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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쎄 Jun 07. 2022

1 SUNBIN : 붕새의 시공간

2022.05.07. @명동역



시그니처 아이템의 의미 ─
그날 할 일을 적는 다이어리예요. 여기에서 '일'은 외주노동, 집안일, 개인 공부 등 아주 넓은 범위의 일을 의미해요. 일상적이고 사소한 일이더라도 그날 할 일이 있고, 그게 어떤 일인지를 글자로 적어놓으면 마음이 조금 편하더라고요. 계획을 지켰는지 여부를 떠나서요.



선빈 님을 알게 된 건 2020년 빌라선샤인 시즌6 경험공유회를 통해서다. <덜 불안하게, 무소속의 시간 보내기>라는 주제는 갓 무소속으로 던져진 내게 딱 맞는 생활 정보나 다름없어서, 어떤 대비가 필요한지 또 어찌 지내면 좋을지 가늠할 요량이었다. 그중 예상치 못하게 내 뒷덜미를 잡아챈 건 ‘무소속’이다. 일이 빠졌기 때문에 뭉뚱그려지기 쉬운 시기이자 존재를 드러내기 적당한 표현이라는 걸 처음 생각해봤다. 당장 나부터 갓 퇴사한 누구입니다, 라고 소개하는 내내 이 시기를 부를 적당한 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여기던 차였다. 갭이어도, 번아웃도, 프리랜서도, 백수도, 취업준비생도, 경력단절도 아닌 다른 말.


이후 그와 느슨하게 연결한 채 행보를 지켜봤다. 소셜클럽 <무소속 베이스캠프>, <나소속 컨퍼런스>(공동 진행), <유럽언어자습교실>을 진행하고, 블로그에 유럽 정치 뉴스를 번역해 브리핑하더니, 무소속이라 두드러지는 불안과 일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글로 쓰기도 했다. 내겐 그의 ‘한 끗’이 너무도 명확해 보였으나 인터뷰하는 동안 그는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입에 담았다. 거창한 의도가 담기지 않아서, 그때 어떤 생각이었는지 가물가물해서, 미래를 예단하기 어려워서.


없을 무는 결핍으로 볼 수도, 동력으로 볼 수도 있다. 무-지반, 무-정형, 무-확신의 다른 말은 무-궁무-진인 것처럼. 소속을 지운 자리라야 시도해볼 수 있고, 정형화되지 않으니 나만의 정의가 중요해지며, 확신이 채워지지 않기에 내 강약을 알아간다. 시즌 2를 그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무소속으로 지낸 기간과 더불어 본인 소개 간단히 해주실래요?

저는 무소속으로 지낸 지 2년 정도 돼 가고 있고요. 지금은 거의 전업 백수예요.


무소속인데 백수로 부르시네요.

따로 일하는 시간보다는 안 하는 시간이 많아서 프리랜서라고 소개하는 게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일할 때는 보통 예전 직장 동료와 함께 진행하고 있고요. 대부분 시간을 집안일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집안일도 이제는 비용 책정이 된답니다? 태재 작가는 소개할 때 전업주부라는 표현을 쓰더라고요. 글을 쓰거나 서점에서 일하는 시간도 있지만 집안일 하는 걸 본인의 업으로 설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여자였다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텐데 성별이 달라서 그렇게 보였던 것도 있을 거예요.

선빈 님 소개를 들으니까 우리는 왜 그런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데 그런 말을 해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저는 1인 가구라 저 혼자 챙기는 것도 버거운데 선빈 님은 가족분들까지 챙기시는 거잖아요?

실제로는 집안일을 나눠서 하는 것에 가깝죠. 뭐랄까, 집안일은 살아가는 데 수반되는 당연한 일이잖아요. 어릴 때는 몰랐을 수 있지만 크면서는 내 몫은 내가 해야지, 하는 마음이 생겨요. 그러면서 앞으로 뭐하면서 먹고 사나 걱정도 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백수인 지금 상태가 좋거든요. 돈만 있다면 더 좋겠죠. 그게 항상 딜레마예요.

돈을 받는 대신 내 시간을 그만큼 써야 한다는 걸 아니까, 그 교환 관계가 너무 크게 다가와서 망설이게 되더라고요. 고용이 불안정하더라도 파트타임으로 일해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어요. 고용 기간에 정함 없이 주 몇 시간만 일한다거나, 한 주 중 무슨 요일에만 일하는 형태로요. 그런 경우에는 업무 책임 범위가 좁거나 제한적인 경우가 많으니까 거기서 또 고민해요. 일하다 보면 욕심이 생길 테니까요. 결국 기준 하나를 낮추거나 포기해야 하는데 어떤 걸 취하고 어떤 걸 버릴 건지 갈팡질팡하는 거죠. 아, 자기소개하다 보니 얘기가 이렇게까지 길어졌네요(웃음).


충분한 자기소개였어요.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고 어떤 상태인지 말씀해 주셔서 좋아요. 누구든 자기소개를 막막하게 여기잖아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왠지 딱 갖춰진 어떤 표현으로 설명해야 할 것 같잖아요.

맞아요. 회사에 다닐 때는 간편하게 나를 소개할 문구나 직책이 있어서 편하죠. 무소속이 되면 그런 게 없으니까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 막막해요. 소속, 직무가 없으면 나 자신을 더 많이 드러내야 하는 듯해요. 예를 들어서 소속이 있으면 한 줄로 끝나지 그걸 더 묻지 않잖아요? 소속이 없는 순간 나는 뭘 하는 사람인지 설명이 길어져요.



조직에서 소속되지 않은 시간을 알바 기간으로 생각하거나 목표를 두고 취업 준비하는 기간 아니면 번아웃이 와 어쩔 수 없이 쉬는 경우 등 다양한데요. 선빈 님이 무소속을 선택하신 가장 큰 요인이 있을까요?

지금을 포함해 앞에 두 번 더 무소속이었을 때는 졸업하고 나서, 혹은 회사 그만두고 나서 제가 들어갈 자리가 없어서 그렇게 된 경우였어요.


2년 전이니 코로나19의 영향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코로나19 영향은 아니었어요. 반대로 코로나19가 구직 활동을 못/안 하는 핑곗거리가 됐죠. 회사가 저와 안 맞았어요. 기업 내부에서 전략 기획 파트를 맡고 싶어서 입사했는데 막상 일해보니 이 업종의 기술과 가치가 쉽게 이해되지 않았고 업무 자체도 맞지 않았어요. 다른 부서로 이동하려고 해도 막막해서 결국 나오게 된 거예요. 입사 6개월 만에.

재직 중인 상태에서 새로운 회사로 이직한 게 아니라 반년 좀 넘게 쉬는 기간이 있었어요. 그래서 1년이 채 안 돼 회사를 나온 것에 좌절했어요. 자존심도 상했고요. 빨리 일자리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당시 확진자가 확 증가하던 때라 구직 활동이 움츠러들었죠. 업종과 업무가 안 맞아서 회사에서 나온 경험이 가장 최근에 있었으니까 자꾸 주저하게 됐고요.

말씀하신 빌라선샤인에서 ‘무소속’을 주제로 경험공유회를 하거나 <무소속 베이스캠프> 등의 모임을 리드하게 된 건 전혀 생각 못 했던 일이에요. 주로 혼자 집에 있었으니까 심심하기도 했고, 가장 최근의 퇴사 경험 때문에 의기소침한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은 뭐 하는지 궁금해서 별생각 없이 말을 던졌던 게 그렇게 이어졌어요.


회사에 기대한 부분이 분명하고 열심히 해보려고 했는데 그런 환경이 되지 않았다는 게 씁쓸하네요.

시간이 웬만큼 지났으니까 이제야 저를 뽑은 상사도 마찬가지로 힘들었겠다 싶어요. 그때는 내가 힘드니까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죠(웃음). 초반에 회사와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구직 활동할 모습을 그리니 끔찍했어요. 적어도 1년은 다녀보자고 생각했어요. 이력서를 낼 때 경력이 짧으면 신경 쓰여서요. 그런데 제가 정해둔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일찍 나온 게 속상한 한편, 더 빨리 나와야 했나 싶기도 했어요.





선빈 님은 무소속이 된 이래로 <무소속 베이스캠프>나 <무소속 워밍업> 등 모임 리더로 운영해보셨고, <나소속 컨퍼런스>도 함께 진행하셨잖아요. 계속 무소속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활동하시는 모습에서 조직 밖에서 무언가 하는 걸 구상해 보시지 않았을지 궁금해져요.

물론 생각해봤죠. 조직 밖에서 일하는 것도 한창 모임하고 이것저것 벌여보던 초기에는 고민했던 부분이에요.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조직 소속 여부에 상관없이 돈을 받고 남한테 팔만한 기술이라든가, 지식이 뭐가 있을까 자문할 때 뚜렷하게 답이 안 나와요. 첫 직장을 구할 때부터 자기 확신이 없었어요. 간간이 예전 직장 동료와 일하는 걸 두고 조직 밖에서 일하는 거라 볼 수 있겠지만, 고정적인 클라이언트가 없어서 일이 있다, 없다 해요. 프리랜서로 시장조사를 본격적으로 해봐야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다면 모를까, 아직은 적극적으로 자기 영업을 안 하고 있어요. 스스로 잘한다고 여기는 부분을 살펴보면 하드 스킬보다 소프트 스킬에 더 가까워서 객관적인 예시로 설명하기가 까다로워요. 소프트 스킬은 일상에 스며들어 있거든요. 짧으나마 경험해 본 직장생활을 떠올려보면, 소프트 스킬은 실무진급보다는 그 이상에게 기대되는 능력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실무진들은 당장 해야 하는 일들을 담당하고 처리하니까 그 직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하드 스킬이 더 강조될 수도 있겠더라고요. 자기 확신이 없었던 이유 중 하나에는 제너럴리스트로 이것저것 다 한 점도 있을 거예요. 예를 들어 마케팅이면 마케팅 방법 같은 게 명확히 있는데 인사/총무, 오피스 어드민 같은 경우는 집안일 같은 느낌이거든요. 어떤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 매일 필요한 일이지만, 전체 일의 범위는 넓고 각각의 일은 사소해 보이기도 해요. 요즘은 조직 분위기가 바뀌어 가는 추세임에도, 직접적으로 영업, 마케팅과 관련 없는 직무들은 과소 평가되는 경향이 있어요. 과거에는 저조차 그런 관점으로 봤고요. 경영 지원으로 분류된 업무들이 그런 형태라, 내가 해온 일, 내가 가진 기술을 과소평가하거나 내세우기 애매하지 않나 생각한 면이 있어요.


들불에서 <유럽언어자습교실(유자교실)>이라는 유료 프로그램도 리드해보셨잖아요. 일종의 실험처럼 보였거든요.

일종의 실험이었죠. 일단 제가 꾸린 모임들은 기본적으로 제게 필요한 것에 기초했어요. 무소속 모임도 마찬가지고, 유자교실도 당장 제 필요가 우선이었으니 돈을 받고 운영하기 애매하더라고요. 유료 프로그램이되 유지하는 정도로만 모임비를 최소 책정한 게 그 이유예요. 시장조사처럼 돈을 받고 상대방이 원하는 걸 제공한다는 느낌이 약했달까요? 멤버들에게 워크숍을 제공하거나 가르치는 형태가 아니고, 모여서 얘기하거나 같이 외국어 훈련하도록 환경을 만드는 정도라 값을 책정하는 게 어렵기도 했어요. 만약 외국어 공부를 꾸준히 할 수 있도록 독려하거나 공부 계획을 짜주고 체크를 하는 등의 서비스였다면 달랐겠죠.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크거든요. 모임이 생기면 사람들이 모이잖아요. 모임을 꾸리고 진행해 본 게 선빈 님의 경력이죠. 모임 안 만들어본 사람들은 모를 거예요. 모임을 세팅하기까지 들어간 고민과 노동이 있다는걸.

마지막 한두 시즌 전까지는 ‘멤버들이 시간 내서 줌 모임에 참여하는데 뭔가 얻어가야 하지 않을까? 기분이라도 좋은 상태로 헤어져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자주 들었어요. 저부터 다른 행사나 모임에 참여했을 때 ‘나 오늘 여기 왜 왔지?’ 이런 생각 들면 좀 그렇더라고요.



리더의 책임감 같은 거죠.

모임을 운영하는 동안 소득이라고 부를 만큼 벌려면 규모가 커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금액을 크게 높이거나 사람이 엄청 많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하더라고요. 저는 워낙 소수 위주로 꾸려와서 다음 스텝을 고민하기 어려웠어요. 한 멤버가 제게 물은 적이 있어요. 저는 이 모임을 통해 뭘 얻냐고요.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하는 거면 된다고 생각했을 뿐, 수익을 기대하지 않았어요. 유료로 전환하는 걸 상상했을 때 추가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듯한 마음이 들어서 부담되더라고요. 또 프리랜서로 꾸준히 일감이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닌 사람들이 더 많다 보니까 아무리 소액이라도 부담되겠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누가 운영비를 지원해 주는 거 아니고서야.


어떤 번개 모임에서는 참여비를 커피 쿠폰으로 대체하더라고요. 아니면 깍두기처럼 한두 자리를 무료로 설정해놓는 방법은 어때요?

우리나라에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커피 한 잔 사면서 다른 사람 몫의 커피값을 대신 내주는 문화처럼 느껴지네요. 다음 사람이 오면 한 잔을 무료로 주는 거예요. 그처럼 내가 일하고 있을 때 참가비를 적립해 놓으면 쉬고 있는 다른 사람이 누릴 수 있게.


최근에 친구한테 체력이 떨어지고 있다고 한탄했더니 그게 다 돈뽕이 없어서라고 하는 거예요(웃음). 프로그램이든 프로젝트든 무료로만 하게 되면 지칠 수밖에 없다고. 그 일을 하면서 만족할 액수로 받으면 다르다고 설명하는 것에 수긍했어요. 내가 유지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하고,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로 만드는 게 쉽지 않죠.

설령 필요를 안다고 해도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격을 책정하는 기준을 도통 모르겠어요. 상품처럼 서비스의 원가 계산을 어떻게 하는지. 마케팅 프라이싱 분야에서 일해본 사람들은 그런 감이 잡힐까 싶고, 또 여자들이 상대적으로 남자들보다 수익화를 보는 관점이 다른가 싶고.


사이드 프로젝트로 꾸준히 모임 해볼 생각은 없으세요?

<유자교실> 같은 경우는 포맷을 바꿔서 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공부할 환경을 조성하고 공부한 인증을 올리는 기존 구성을, 1대 1로 가이드 해주는 식으로요. 동시에 이런 건 중고등학교 때 하던 입시 방식인데 성인이 돼서도 이래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어요.





유럽 언어가 제게는 생소했거든요. 영어나 중국어가 아니라면 직무에 바로 쓸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편견이 있어요.

마침 인터뷰 전에 독일어 수업이 있어서 독일문화원에 들렀다 왔는데요. 선생님께서 독일어를 왜 배우느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취미로 배운다고 답하니 놀라셨어요. 수강료가 비싸기도 하고, 독일어도 그렇고 대부분의 유럽 언어가 소위 쓸모가 많은 언어는 아니에요. 저희 반에도 유학 준비하시는 분들이 많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영어, 중국어, 일어처럼 업무나 다방면에 쓰는 언어가 아니니까, 취업이나 유학처럼 특정 목적 없이 그냥 공부하고 싶어서 배운다는 게 특이한 경우로 여겨지곤 해요. 하필 수업에 참석한 사람 중에 저만 유일하게 그냥 배운다고 해서 더 그랬어요(웃음). 다른 분들은 온라인에 계셔서.


아주 오래전 외교관이나 영어에 흥미가 있었다고요. 영어에서 유럽 언어로 관심이 옮겨간 계기가 있을까요?

중고등학생 땐 영어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가 외교관으로 바뀌었어요. 영어 과목을 좋아하기도 했고, 영어를 활용하면서 외국을 자주 드나들 수 있는 직업을 찾다가 외교관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알려주는 일에 관심이 많았어요. 가수, 탤런트, 아나운서, 영어 선생님 모두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해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지식이나 정보를 알려주기도 하고, 자신의 재능이나 경험을 보여주기도 하고요.

어쩌다가 유럽에 관심 가졌는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약간의 선망, 존경의 대상이 아니었을까요? 왠지 유럽 하면 되게 좋아 보이잖아요(웃음). 선진국이고, 멋있어 보이고, 유럽 미술이 좋아 보여서 그랬던 게 아닐까 싶고. 비교적 아시아는 가까우니까 언제든 갈 수 있겠다고, 미국은 멀어도 워낙 크고 유명하니까 언젠가 한 번은 가겠다는 생각으로요. 한국 사람들이 일본어 배울 때 조금 수월한 것처럼, 대부분 유럽 언어들이 영어를 알면 습득하기 그리 어렵지 않거든요. 그런 점에서 그냥 쉬운 걸 택한 건가 싶기도 해요.


쉬운 거로 따지면 영어에 머무는 게 제일 쉽죠(웃음).

돌이켜보면 공부한 만큼 성과가 나오는 과목 중 하나가 영어나 제2외국어였어요. 수학, 물리 과목은 이해가 안 되면 외우는 식인 반면, 언어 과목은 단어를 외워야 하긴 해도 투입 대비 성과가 좋아서 재밌었어요. 그래선가 영어 선생님들은 영어를 잘하시니까 다 멋있어 보였어요. 제가 만난 영어 선생님들은 교환 학생이든 뭐든 짧게라도 해외 경험이 있으셔서 더욱 그래 보였을지도요. 특히나 추가 수업 시간 같은 때 선생님 재량대로 구성하신 교재 내용이 그 흥미에 불을 붙였죠. 입시와 직결되지 않는 ‘쉬운 영어 원서 읽기’를 해본 것도 영향이 있을 거예요. 고등학생 시절 기억나는 영어 선생님을 꼽아보면 20~30대 여자 선생님들이셨는데 그냥 좋았던 것 같아요. 유연하고 젊으시니까 상대적으로 남자 선생님이나 연세가 있으신 선생님보다는 거리감이 덜 느껴졌나 봐요.


한 사람이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지만 은은하게 쌓인 것들이 어느새 나를 구축하게 되는 것들이 많아요. 저한테는 선생님들이 주로 그랬거든요.

저도 좋아하는 과목, 싫어하는 과목이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이렇게나 영어나 유럽 언어에 관심이 컸다면 해외에서 일해볼 궁리도 해보셨겠어요.

학생 때는 엄청나게 해외 취업하고 싶었죠. 그때 왜 지원을 안 했더라… 덜컥 겁이 나서 지원을 안 했던 것 같아요. 바로 해외 취업하는 것보다는 한국에 있는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다가, 해외로 갈 기회가 생기면 도전하자고 생각했던 듯해요. 그러나 한국만 해도 점점 나이 먹고 사회생활 할수록 녹록지 않아요. 그나마 시민권을 가졌고 기득권자인 동시에 소수성을 가지고 있는데, 해외로 나가는 순간 이방인이니까요. 완전히 소수성만 가진다는 것에 거부감이나 두려움이 커지더라고요.


이미 너무 많이 알았던 거네요. 몰라야 뛰어들 수 있는 면도 있잖아요.

겁이 많았던 거죠. 방금 말한 건 커서 알게 된 거고 그전에는 도전할 용기가 부족했어요. 언젠가 한 번쯤은 외국에 나가서 살아보고 싶고, 거기서 내 밥벌이하면서 살아보고 싶은데 해가 갈수록 도전하기 쉽지 않아요. 아까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는 거죠. 내가 남의 돈 받고 할 수 있는 기술이나 능력이 뭐가 있을까.


언어 쪽으로만 조금 더 특화한다면 번역 쪽으로 뭔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어요.

맞다, 대학 어디 갈지 살펴볼 즈음에 통번역대학원도 생각했어요. 외국어를 좋아하니까. 통번역대학원은 외국 생활 경험이 있는 분의 비율이 높아요. 배운 사람이 따라잡기 힘든 원어민의 감이라는 게 있거든요. 그래선가, 통번역대학을 준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순수 국내파도 입학을 못 하는 건 아니지만, 해외에서 살다 온 분들보다는 더 열심히 해야 한다, 그 차이라는 건 어쩔 수 없다는 말도 돌아요. 말하는 동안 저는 항상 해보고 싶은 게 있지만 ‘이건 이래서 안 돼’라는 한계를 빠르게 느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걸 핑계로 안 하는 거지.


환경을 바꾸게 되면 그 안에서 내가 변할 수밖에 없잖아요. 적응하기 위해서. 그러다 보면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도 있는 거고 그랬을 때 또 다른 길이 생기지 않을까요.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죠.

진짜 그래요. 두려움과 걱정이 올라오기 전에 해버려야 하는데 이미 그게 올라와 버렸달까요. 하다못해 집안일도 귀찮아, 라는 생각이 올라오기 전에 그냥 하면 되거든요. 근데 귀찮아, 하는 순간 진짜 하기 싫어요.





일 관련해서는 생계와 직결되는 부분이라 쉽게 결정하기 힘들죠. 아무리 나 혼자라고 하더라도, 한국에서도 쉽지 않은데 해외에서는…. 게다가 세계정세를 보면 좌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해요.

좌절할 거면 그냥 한국에서 좌절하는 게 낫죠. 여기는 투표권이라도 갖고 있으니까. 외교관을 꿈꿨다가 못 하겠다고 느낀 지점도 있어요. 뉴스를 보면 외교 언어는 정확하게 얘기하지 않고 늘 여지를 남기더라고요. 외교계 내부에서는 외교의 언어가 분명하고 확실한 언어일 수도 있지만, 외부자인 제 시선에서는 그렇지 않아 보였어요. 저는 두루뭉술하게 에둘러서 말하는 것보다 명료하게 말하고, 확실히 주고받고 마무리하는 걸 선호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독일어는 편해요.

배우고 있는 단계니까 다 알 수는 없지만, 독일어 메일이나 편지, 서신 사례들을 보면 미사여구 없이 바로 본론을 얘기하고 끝내요. 예를 들어 고객이 불만 사항을 말하는 이메일을 보면 곧장 상황 설명하고 언제까지 뭘 해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 끝이에요. 중간중간 감정이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크게 힘 빼지 않고 본론을 전달하는 게 인상에 남았어요. 한국에서는 쿠션어를 많이 사용하고, 그게 기본 예의이기도 하잖아요. 누군가와 말로 얘기할 때는 최대한 부드럽게 얘기하려고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되게 질리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독일식 화법은 간결하네요.

한국어든 외국어든 상대방이 불쾌하지 않도록 가려서 말하는 일은 중요하죠. 그러나 한국어로 말할 때 존댓말을 몇 번이나 해야 하는지 혼란스럽기도 해요. 정제되고 정중한 표현이되 ‘나 기분 상한 거 아니에요’를 표현하려면 자꾸 쿠션어를 쓰게 되잖아요. 반대로 핵심만 쓰다 보면 괜히 ‘너무 정 없어 보이나? 딱딱한가?’ 싶어요. 이모티콘을 붙이는 건 별로고요. 처음 일할 때 이메일에 이모티콘 쓰지 말라고 배웠거든요. 그걸 보완하기 위해 서면으로 의사소통하기 전에 한 번이라도 전화 통화를 해서 서로의 목소리나 화법을 알아가기도 해요. 그런 과정이 있으면 글을 읽을 때 이 사람의 목소리나 말투가 대충 그려지잖아요. 딱딱하게 썼다고 해서 이 사람이 화난 게 아니라는 사전 정보를 주는 거죠. 일할 때 용건만 간단히 쓸 것이냐, 아니면 부드러운 인상을 주기 위해 표현을 다듬는 데 에너지를 쓸 것이냐, 둘 사이의 적정 지점을 찾다 보니 제게 더 맞는 방식이 눈에 들어오나 봐요.


일해보면서 가장 귀하다고 느낀 게 선빈 님처럼 차분한 톤의 제너럴리스트였어요. 소규모 조직에서는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해내야 하잖아요.

첫 직장 상사인 대표님이 제게 말해준 ‘매니저’라는 역할이 떠올라요. 인사‧총무로 입사했다가 시장조사 프로젝트 매니저 역할까지 맡게 되었을 때 고객사와의 연락이라든가 계약, 조사대금 등 진행에 필요한 업무 전반을 맡았죠. 문헌조사나 인터뷰도 조금씩 했고요. 이런 역할이 좋고 재밌던 동시에, 이것저것 다 하는 제너럴리스트라는 게 썩 마음에 들진 않았어요. 요즘은 분위기가 바뀌었지만, 그땐 커리어 관련 이야기에서 제너럴리스트보다는 스페셜리스트를 더 긍정적으로 조명했거든요.

연말 업무 평가 겸 면담을 할 때 대표님께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어요. 다른 동료들은 시장조사도 잘하고, 인터뷰도 잘하고, 분석도 잘하는데 저는 강점 분야가 없어서 속상하다고요. 그랬더니 “매니저는 모든 업무를 조금씩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문제가 생겼을 때 다른 사람을 찾아서 혹은 매니저 본인이 직접 나서서 대응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신규 직원 채용이 원활하게 되지 않아서 부득이하게 제게 프로젝트 매니저 역할을 일부 맡겼는데, 막상 잘하니까 계속 맡기면서 프로젝트 하나를 시작부터 끝까지 필요한 업무를 조금씩 다 겪어보게끔 훈련하셨던 거죠. 피드백을 듣고 나니 ‘그래, 대표님도 이것저것 다 할 줄 아시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뒤에는 프로젝트 매니저, 제너럴리스트로서의 제 역할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보게 됐어요.

2021년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감독상 후보들에게 ‘어린이에게 감독이란 직업을 어떻게 설명하겠느냐’라는 질문을 던졌는데요. 클로이 자오 감독이 “이것저것 웬만큼은 할 줄 알지만 뭔가 하나 마스터한 적 없는 그런 사람들”이라고 말한 것도 비슷한 맥락처럼 들리더라고요.


제너럴리스트라는 걸 일하면서, 결정적으로는 대표님의 피드백으로 알게 된 셈이네요.

스페셜리스트뿐만 아니라 제너럴리스트에게도 ‘한 끗’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의 한 끗이 뭐냐고 묻는다면, 간결 명료한 의사소통이에요. 특히 보고서나 이메일 등 서면으로 의사소통해야 할 때, 상대방이 스크롤을 슉슉 내리면서 읽더라도 주요 내용이나 메시지는 확인할 수 있게끔 글을 쓰려고 해요. 어떤 종류의 글이든 글 쓴 사람만큼 집중해서, 꼼꼼히 읽는 사람은 많지 않더라고요. 일할 때 스스로 체계를 잡는 것도 저의 한 끗이라고 덧붙이고 싶어요. 언제까지 이 일을 마무리해야 하니까 어떤 일부터 어떤 순서대로 해나갈지 대략적인 계획을 잡는 거죠. 간결 명료한 커뮤니케이션과 체계(organized 또는 disciplined), 이 두 가지는 대표님께 들었던 피드백이기도 해요.



직무 타이틀이 때로는 능력치를 대신하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 안에서 세세하게 동료들과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하고, 성과를 내기까지 어떤 부분에 일조했는지가 결국 더 중요한 건데. 아무리 내 경험과 능력을 잘 구분해서 어필했다 쳐도 그들이 아니라고 하면, 선택받지 못하면 또 실패나 무능력으로 여기기 쉬워요.

구직할 때 선택받지 못했다는 식의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도, 채용하는 사람과 채용에 응시한 사람의 관계는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어요. 동등하게, 평등하게 봐야 한다, 구직자도 면접 볼 때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들을 머리로는 알겠어요. 그런데도 실전에서는 어려워요. 돈으로 연결된 회사(채용자)-지원자라는 불평등한 관계가 어떻게 평등할 수 있을까요?

구직 활동의 맥락에서 본다면, 제가 가진 기술과 경험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지를 우선순위로 두고 공고를 보고 있어요. 예전에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이나 직무에 초점을 두었다면, 지금은 제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 내 맘처럼 잘 풀리지 않아도 버티면서 할 수 있는 일로 초점이 옮겨졌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효능감을 느끼고 싶어요.

다른 사람들과 소속감 혹은 동료 의식을 느끼면서 일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함께 일하는 사이이기도 하지만, 회사에서의 일상 또는 사적인 일상의 일부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요. 일 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스몰토크도 할 수 있을 만큼 편한 사이.


매일 짧게 인사 나누는 정도의 동료가 필요하다는 데 동감해요. 일만 하려면 그것도 나름대로 가능한 일이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별거 아닌 대화, 그걸 주고받는 관계가 알게 모르게 중요하더라고요.

회사 생활을 안 하니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들어요. 친구나 사촌들과 연락하는 건 한계가 있고요. 예전 회사 동료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조차 같은 조직 구성원으로서 일할 때랑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물리적으로 한 공간에서 마주치면서 맺는 관계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여겨요. 반드시 회사에 들어가야만 여러 사람과 같이 일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회사에서 그럴 기회가 많으니까 조직에 들어가서 일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게 돼요. 만약 프리랜서들끼리 모이는 연합이나 콜렉티브 같은 게 있다면 제가 상상하는 일이 가능하겠지만요.


선빈 님에게 지금까지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첫 인턴십 할 때 만났던 친구인데요. 성격이 잘 맞기도 하고 그 친구의 장점 중 하나가 얘기를 인내심 있게 잘 들어줘요. 내가 좋아서 하는 얘기라 상대방은 관심이 없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도 맞장구 잘 치면서 들어주고 위로가 필요할 때도 조곤조곤 다독여줘요. 문제나 고민이 있을 때 제가 과하게 자책하지 않도록 차분하게. 저도 사람들에게 이렇게 하려고 많이 노력해요. 같은 지점에서 다른 사람 얘기를 잘 들어줘야겠다고 다짐하게 한 또 다른 분은 신부님이에요. 고해성사하면 대다수 신부님이 얘기를 잘 들어주세요. 나무라지 않고 “그래도 잘 오셨어요. 이렇게 와서 얘기하신 것도 큰 용기를 내신 거예요” 이런 식으로 말씀해주시곤 해요.

이걸 일에 적용해보면, 첫 직장에서 상사가 해준 말과도 연결돼요. “문제가 생기면 최대한 빨리 알려줘라, 그래야 문제 해결할 시간을 버니까. 혼자 끙끙 앓다가 늦게 얘기하면 수습하기 너무 힘들어진다.” 일이 잘 풀릴 때 얘기를 꺼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 빨리 말하는 게 더 중요하죠. 내가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그런 관계를 맺으려면 문제가 생겼을 때 바로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우선이겠다고 자주 생각해요. 세세하게는 짜증이니 화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덜 내비치거나, 다른 사람 감정 상하지 않는 방향으로 세련되게 내비쳐야겠다고요. 물론 쉽지 않아요(웃음).



선빈 님은 상대에게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 고민이 있을 때 들어주는 포지션이 되고 싶어 하시네요. 반대로 선빈 님에게 고민이 있을 때, 조직 밖에서 일하실 때 그걸 어떻게 해결하시는지 듣고 싶어요.

보통 인터넷 검색하지 않을까요? 일 관련해서는 소속된 커뮤니티가 있다면 용기를 내서 묻는 편이에요. 기분이나 감정 같은 건 혼자 삭이고요. 일기를 쓰는 이유가 여기 있나 봐요. 일기 쓰는 날은 주로 기분 안 좋을 때거든요. 기분이 가라앉거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일이 있으면 제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하는 편이라, 대충 글로 한번 쓰고 나면 제 머릿속을 떠나는 느낌이 들어요. 물론 입 밖으로 꺼낼 때도 있죠. 다만 일기장에 쓰는 것보다는 적은 양으로 필터링을 거쳐서 나가요.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 너의 일기장편이 생각나요. 배우 박보영이 본인 일기장을 가지고 나오면서, 꾸준히 기록하면서도 공개하지 못할 부분들이 너무 많다고 무섭다고 하던데, 선빈 님의 일기장도 그런 느낌이네요(웃음).

맞아요. 저를 둘러싼 주제에 관해 꺼내는 일은 쉬운데 제 안에 있는 얘기를 꺼내는 건 항상 어렵더라고요. 그게 친한 사이든 아니든 간에. 일종의 관문처럼 일기에 한 번 쓰고 나면 그나마 누군가에게 얘기하는 게 쉬워지는 것 같아요. 상대의 약한 면을 보면 괜히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에서 위로도 얻고 그러는데 역으로 내 얘기를 꺼내기가 어렵더라고요. 일을 안 한다는 주제에 한정해 본다면, 사실 일을 안 한다, 돈을 안 번다는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은 거예요. 백수나 니트족이 부정적으로 비치는 것 같고, 다른 사람들에게 저의 못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망설이게 되고. 어렸을 때 내 얘기를 해보는 말하기, 글쓰기 연습을 잘 안 해서 그런가 봐요.


블로그에 쓰시는 ‘세 번째 무소속’ 이야기가 제게는 위로가 되곤 해요.

너무 답답하니까 일기장에 썼던 내용 일부를 올리는 거예요. SNS에 올리면 일기장에 쓴 것과 달리 누가 반응해주니까 다른 사람의 반응을 약간 바라는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나랑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데서 존재감도 느끼고 위로도 받으니까요. 그런 걸 보면 사람은 아무리 혼자 있는 게 편하다고 할지라도 누군가를 계속 필요로 하는 것 같아요. 혼자 있는 시간도 다른 사람과 있는 시간을 전제로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대화 중간중간 《장자》에 등장하는 붕새가 떠올랐다. 크기가 수천 리고 높이가 구만리라 한 번에 육 개월을 쉬지 않고 비행한다는 새. 붕새와 비교하면 인간은 개미만 한 존재일 테다. 신체 조건부터 시공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아예 다른 존재. 선빈님을 보면서 상상하지 못하는 호흡으로 살고 있는 붕새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방향, 속도, 호흡이 각기 다를 때 내가 붕새임을 인정하느냐, 그러지 않고 다른 기준에 맞추느냐의 문제에 봉착한다. 누군가와 비슷하다면, 특정한 테두리에 속한다면 기존 문법대로 나를 드러내기 쉽다. 반대로 누군가와 다른 모습으로, 새로운 문법을 만들어간다면 나는 드러나지 않거나 가늠하기 어려워진다. 무소속은 후자에 가깝다. 다양한 모양과 색, 두께, 면적은 예상의 영역을 늘 벗어난다.


그래서 불안하고, 그래서 외롭고, 그래서 힘겹다.

그러나 행복하고, 그러나 연결을 모색하고, 그러나 길을 만들어 나간다.

그래서와 그러나 사이 어드메를 시시각각 균형 잡으면서.



선빈님을 더 알고 싶다면





인터뷰, 촬영   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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