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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호 Jul 12. 2018

한국은 어쩌다가 로봇에 안전한 나라가 되었을까?

제일 안전한 나라가 아니라 더 위험해질 게 별로 없는 나라다

한국은 4차산업 강국?


불과 한두 해 전만 해도 한국에는 4차산업혁명의 광풍이 불었다. 4차산업에 대한 정의는 명확히 합의되지 않았지만 인공지능과 인터넷, 그리고 빅데이터 같은 최신 기술이 융합되어 그간 사람이 해왔던 일들을 효율적으로 

대체한다는 의미 정도로 통용된다.


이는 사람들에게 신세상에 대한 약간의 장밋빛 미래, 그리고 공포를 가져다주었다. 그 공포의 내용은 쉽게 짐작하기도 힘든 복잡하고 거대한 기술이, 나와 내 주변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것.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 같은 공포가 더 확실히 드러난다. 응답자 중 89.9%는 ‘4차 산업혁명으로 전체적인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76.5%는 ‘4차 산업혁명은 내 일자리를 위협할 것’으로 내다봤다.


 ‘일자리를 뺏는다’던 4차산업혁명이 느닷없이 등장한 건 아니었다. 꼭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같은 이름으로 명명되지는 않았지만, 로봇과 컴퓨터 자동화 시스템은 산업에 꾸준하게 적용되었고 노동자를 대신했다.


1950년대부터 이미 그 모습을 드러냈던 자동화는 1990년대가 되면 단일 기계의 자동화 수준을 넘어서서 중앙통제식 기계장치, 재료처리, 도구관리, 검사 등 전 생산 공정을 통합적으로 운영할 뿐 아니라, 설계, 엔지니어링, 물류보관, 회계 등 사업전반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내는 거대한 통합적 자동화 시스템으로 발전하고 있다 (Adler,1989; Altman et al., 1992)


‘4차산업혁명’이라는 이름이 너무 과열되었다는 여러 지적처럼 새로운 기술이 갑자기 세상을 통째로 바꾸어 놓을 만큼 유별난 변화를 가져다줄지는 지금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기계와 자동화 기술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것은 꽤나 오래된 경향이라는 점이다.

KARABARBOUNIS NEIMAN 2014


이는 지표로도 나타난다. 미국의 노동통계국 보고서를 살펴보면 2000년 이후 GDP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비율은 눈에 띄게 낮아졌다. 물건을 만들고 돈을 벌어들이는데 필요한 인간의 노동력은 계속 줄어들더니 이제는 절반에 육박하기에 이르렀다.


OECD


2016년에 OECD가 발표한 자료는 보다 더 충격적이다. 자동화로 인한 직업대체율(이는 자동화로 인한 직무 대체율이 70%인 고위험군과 50~70%인 중위험군을 포함한 수치다)이 적게는 25%에서 많게는 45%를 넘어선다. 기술발전과 자동화로 인해 위기에 빠지거나 사라지는 직업이 평균 1/3가량이나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볼 게 하나 있다. 이 자료에서 한국은 자동화로 인한 위기로부터 제일 안전하다는 점이다. 고위험군은 6%밖에 되지 않고 중위험군과 합한 수치도 25%에 못 미친다. 조사대상국 중 제일 낮으며 가장 높은 슬로바키아의 절반 수준이다. 어떤 이유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타난 걸까?


한국개발연구원은 여기에 대해 “자동화에 대한 선행투자와 근로자의 교육수준 등이 한국의 자동화 확률을 낮추는 요소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매일경제는 이 보고서를 인용하며 ”그동안 우리나라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준비가 미흡한 국가”로 여겨져 왔지만 ”이미 자동화가 많이 진행된 만큼 다른 나라에 비해 제조업에서 4차 산업혁명의 악영향을 받을 여지가 낮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 말을 언뜻 보면 한국이 자동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했고 그 결과 부정적 영향을 많이 상쇄시킨 것처럼 해석된다. 선제적으로 대응한 건 맞다. 2016년 세계로봇연맹이 발표한 제조업 노동자 1만명당 로봇 수를 살펴보면 한국의 제조업 분야 로봇 도입수는 압도적으로 1위인 531대인데 이는 전세계 평균인 69대, 한국 다음으로 높은 싱가포르의 398대보다도 한참 높은 편이다.


이런 현실 때문에 ‘자동화’에 대한 위기감도 다른 나라와 온도 차가 큰 것 같다. 각국에서 고민하고 있는 ‘자동화의 위기’는 한국에서는 별달리 새로울 게 없는 이야기였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이미 로봇과의 경쟁을 어느정도 끝마쳤고, 이미 일자리도 빼앗길 만큼 빼앗겼다. 즉 앞서 OECD의 자료에서 한국이 ‘자동화 도입에 제일 안전한 나라’ 평가된 이유를 해석함에 있어, 한국사회가 기술발전과 자동화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비교적 덜 받는다기 보다는 이미 사회 저변에 그 영향이 반영될 만큼 반영 되었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또다른 의문이 든다. 한국은 어쩌다 이렇게 자동화를 먼저 도입한 나라가 되었으며 위기를 먼저 겪은 나라가 되었을까?



한국의 노동자는 1987년부터 로봇과 싸웠다


한국의 자동화 도입 역사는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 현대사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인 6.10 항쟁이 있었던 바로 그 해다. 새로운 헌법과 함께 노동자들의 투쟁도 시작됐다. 여느 때보다 노동쟁의가 잦았던 시기였다. 

CHALFFY VIA GETTY IMAGES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와 노동쟁의가 거세지자 기업은 노동자와 타협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대신 노동에 의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방법을 고민한다. 기업은 로봇에서 그 해법을 찾았다. 1982년 겨우 14대였던 산업용 로봇은 1989년에는 약 1400여대로 늘어난다. 불과 몇 년 만에 100배가 늘어난 것이다. 로봇에 투자한 금액을 비교해봐도 1985년 40억, 1986년 51억에 불과했던 산업용 로봇 수요는 1987년에 200억, 1988년에 360억, 1989년에 540억까지 늘어난다. 한국 기업의 로봇 투자는 1987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한국은행은 당시 이런 변화에 대해 “생산능력 확대 부문보다 합리화 부문투자가 늘어나는 것은 임금인상 및 노동쟁의로 자동화투자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기업들이 고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R&D나 생산력 확대에 투자하는 대신 노동분쟁을 피하기 위한 투자에 더 몰두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한국사회연구소는 1989년 당시 이런 경향에 대해 “전반적인 투자 위축에도 불구하고 생산성 향상을 위한 자동화 투자의 경우에는 대폭적인 확대가 주목된다”고 이야기했다. 


일각에서는 당시 이런 자동화 설비 투자가 머지않아 멈출 것으로도 보았다. 경남대 사회학과 이은진 교수는 1990년 “자동화의 현단계”란 논문에서 “공장 자동화는 사회적인 여건과 밀접히 연관되어서 노사관계가 어느 정도 안정된 시점에 이르면 투자가 줄어들 가능성도 많다. 왜냐하면 똑같은 상품을 만드는 데 있어서 자동화의 이점이 사라지면 결국 과거와 같이 사람의 힘에 의존하면서 사람을 효율적으로 부리는 방법을 강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변수가 있었다. 하나는 한국의 수출경제를 이끈 제조업이 워낙 자동화를 도입하기 쉬운 방향으로 성장했다는 점이며 또 하나는 한국의 노동자와 기업 간의 불신이 생각보다 너무 심했다는 점이다. 

한국의 제조업은 대기업이 대단위 공장을 세워 완성품을 조립하고 주변에 하도급 공장이 여기에 필요한 부품을 납품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핵심부품이나 제조에 생산되는 중요 장비, 원천기술이 필요한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에 고숙련 노동자를 많이 필요로 하지 않았다. 한국 제조업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효율적으로’ 생산하는가였다. 이 설비만 잘 구축되면 ‘누가 들어와서 일하든 상관없는’ 구조가 되었다. 


물론 완성품 제조업에 숙련 노동자가 전혀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현대자동차의 성공 요인을 오랫동안 연구한 조형제 박사는 자신의 2008년 논문 ‘시스템합리화와 숙련형성’에서 “자동화, 모듈화가 진전되면 노동의 중요성이 감소하게 되고, 이에 따라 현장 작업자의 숙련 형성은 부차적인 것이 된다”면서도 “노동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생산공정의 핵심적 위치에는 소수의 숙련 노동자들이 필요하다”며 “새로운 생산기술을 적용하고 중앙 통제소와 작업장 간의 인터페이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숙련 노동자가 더욱 중요해진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실제 한국의 제조업은 ‘숙련노동자’를 육성하는 방식 대신 더 많은 기계를 도입해서 작업 자체를 최대한 단순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대처했다. 원래대로라면 숙련 노동자가 담당해야 하는 공정을 기계가 담당했고 이를 엔지니어가 통제하는 식이었다. 


한국의 제조업이 이렇게 변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노사갈등을 지목할 수 있다. 숙련노동자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훈련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노사 간 신뢰도 바닥이고 정보도 서로 공유되지 않는 상태에서, 회사 측은 별다른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며 노동자들에 대한 교육훈련 투자에 나서지 않았고 마찬가지로 노동자들도 작업장에서 품질관리나 개선제도 등에 참여해야 할 동기를 부여받지 못했다. 결국 한국의 제조업은 노사 양측의 극한의 불신으로 인해 숙련노동자를 키우고 생산성을 높이는 대신 그 자리를 로봇으로 채우고 노동자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여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앞서 언급한 논문 시스템합리화와 숙련형성을 살펴보면 좋다)


여기에서 파생되는 문제는 또 있었다. 강한 교섭력을 가진 제조대기업 노동조합은 스스로 고용안정과 임금인상을 쟁취했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 보자면 이는 낮은 생산성에 높은 비용을 치르는 데다가 고용 경직성까지 높아지는 결과였다. 기업들은 이를 하도급 업체에 대한 ‘낮은 납품단가’ 요구와 ‘비정규직 고용’로 돌파했다. 


비상식에 가까운 납품단가는 하도급업체가 경쟁력을 상실하는 원인이 됐다. 중소기업은 연구개발에 투자할 비용이나 인건비에 쓸 돈을 늘일 여력이 없었다. 정규직 채용의 축소는 단순히 고용불안만 야기하지 않았다. 대기업 – 하도급 – 재하도급으로 이뤄지는 관계는 일종의 계급처럼 임금 격차를 만들어냈다. 이런 상황에서 생산력 제고나 부가가치상승이 효과적으로 이뤄질 리 없었다. 


이런 구조는 한국 산업 전반에 표준처럼 작동했다. 자동화 기술을 도입함으로써 최대한 필요 노동력을 배제한 뒤 소수의 관리 인력에만 적정한 임금을 주며 고용 안정을 보장했고 별다른 숙련이 필요하지 않은 단순반복업무는 하도급을 통해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받았다. 기업은 고용유연성 확보를 위한 돌파구로 단순반복업무를 비정규직으로 채우기 시작했으며 이들은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값 싼 부품’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런 경향은 한국 사회 전반의 고용의 질을 떨어트렸다. 직격탄을 맞은 것은 청년이었다. 청년들은 버티고 버티다 운 좋게 ‘대기업 정규직’에 취직되거나 평범하게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내몰렸다. 


한국의 자동화 도입 역사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한국의 자동화 도입 물결은 제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 산업 전반에 표준처럼 작동했다. 자동화 기술을 도입함으로써 최대한 필요 노동력을 배제한 뒤 소수의 관리 인력에만 적정한 임금을 주며 고용 안정을 보장했고 별다른 숙련이 필요하지 않은 단순반복업무는 하도급을 통해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받았다. 기업은 고용유연성 확보를 위해 단순반복업무를 비정규직으로 채우기 시작했으며 이들은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값 싼 부품’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직격탄을 맞은 것은 청년이었다. 청년들은 버티고 버티다 운 좋게 ‘대기업 정규직’에 취직되거나 평범하게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내몰렸다.


한국에서는 지하철을 타러 내려가도 역무원들을 보기 힘들다. 대부분은 지하철 요금을 버스카드로 내고 있으며 카드 충전도 무인화 기계가 대신한다. 검표원도 필요 없다. 혼잡시간대 역사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스크린도어다. 최근 건설되는 지하철은 기관사 없이 전자동으로 운전한다.



그나마 기계 대신 저임금 노동자를 사용했던 분야가 서비스업이었다. 여기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패스트푸드점을 중심으로 키오스크 도입이 확대되는 추세고 B2C 기업들은 고객응대센터 규모를 줄이고자 챗봇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작년, 최저임금의 높은 인상이 결정되자 키오스크 업체의 주가가 오르기도 했다.


OECD는 자동화의 도입이 특히 반복적인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과 저학력 노동자들에게 더 심한 타격을 입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이는 노동자들 사이의 불평등을 더 강화할 것으로 보았다. 이는 한국의 현재와 일치한다. 한국의 소득불평등 수준은 미국 다음 순위를 차지하며 저임금 노동자의 비율도 미국과 아일랜드 다음이다.


문재인 정부가 ‘소득 주도 성장론’을 내건 이유도 이런 시대상황을 반영한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소득10분위별 상위 10%의 소득은 10.7%가 는 1271만원이었지만 하위 10%의 소득은 12.2% 줄어든 84만원을 기록했다. 소득 불평등이 점점 더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OECD가 앞서 언급한 ‘단순, 반복업무 종사 노동자’와 ‘저학력 노동자’들이 주로 저소득층인 것을 고려할 때, 이 계층의 소득을 적정수준 이상 확보하지 않는다면 양극화는 더욱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의 일환으로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여기에도 반론이 따른다. 2018년 기준 최저임금 적용대상근로자수는 약 463만명, 전체 노동자의 23.6%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최저임금의 대상이 되는 노동자가 늘어난단 이야기는 산업 전반적인 생산성이 최저임금의 인상 속도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다는 의미도 된다. 특히 제조업 하도급업체에 종사하는 노동자 상당수가 최저임금의 대상자인 상황을 고려할 때 원청 – 하청 간의 공정한 납품단가가 형성되지 않고서는 상당수의 하도급 업체가 큰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


해법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소득문제뿐만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한국 제조업 전반에 위기가 찾아왔다고 분석한다. 고도의 자동화와 비용 절감을 바탕으로 한 ‘완성품 제조업’은 신흥국에 점점 그 자리를 내주고 있다. 그렇다고 독일 제조업과 같이 높은 생산력을 바탕으로 ‘고부가가치’산업으로 전환하고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제조업의 수출경쟁력을 바탕으로 지탱해온 한국 경제에서 제조업의 위기가 찾아왔다는 것은 한국 사회 전반에 켜진 빨간 불이 켜졌다는 것과 다름없다.


‘자동화로부터 안전한 한국’의 현실은 말 그대로의 안전함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위험이 적다’는 말은 이미 자동화로 인한 위험이 사회 전역에 다 반영된 상태를 설명하는 것에 가깝다.


물론 자동화가 한국의 경제 문제를 모두 설명할 수도 대변할 수도 없다. 다만 한국은 자동화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빠트렸는지, 노동이 로봇 주변으로 밀려나기 시작하면서 한국이 어떤 문제에 봉착했는지는 등은 자동화를 고민하는 여러 나라에 좋은 시사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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