 인내하고 버텨서 환경이 우리의 생태와 맞아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도 있을 테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도 알 수 없으며, 그런 부정확한 낙관주의를 믿기에는 이 생태계의 경쟁이 너무도 각박하다.


뿌리내리고 싶은 수많은 회사에 부쳐.


 케세라세라(이하 Q)는 한국에 정착한 지 3년밖에 되지 않았다. 이곳에 올 당시에는 한국 시장에 대한 경험이 있는 사람도 없었고, 면밀한 탐색을 바탕으로 한 자료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국내에 있는 다른 디자인 에이전시들이 어떻게 일을 하고 홍보하는지도 알지 못했고, 정말이지 아무런 지침도 조사도 없이 무작정 이곳에 오게 되었다.

 갖춘 것은 일본 시장에서 갈고 닦아온 스킬과 노하우, 이곳에 자리하고 입지를 갖추고 싶다는 강한 의욕-뚜렷하게 떠오르는 방안은 없지만-이 전부였다. 지금 생각하면 어찔할 정도의 대담함이기도 하고, 무모한 행동이었던 것 같다.

 정착을 결심하고 난 뒤에는 더 잘 적응할 방법을 찾았다. 한국에 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어떻게 전략을 짜야 할지, 어떤 부분을 우리가 포기해야 하는지 파악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몇 번의 값진 우연과 복습, 반성을 통해 Q는 큰 탈 없이 뿌리를 뻗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벽에 부딪혔다. 특별히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 모두 말로 설명하기 힘든 어떤 막다른 길에 다다랐음을 느꼈다. 이 막막함이 정확히 무엇이며,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누구도 알지 못했으므로 뾰족한 해결 방안 없이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우리는 어디에 사는 누구인가?


 우리의 첫 번째 내부 프로젝트로 제작한 스티커에 Seoul이 들어간 것도 맥락을 같이한다. Q는 지금까지 우리가 무엇인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우리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이 과제를 동료들과 함께 고민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경험이었다. 브랜딩을 전문으로 내세우면서 우리 스스로를 엄밀하게 연구하지 못했던 것은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실책이었다.



 업무를 떠나 특정하는 Q의 이미지는 무엇인가.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확인한 우리의 첫 번째 정체성은 서울에 있었다. 물론 이것은 완전하고 유일한 해답은 아니다. 서울은 어떤 하나의 아이덴티티로 정의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다채로운 공간이고, 시간이기 때문이다.

 서울을 아는 것은 Q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우리에게 대한민국, 그보다 더 작은 이 도시는 아직도 미지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우리가 겪어본 것이 서울의 지극한 파편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


출처 : unsplash (저작권 프리)


 살아남은 개척자는 그 환경을 제게 맞게 뜯어고친 이가 아니라, 스스로를 잃지 않으면서 유연하게 적응한 이이다. 상대를 이해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하는 브랜딩에 가장 위험한 것이 ‘절대로’ 꺾지 않으려는 고집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특별하고 싶지만 고집스럽고 싶지는 않다.

 브랜딩도 마찬가지다. 나와 상대를 더한 뒤, 다시 반으로 나누어 상대의 일부를 내가 갖고, 나의 일부를 상대에게 전하는 부분부터 시작한다. 이 과정은 Q와 의뢰주 사이에서도 발생하고, 의뢰주의 브랜드와 소비자 사이에서도 발생한다. 더하고 나누는 과정 중에 생기는 교착과 단차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탐구하는 것은 우리의 과제이다.


생태계에서 살아남는 에이전시가 되기 위하여.


 글로벌 디자인 에이전시를 표방하면서도 서울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하는 까닭은 그 때문이다. 우리가 어디에서 일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어떤 감성을 목표로 해야 하며, 서울이라는 생태에 적응하기 위한 가장 알맞은 사고방식은 무엇인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탐색해야만 한다. 아직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도 알아내야 한다.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리는 것은 별 수 없는 일이다. 이 생태계 구성원으로서 우리의 목표는 다른 개체와 구별되는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면서 오래도록 생존하는 것이지 눈부신 탁월성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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